23. 쿠르제라캉
23. 쿠르제라캉
  • 남수연 기자
  • 승인 2014.01.2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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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역사 새벽 연 파드마삼바바 그림자 위에 세워진 사원

▲ 부탄 최고의 성지로 손꼽히는 쿠르제라캉. 746년 최초로 부탄을 방문한 파드마삼바바가 현신한 장소로 이곳에서 마왕을 조복시킨 후 자신의 그림자를 바위 위에 남겼다고 한다.

부탄 역사의 출발점은 단연 파드마삼바바다. 그가 부탄 역사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 묘연하기 때문이다. 기록 자체가 적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초기사료들이 화재와 지진 등으로 대부분 소실됐기 때문이다. 특히 1832년 푸나카종 화재에 이은 1897년의 푸나카 대지진, 그리고 1907년 파로종의 대화재 등은 가뜩이나 부족한 부탄의 고대사를 더욱 미궁으로 빠뜨린 결정적 원인들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부탄의 역사는 티베트와 인도 등 인접국의 기록, 그리고 인도의 영국 식민지시기에 영국정부가 조사한 자료 등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으며 구전되는 이야기조차도 소중한 역사로 재평가되는 경우들이 많다. 이처럼 안개 속에 숨어있는 부탄의 역사 속에서도 파드마삼바바는 부탄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가름하는 결정적 이정표가 되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2~3세기경에 이미 부탄에 불교가 전래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불교가 부탄 종교와 문화 전반의 중심으로 정착된 것은 바로 파드마삼바바의 등장 이후다.

‘구루린포체’라는 별칭으로 더 널리 불리는 파드마삼바바는 8세기 인도의 수행자로 인도 밀교를 처음 티베트에 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은 ‘연꽃 속에서 태어난 자’라는 뜻이며 ‘구루린포체’라는 별칭에는 ‘소중한 스승’이라는 뜻이 담겨 있어 그가 곧 부처님의 화신이라는 믿음을 말해주고 있다. 파드마삼바바의 정확한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티베트를 비롯한 히말라야 일대에는 그와 관련된 무수한 이적이 전해지고 있으며 그가 수행하거나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사원들도 산재해 있다. 파드마삼바바가 티베트불교, 나아가 히말라야 불교문화권 형성에 결정적 인물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파드마삼바바가 히말라야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8세기 티베트의 국왕 치송데첸의 초청에 의해서다. 티베트 토번왕국의 영웅이자 ‘하룻밤 사이에 108개의 사원을 세웠던’ 이적의 주인공 송첸캄포가 7세기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후 8세기에 이르러 치송데첸은 불교를 국교로 선포하고 토속 신앙 세력이었던 뵌교를 제압하고자 삼예대사원 건립을 추진한다. 하지만 삼예대사원 건립은 여러 난관에 부딪혀 난항을 거듭하는데 역사는 이를 ‘토지신들의 훼방’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토속 신앙이자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뵌교와 구세력들의 조직적인 방해가 있었음이다. 그러나 역사의 표현대로 토지신의 훼방에 애를 먹던 치송데첸은 당시 놀라운 신통력을 소유한 불교수행자로 명성을 드높이고 있던 인도의 파드마삼바바를 초청하기로 한다. 지금의 파키스탄 동북쪽, 스와트강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던 우디야나국에서부터 히말라야를 넘어 오는 동안 수많은 이적과 전설을 남기며 티베트로 향한 파드마삼바바는 마침내 779년 라싸에 도착, 12년에 걸친 대역사 끝에 삼예사원을 완공시킨다. 이후 티베트에서는 토속신앙인 뵌교와 일찍이 전해진 대승불교, 그리고 파드마삼바바에 의해 전수된 밀교가 결합해 티베트불교의 화려한 꽃이 피게 되었다.

이처럼 티베트불교사에 깊은 족적을 남기고 있는 파드마삼바바가 티베트에 발을 딛기도 전인 746년 부탄을 방문하게 된다. 그가 부탄으로 향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746년 최초로 부탄 방문한
파드마삼바바의 현신 장소

여덟가지 분신·이적 보이며
마왕을 불교에 귀의 시키고
주술에 걸린 왕 목숨 구해줘
이웃 나라와도 평화 되찾아

명상 터 바위에 그림자 남아
부탄 최고의 성지로 손꼽혀
왕실서 법당 짓고 수시 참배


이 무렵 인도 출신의 센다갑이라는 인물이 지금의 붐탕 지역에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위에 등극한다. 왕이 된 센다갑은 스스로를 ‘신두라자’라 칭하며 남부탄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나오체족과 대립하게 된다. 나오체라는 이름에는 ‘큰 코를 가진 종족’이라는 뜻이 들어있는데 이는 티베트혈통의 동양적 이목구비를 지닌 부탄의 원주민들과는 달리 나오체족이 서구적 체형을 지닌 종족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신두라자와 잦은 전쟁을 벌이던 나오체족이 어느 날 신두라자를 급습해 그의 아들과 측근 16명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특히 죽은 아들은 시신조차 찾지 못했는데 이에 충격을 받은 신두라자는 그만 미쳐서 돌아다니다 붐탕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마왕 셀깅카르포의 거처를 더럽히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 분노한 마왕은 하늘을 어둡게 바꿔버리고 신두라자의 목숨을 빼앗으려 한다. 이를 지켜보던 한 신하가 간절히 파드마삼바바를 부르며 왕의 목숨을 구해 줄 것을 기도한다. 그 기도가 전해졌음인가. 파드마삼바바가 불현듯 붐탕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파드마삼바바가 바위 위에 앉아 금강저를 꽂고 명상에 들자 그 위신력에 놀란 마왕은 동굴 속으로 몸을 숨긴다. 그러자 파드마삼바바는 앉아 있던 바위 위에 자신의 그림자를 남겨 놓고 궁전으로 가 신두라자의 딸 타쉬쿠에돈과 결혼한다. 결혼 후 파드마삼바바는 공주를 산으로 보내 황금 물병 속에 담긴 생명수를 찾아오도록 한다. 공주가 생명수를 찾기 위해 떠나있는 동안 파드마삼바바는 여덟 가지 다른 형상의 분신을 내어 마왕이 숨어있는 동굴 입구에서 춤을 춘다. 파드마삼바바가 공주에게 생명수를 찾아오도록 시킨 것은 그의 분신이 너무 흉악하고 무서워 공주가 두려움에 떨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파드마삼바바가 분신들과 함께 춤을 추자 인근의 모든 신들이 나와 춤을 지켜본다.
 
하지만 동굴 속 마왕만은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채 동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공주가 황금 물병에 든 생명수를 구해오자 파드마삼바바는 공주를 다섯 명의 황금 물병을 들고 있는 공주로 변신시킨다.

▲ 법어로 장엄돼 있는 쿠르제라캉의 입구. 바로 옆 바위 위에는 파드마삼바바에게 조복당해 불교의 수호신장이 된 마왕의 모습이 조각돼 있다.

공주의 다섯 분신들은 물병으로 햇빛을 반사 시켜 동굴 안을 비춰 마왕을 유인한다. 이윽고 해가 저물자 마왕은 하얀사자로 변신해 공주 앞에 나타난다. 파드마삼바바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거대한 가루다로 변신해 날카로운 발톱으로 마왕을 잡아채어 날아오른다. 파드마삼바바에게 잡힌 마왕은 비로소 항복을 하고 불법의 수호신장이 될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신두라자 또한 다시 생명을 얻게 된다. 이어 파드마삼바바는 남부탄의 왕을 불교에 귀의시켜 두 나라는 서로 화해하게 된다. 이후 파드마삼바바는 3개월간 이곳에 머물며 바위 위에서 명상을 했는데 그때 남긴 그의 그림자가 바위에 새겨져 오늘날까지 전해진다고 한다. 그 그림자가 새겨진 바위 위에 세워진 사원이 바로 쿠르제라캉이다. 한편 파드마삼바바는 불법의 수호신이 되겠다는 마왕의 약속을 증명하는 의미에서 자신의 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그 지팡이서 잎이 솟아나 큰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바로 쿠르제라캉 입구에 서있는 커다란 사이프러스나무다. 쿠르제라는 이름의 ‘쿠르’는 ‘몸’이라는 뜻이며 ‘제’는 ‘흔적’이라는 뜻으로 파드마삼바바의 형상이 남아있는 곳임을 뜻한다.

이처럼 쿠르제라캉은 부처님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파드마삼바바가 직접 현신에 여러 이적을 보인 곳으로 부탄에서도 가장 신성하게 여겨지는 사원 가운데 하나다. 사원은 모두 3개의 건물로 이뤄져 있는데 구루라캉으로 불리는 첫 번째 법당은 1652년 세워진 가장 오래된 법당이다. 구루린포체가 명상을 했던 바위 위에 세워진 이 법당 2층에는 구루린포체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는 바위굴이 있다.

▲ 현 국왕의 어머니가 보시한 공양물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현 국왕의 어머니 트셰링 양돈이 찾아와 기도를 하는 날이라 사원 전체가 ‘비상’이다. 물론 일반 방문객에게 별다른 제약이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로열패밀리’의 방문으로 다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인다. 법당 또한 청소 중이라 들어갈 수 없단다. 안으로 들어가도 파드마삼바바의 그림자가 새겨져 있는 바위를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지만 아쉬움을 달랠길이 없다.

▲ 쿠르제라캉은 왕실의 지원이 많은 왕실사원이다. 초대 국왕과 3대 국왕의 왕비가 지은 법당.

이 사원의 두 번째 건물은 부탄의 초대 국왕 우겐 왕축이 1900년 세웠고 세 번째 건물 또한 현 부탄 국왕의 할머니인 아시 케상 왕축이 1984년 세웠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이곳에는 왕실 가족들, 특히 역대의 왕비들이 수시로 찾아와 기도와 보시를 한다니 이쯤 되면 이곳이 왕실사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파드마삼바바의 방문 후 부탄은 본격적인 불교국가로 성장하게 되었고 티베트와의 교류 또한 활발해지며 독창적인 문화를 형성해나가게 된다. 온갖 이적과 신비로운 전설로 뒤덮여 있는 듯 한 파드마삼바바를 역사의 분기점으로 삼는 부탄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역사의 행적까지도 불교와 함께 발맞추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부탄 역사의 많은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파드마삼바바의 기록들을 살펴보며 이들의 묵직한 신심을 다시 한 번 느껴본다.

붐탕=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230호 / 2014년 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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