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땀씽라캉과 페마링파
25. 땀씽라캉과 페마링파
  • 남수연 기자
  • 승인 2014.02.20 15: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꺼지지 않는 등불 들고 호수 속 보물 찾아낸 부탄왕조의 조상

▲ 땀씽라캉은 작지만 부탄불교의 가장 위대한 수행자로 손꼽히는 페마링파가 창건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원이다. 특히 사원 내부에는 페마링파가 직접 그렸다는 벽화가 남아있다. 덕분에 법당 내부에서는 일체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왕실 사원인 쿠르제라캉 앞을 흐르는 계곡 넘어 마주보이는 언덕 위엔 땀씽라캉이라는 또 하나의 작은 사원이 있다.

땀싱라캉은 쿠르제라캉이나 자카르종에 비해 매우 규모가 작은 사원이지만 크기와는 상관없이 부탄에서 손꼽히는 중요한 사원 가운데 하나다. 이 사원을 건설한 주인공이 바로 페마링파이기 때문이다.
땀씽라캉은 1501년 페마링파에 의해 건립됐다. 파드마삼바바의 환생으로 여겨지는 페마링파는 부탄 불교사에 있어 닝마파의 가장 위대한 수행자로 손꼽힌다. 또한 부탄의 많은 사원들이 그와 얽힌 전설을 갖고 있거나 그로부터 역사를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면 페마링파는 어떤 인물일까? 잠시 앞서 언급했던 파드마삼바바의 시대로 고개를 돌려보자. 746년 붐탕지역에 현신해 부탄불교의 역사를 연 파드마삼바바는 밀교 수행자로 티베트불교 4대 종파 가운데 하나인 닝마파의 개조다. 그가 부탄에 전한 불교 역시 닝마파로 매우 비밀스런 수행과 가르침을 남겼다. 하지만 파드마삼바바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자칫 그의 수행과 가르침을 잘못 이해해 거부감을 갖거나 아예 이해하지 못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모든 법은 적절한 때와 합당한 근기를 가진 중생을 만나야 올바르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긴 파드마삼바바는 자신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과 수행의 보물들을 히말라야 곳곳에 숨겨놓았다. 때가 오기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파드마삼바바는 보물들이 ‘보물 창고를 여는 이’들에 의해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될 것이라 예언했는데 후세인들은 이 보물창고를 여는 이를 ‘테르퇸’이라 불렀다. 이렇게 해서 히말라야산자락 깊숙한 곳 부탄에도 파드마삼바바의 경전과 보물들이 숨겨지게 됐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다 마침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러한 역사에서 유래된 닝마파의 위대한 다섯 테르퇸 가운데 한 명이 바로 페마링파다. 동시에 페마링파는 파드마삼바바의 환생으로도 여겨진다. 하지만 의외로 그의 탄생과 어린 시절은 평범해 보인다.

▲ 땀씽라캉 입구에서 공놀이 중인 동자 스님들.

부탄 출신 닝마파 수행자 페마링파
파드마삼바바의 비전 찾은 ‘테르퇸’
34개 보물·경전 찾아 사원에 보관
그 자신이 ‘닝마파 보물’로 여겨져
1501년 붐탕계곡에 땀씽라캉 창건
직접 조성했다는 벽화도 남아 있어

음악·춤·회화 등 전통문화 정립
예술가이자 현 부탄왕조의 조상
전설 속의 신비로운 인물 아닌
살아있는 역사의 주인공이자
부탄불교문화의 상징적 응집체

페마링파는 1450년 붐탕지역의 탕 계곡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할아버지로부터 대장장이 일을 배웠다. 그가 만들었다는 철제갑옷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이처럼 솜씨 좋은 대장장이였던 페마링파의 운명이 바뀐 것은 그의 나이 25살 때였다.

어느 날 꿈속에서 한 스님이 나타나 보물에 관한 기록이 천신의 언어로 적혀있는 두루마리를 그에게 주었다. 그 두루마리에는 붐탕 계곡의 깊은 연못 속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는 방법에 관해 적혀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페마링파는 두루마리에 적혀있는 계곡을 찾아가 호수처럼 보이는 깊은 물가의 한 지점에 다다랐다. 큰 바위 위에 서서 한참 동안 물속을 바라보던 페마링파는 물속에서 여러 개의 문이 있는 사원을 발견한다. 그 문 가운데 하나가 열려있음을 본 페마링파는 물속으로 뛰어들어 큰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안에는 사람 크기만한 석가모니부처님상과 여러 개의 보물 상자가 있었다. 그 보물들은 외눈박이 노파가 지키고 있었는데 노파는 페마링파에게 상자 하나를 건내 준 후 그를 밀어냈고 다음 순간 페마링파는 보물상자와 함께 처음 서있던 계곡 옆 바위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놀라운 첫 번째 보물 발견 사건은 곧바로 두 번째 보물 발견의 계기로 이어진다. 두 번째 보물 발견이야기는 부탄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이기도 하다.

보물을 갖고 집으로 돌아온 페마링파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보물들을 사원에 보관했다. 페마링파가 보물을 발견했다는 소문이 퍼지며 그는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되었고 동시에 그를 사기꾼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 중에는 이 지역을 다스리던 관리도 있었다. 그는 페마링파를 불러들여 정말로 파드마삼바바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냈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명령했다. 페마링파는 결국 처음 보물을 찾았던 계곡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번에는 진실을 확인하고자 구름같이 모여든 ‘관중’들과 함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물가에 선 페마링파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등불을 들어 보이며 물속을 향해 소리친다. “내가 만약 진짜로 당신의 보물을 찾아낸 사람이라면 내가 지금 들고 있는 등불과 함께 돌아올 때 이 불이 여전히 타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요괴의 사주를 받았다면 나는 물속에서 죽게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페마링파는 등불과 함께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한 참을 지나도 페마링파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물속에서 희미하게 비춰 나오는 불빛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의 말이 진실이었음을 믿게 됐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페마링파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던 바위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불타고 있는 등불이 들려있었으며 다른 한 손엔 불상 하나와 보물상자가 들려있었다. 이후 호수처럼 보이는 이 계곡은 ‘불타는 호수’라는 뜻의 멤바르추로 불리게 되었다.

꿈속에서 스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두루마리에는 보물에 관한 내용 말고도 많은 가르침이 담겨 있었는데 모두 천신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더욱이 천신의 언어에는 각각의 단어마다 인간단어 1000개에 뜻을 상징하고 있어 그 뜻을 풀어내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페마링파는 천신 칸드로마의 도움을 받아 그 두루마리의 내용을 모두 번역했고 이 내용은 이후 그가 사람들을 지도하는 기본이 되었다. 후일 그가 머물며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폈던 집이 붐탕계곡의 쿤장링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쿤장드렉라캉이라는 사원이 세워져 있다. 페마링파가 태어난 마을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는 쿤장드렉라캉에는 페마링파가 만들었다는 자신의 조각상이 남아있다고 한다.

페마링파는 평생 동안 부탄 전역과 티베트 등지에서 모두 34개의 조각상, 두루마리, 사리 등을 발견했다. 그가 발견한 상당수의 조각과 사리는 오늘날까지도 사원 안에 보관돼 있다.

전해져 오는 것은 그가 발견한 보물만이 아니다. 1521년 페마링파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몸, 말, 정신은 각각 따로 환생했는데 그 혈통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여섯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두었고 이들의 자손에게서 페마링파의 환생이 자주 태어난다고 한다. 특히 현재 부탄의 왕축왕조도 이들의 후손이니 페마링파는 바로 현 왕조의 조상이기도 하다. 이것이 페마링파의 이야기를 빼고서는 부탄, 그리고 부탄불교를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페마링파가 존경받는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다. 그는 경전과 예술품들을 발견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가 예술가이기도 했다. 부탄의 전통춤과 음악을 만들었으며 사원을 짓고 벽화, 조각 등을 남겼다. 그가 남긴 사원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바로 땀씽라캉이다.

▲ 벽화 보존처리 작업 중인 코톨드미술관 연구원.

비록 규모는 작지만 땀씽라캉의 내부는 독특한 회랑구조다. 법당 입구로 들어서며 좁고 긴 통로가 법당을 따라 한 바퀴 둘러싸고 있는데 부탄 사람들은 이 복도를 코라라고 부른다. 코라는 원래 순례길을 뜻한다. 성스러운 산이나 도시뿐 아니라 건물이나 탑 등을 오른쪽으로 돌며 예경을 올리는 길이 바로 코라다. 우리의 탑돌이도 이 코라 순례의 한 형태다. 마치 건물 안에 또 하나의 건물이 들어있는 듯 특이한 구조의 통로를 따라 법당 주위를 돌다보면 좌우의 벽이 모두 화려한 벽화로 장식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간간히 색이 흐려지고 사라진 곳도 있지만 남아있는 흔적만으로도 매우 섬세한 벽화였음이 분명하다. 이 벽화를 그린 주인공이 바로 페마링파라고 하니 적어도 500여 년의 세월을 지나온 벽화들이다. 이 벽화는 부탄에서도 가장 오래된 벽화로 손꼽히고 있다. 때마침 이 벽화의 보존처리와 복원을 위해 세계적 미술연구소인 영국 코톨드미술연구소에서 파견한 연구원들이 곳곳에서 보존처리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고난이도의 기술이 필요한 보존처리와 복원작업을 위해 영국의 제안을 받아들여 진행되고 있는 작업이지만 부탄 정부는 여전히 일부 사원만을 개방하고 있다. 연구원들이 부탄에 머물며 작업할 수 있도록 허용된 기간도 오직 한 달 뿐이란다. 문화재 보존과 제한적 개방 정책 사이에서 고민했을 부탄 정부의 선택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진다.

이 어둑한 복도 끝에는 할아버지로부터 대장장이 일을 배웠던 페마링파가 만들었다는 외투형태의 철제갑옷이 보관돼 있다. 무게가 25kg에 달하는 이 갑옷을 들어 올려 자신의 어깨에 올리고 복도를 세 바퀴 돌면 행운을 불러오게 될 것이라 여겨진다. 또 한 벌의 갑옷은 탕비라캉에 남아있다고 한다.

▲ 페마링파가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 멤바르추.

땀씽라캉을 뒤로하고 페마링파의 전설, 아니 역사가 서려있는 멤바르추로 향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숲길을 따라 5분쯤 걸어 들어가니 바위로 둘러싸인 작은 계곡이 모습을 드러낸다. 시퍼렇다 못해 검은 빛이 감도는 계곡 물은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이곳이 성지임을 알리는 오색 타르초가 사방으로 거미줄처럼 걸려 있어 허리를 펴고 걷기가 힘들 정도다. 입구에는 페마링파가 이곳 계곡의 물속에서 보물을 찾아냈다는 안내표지판까지 서 있다. 이들에게 페마링파의 이야기는 신기한 전설이 아니다.

페마링파는 파드마삼바바가 착용했던 것과 같은 형태이자 두 개의 금강저가 교차된 문양이 앞에 그려져 있는 모자를 쓰고 장수를 상징하는 ‘붐파’라는 꽃병을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닝마파의 가장 위대한 스승 가운데 한 명이며 파드마삼바바의 환생이자 그가 숨겨놓은 비전의 발견자이며 온갖 이적을 행한 현 부탄왕조의 조상. 부탄과 부탄불교, 나아가 티베트불교를 둘러싼 모든 특징과 신비로움,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티베트불교의 전통을 하나로 응축시킨 것 같은 이 인물의 모습이 오히려 조금 평범하게 묘사되는 것은 그가 전설 속의 상징이 아닌 실존인물, 오늘날까지 법통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의 자랑스런 조상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함인듯 느껴진다. 

붐탕=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233호 / 2014년 2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