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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페마초울링넌너리

황량한 언덕 외로운 도량서도 ‘수행자의 자긍심’은 자란다

▲ 붐탕의 탕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페마초울링넌너리’. 부처님을 모신 법당과 스님들이 사용하는 요사채, 그리고 강의실 등을 갖춘 수행도량이자 강원이지만 라캉이나 곰파로 불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곳이 여성 수행자들의 도량이기 때문이다.

날것 그대로의 흙길을 벌써 30분 넘게 달리고 있다. 이 차가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건지, 아무도 살 것 같지 않게 생긴 숲 속을 지나 산위로 계속 올라가고 있다. 부탄 여성 수행자들의 일상과 교육이 궁금해 비구니 사찰을 방문하기로 했는데 이런 깊은 숲속에 있을 줄이야. 제법 고도가 올라갔는지 나무도 자취를 감춘다. 덕분에 시야가 탁 트인 산등성이를 따라 또 한 참을 달린다. 그렇게 1시간여, 거센 산바람이 몰아치는 언덕 정상에 커다란 사원 하나가 덩그러니 서있다. 붐탕의 탕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비구니 사원이자 강원인 페마 초울링 넌너리. 현지에서 부르는 정식 명칭은 ‘페마덱촉초울링쉐드라(Pema Thekchok Choling Shedra)’다. ‘쉐드라’는 티베트불교의 남녀 교육기관을 뜻하는 단어로 우리의 ‘강원’과 비슷한 의미다. 하지만 사원을 뜻하는 곰파나 라캉이 아닌 굳이 여성수도원을 뜻하는 영어단어 ‘넌너리(Nunnery)’가 붙은 이유는 티베트불교 여성수행자의 열악한 위치와 연관이 있다.

티베트불교권에 포함되는 부탄에는
여성 수행자 있지만 비구니는 없어
사원도 라캉·곰파 아닌 ‘넌너리’
삭발염의 하고 평생 수행에 매진

“이 언덕에 여성 수행처 생길 것”
15세기 페마링파 예언의 실현인가
깊은 산속 자리잡아 2010년 완공
부탄 유일의 비구니 강원 ‘쉐드라’

150여명 함께  9년 과정 교육 이수
어린 스님들 거처에선 한류 느껴져
정부 지원 없이 보시 의지해 운영
“좋은 방향으로 꾸준히 발전할 것”

티베트불교에는 전통적으로 비구니가 없다. 즉 비구니계를 받은 정식 출가자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비구니계가 전해진 역사가 없기 때문에 여성이 출가를 해도 비구니계를 전할 스승이 없다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여성수행자들은 비구와 마찬가지로 삭발염의 하고 독신으로 살며 수행하면서도 그 위상에서 만큼은 정식 출가자인 비구와 차이가 있다. 여성수행자에게 스님을 뜻하는 ‘라마’라는 호칭도 쓰지 않는다. 굳이 우리와 비교하자면 비구니가 아닌 사미니와 같은 상태로 평생을 보내는 것이다. 부탄에는 이와 같은 여성 수행자가 약 7000여 명에 달하지만 이들을 위한 교육 시설이 생겨난 것도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비구 못지않게 수행과 포교에 헌신하며 사부중의 한 기둥으로서 자신들의 위상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을 굳이 사미니로 부를 생각은 없다.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ㅁ’자 형태로 들어선 2층 건물들은 마치 작은 종과 닮아있다. 입구와 마주보고 있는 중심 건물의 가장 높은 3층에는 황금색의 지붕을 얹은 법당도 자리하고 있다. 좌우로 도열하듯 길게 늘어서 있는 회랑 안쪽에는 여러 개의 방이 이어지고 곳곳에 붉은 가사를 수한 비구니 스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그 사이에서 키 작은 스님 한 분이 일행을 향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온다. 오늘 일행을 안내해주기로 한 킨레이 왕모 스님이다. 왕모 스님의 안내를 받아 마당을 가로지르니 모든 스님들의 이목이 우리에게 집중된다. 하지만 외부인을 빤히 쳐다보는 낯선 눈빛이 아니다. 수줍게 고개를 숙여가면서도 호기심을 참지 못해 자꾸 돌아보는 소박하면서도 천진한 시선이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방문객의 인사에 응답하기 위해 합장한 손을 들어 올리는 스님들의 얼굴에는 한 눈에 보아도 앳된 소녀의 맑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가득하다.

이곳 쉐드라도 15세기 부탄불교의 위대한 수행자 페마링파와 인연을 맺고 있다. 페마링파는 탕지역의 깊은 계곡인 이곳에 먼 미래 여성 수행자들을 위한 수행처가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페마링파의 예언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는 여성수행자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여러 개의 작은 움막을 짓고 살며 평생을 수행에 매진했다고 한다.

그랬던 이 언덕 위에 페마링파의 예언이 실현된 것은 21세기 들어서다. 예언을 실현시킨 주인공은 페마링파의 환생으로 여겨지는 강테 툴크 린포체(1955~)다. ‘툴크’란 환생한 수행자를 의미한다. 부탄에서는 정부가 인정하는 불교계의 공인기관에서 일정한 검증절차를 거쳐 환생을 공인받아야만 ‘툴크’로 인정된다. 공인 받은 툴크들은 추가적인 교육을 받은 후 ‘린포체’라는 최고의 법계를 수여받게 된다.

강테 툴크 린포체는 페마링파, 그 가운데서도 페마링파의 가르침의 환생(페마링파의 사후에 그의 몸, 말, 정신이 각각 따로 환생했음은 앞서의 연재에서 살펴본바 있다)으로 여겨진다. 그는 2005년부터 이곳에 여성수행자들을 위한 교육시설 불사를 시작, 2010년 마침내 페마초울링넌너리가 완공됐다. 비록 라캉이나 곰파와 같은 성소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엄연한 쉐드라, 강원으로서 여성 수행자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강테 툴크 린포체는 이곳을 포함 부탄 전역에 모두 36개의 사원을 세웠는데 그 가운데는 3곳의 비구니 수행처가 포함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쉐드라로서 사격을 갖춘 곳은 이곳 뿐이다.

페마초울링넌너리에는 모두 150여 명의 여성 수행자들이 생활하고 있다. 연령대도 열두 살에서부터 일흔 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정식 교육 기간은 9년. 8명의 비구니 강사와 2명의 비구 강사가 이들을 지도하고 있지만 닝마파의 수행 전통을 따르고 있어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대신 강테 툴크 린포체의 지원과 외부에서 들어오는 보시에 의지해 운영되고 있다.

▲ 쉐드라의 강사인 킨레이 왕모 스님.

왕모 스님 역시 이곳에서 불교철학을 가르치는 강사다. 현재 27살인 왕모 스님은 2010년 쉐드라를 졸업했다. 부탄에는 약 21개의 비구니 사원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이곳이 가장 크다. 물론 푸나카나 파로 등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곳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큰 쉐드라가 있는 곳은 이곳뿐이다.

쉐드라는 법당을 중심으로 스님들이 공부하는 교실과 생활하는 요사, 그리고 공양을 준비하는 후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스님들의 방은 작고 소박하지만 가끔씩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이곳에도 한류가 불었는지 스님들 방에서 가끔씩 한국 드라마를 소개하는 포스터나 출연 배우들의 사진도 보인다. “어린 스님들은 아직 수행이나 공부보다는 한국 드라마를 더 좋아하기도 한다”며 후배들 편을 들어주는 왕모 스님의 표정이 마치 철없는 딸을 둔 어머니 같다.

▲ 소박한 저녁 공양을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쉐드라에서는 새벽 5시30분 예불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오전과 오후로 나눠 경전 공부 등 수업이 계속되고 강의 중간 휴식시간엔 차를 마시거나 베드민턴 등 가벼운 운동을 즐기기도 한다. 또 매일 30분 정도씩 규칙적으로 요가도 배운다. 휴일에는 텔레비전 시청이나 음악 감상도 가능하다. 9년 과정의 쉐드라 교육을 마치면 ‘족첸’이라 부르는 3년간의 의무 수행기간이 따른다. 족첸기간 중에는 ‘참캉’이라는 작은 움막에 머무는데 개인이 지을 수도 있고 기존에 있는 참캉을 일정한 순번에 따라 이용할 수도 있다. 그 후에는 본인의 희망 여부에 따라 공부를 더 하거나 강사가 될 수도 있다.

왕모 스님이 가장 존경하는 비구니 아마 루펜 스님은 푸나카 지역에 있는 참캉에서 평생 수행하시다 몇 해 전 세납 80으로 입적하셨다고 한다. 깊은 산 속에서 홀로 수행하셨던 아마 루펜 스님의 사진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왕모 스님의 얼굴에 그리움이 가득하다.

여성 수행자들의 출가도 남성과 다를 바 없다. 출가를 원할 경우에는 가족과 논의한 후 스님을 찾아가 출가를 부탁하면 된다. 가족이 반대하거나 결혼을 했을 경우라면 곤란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이제한은 없다. 결혼을 했더라도 이혼을 한다면 출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곳에는 이혼 후 출가한 여성 수행자는 없다.

“요즘은 여성 수행자들도 비구와 같은 교육을 받기 때문에 피부로 느껴지는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성 수행자에게는 체계적인 불교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죠. 그래서 수행에만 전념하셨던 스님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부탄불교 역시 대승불교에 포함되기 때문에 출가자로서 비구와 비구니의 근본적인 위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수행자도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할 수 있고 신도들의 초청을 받아 각 가정에서 푸자(법회)를 집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육의 역사가 길지 않다보니 여성 수행자를 지도할 강사의 수가 적고 여전히 비구니계를 수계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하지만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왕모 스님은 여러 사람에게 불교를 가르치고 싶어 출가했다. 여성도 비구와 마찬가지로 수행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이곳에서 어린 스님들을 지도할 계획이지만 이곳에 머무는 것이 자신의 수행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 외진 곳에서 수행에 전념할 계획이다. 존경하는 아마 루펜 스님처럼.

쉐드라는 부탄력 12월에 25일간의 방학에 들어간다. 이때가 되면 스님들은 가족을 만나러 가거나 평소 가보지 못했던 사원으로 성지순례를 가기도 한다. 왕모 스님도 파로의 탁상사원으로 성지순례를 갈 계획이다. 일행의 마지막 목적지가 탁상사원이라고 말하자 부러움 가득한 눈길을 보낸다.

우리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마당에서는 긴 나팔같이 생긴 전통악기 둥의 연주소리가 이어진다. 전통 의식과 문화를 배우는 것도 스님들에게는 경전 공부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비록 출가 승단의 양 기둥인 비구니로서의 신분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비구 못지않게 교육과 수행, 그리고 전통의 계승에 힘쓰는 이들에게서 누가 ‘비구니’의 자부심을 뺏어갈 수 있을까.

▲ 전통 악기 둥을 배우고 있는 학인 스님들.

“쉐드라를 건설하는 동안 이곳에서 수행하던 모든 스님들이 함께 힘을 모아 돌을 옮기고 벽을 만들었어요. 남자와 다를 바 없이 일해서 일군 이 터전에서 비구와 다를 바 없이 공부하고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자랑스럽습니다. 굳이 비구니라는 호칭이 없더라도 우리는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계속 도량을 가꾸고 수행해 갈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힘주어 말하는 왕모 스님의 얼굴은 히말라야의 산맥 같은 강한 의지와 흰눈 봉우리고 뿜어내는 환한 빛을 함께 빼닮고 있었다. 

붐탕=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234호 / 2014년 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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