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연기관(緣起論)
6. 연기관(緣起論)
  • 이제열 법사
  • 승인 2014.03.2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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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생멸고락 떠난 중도묘법의 실상

▲ 그림=김승연 화백

불교에서 연기론을 빼면 나머지 교리들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 부처님의 깨달음도 연기론이었으며 제자들에게 수행을 통해 확인시키려 했던 것도 연기론이었다. ‘잡아함경’ 요본생사경에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고 밝히고 있다. 연기론이 불교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연기란 팔리어 ‘Paticca Samuppada’에서 비롯된 용어다. ‘무엇무엇 때문에 일어난다.’ ‘무엇무엇 때문에 생겨난다.’라는 뜻이다. 어떤 법이 일어나고 생길 때에는 어떤 조건에 의지해야만 일어나고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연기론을 설함에 있어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는 상당히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초기불교가 연기를 인과의 측면에서 보고 있다면 대승불교는 상의관계의 측면에서 보고 있다. 연기에 대한 설명도 초기불교가 십이연기(十二緣起) 육육연기(六六緣起) 업감연기(業減緣起) 등을 말하는데 반해 대승불교는 진여연기(眞如緣起 ) 아뢰야연기(阿賴耶緣起) 법계연기(法界緣起)를 설하고 있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는
연기론에서 확연히 차이

초기불교에서 연기론은
괴로움 발생 소멸 초점

대승의 연기론은 무자성
발생 소멸 자체가 없어

십이연기는 무명·행·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로 진행되는 연기론이고 육육연기는 육근·육경·육내입처·육외입처·육식·육촉·육수·육상·육사·애·취·유·생·노·사로 진행되는 연기론이다. 업감연기는 전 찰나의 업에 의해 후 찰나의 법이 일어나면서 업에 의해 중생이 삼생에 걸쳐 윤회한다는 연기론이다. 진여연기는 일체의 존재 그대로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참되고 한결 같아서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다는 연기론이고 아뢰야연기는 만법이 모두 중생의 아뢰야식이라는 마음에 의지해서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가르침이다. 또 법계연기론은 중생의 마음과 세계가 차별이 없는 가운데에 서로 인이 되고 연이 되고 과가 되면서 무궁무진하게 전개된다는 연기론이다.

초기불교의 연기론이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대승불교의 연기론은 일체존재의 실상을 규명하는 데에 방점이 찍혀있다. 초기불교의 특징은 중생을 이루는 오온에서 어떻게 괴로움이 발생하고 사라지는지에 대해 관심을 쏟는다. 오온은 연기된 존재이고 연기된 존재는 곧 괴로움이다. 오온과 연기와 괴로움은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불교의 목표가 괴로움의 소멸에 있는 점을 감안하면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연기가 소멸했다는 것이며 연기가 소멸했다는 것은 오온이 소멸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초기불교의 연기설 가운데에 기본이 되는 십이연기설의 환멸연기는 바로 괴로움의 종식에 관한 과정을 밝힌 것이다. 결국 중생들이 자아라고 여기는 오온의 종식을 요구하는 교설이다.

이에 반해 대승불교의 연기론은 연기를 오온에서 진행되고 있는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의 법칙으로 삼지 않고 일체만법을 성립하게 하는 법칙성으로 삼는다는데 있다. 대승에서 연기는 곧 의타기(依他起)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의타기란 모든 법은 반드시 다른 법에 의지해서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교설로 연기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목탁소리의 경우 목탁소리는 결코 홀로 발생하지 못하고 목탁과 목탁 채와 목탁을 치는 사람과 치는 행위 등이 갖추어 질 때에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처럼 모든 법들은 자체적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조건들이 갖추어져서 발생한다. 의타기가 곧 연기인 셈이다. 그래서 연기된 법은 모두 무자성(無自性)이며 공(空)이다. 무자성이란 일체가 다른 것에 의지해서 일어났으므로 자체 성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공이란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연기는 의타기이며 의타기는 무자성이고 무자성은 곧 공이 되는 것이다.

특히 대승불교가 초기불교와 연기론을 바라보는 관점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은 무기설(無起設)에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연기를 일어남이나 생겨남으로 보지 않고 생겨나지 않음, 일어나지 않음으로 본다. 초기불교에서는 모든 법은 연을 통하여 일어나고 이렇게 연을 통해 일어난 법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논리를 세운다. 이른바 법의 생멸이다. 오온(五蘊)은 연기 된 존재이고 연기는 생멸이며 생멸은 괴로움의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초기불교의 연기론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대승에서는 연기된 모든 법은 자체 성품이 없기 때문에 실제에 있어서는 발생하거나 일어난 적이 없다는 논리이다. 연기는 즉 무기라는 것이다. 목탁소리에 있어 초기불교에서는 목탁소리는 분명히 존재하고 목탁소리가 존재하는 한 그 소리는 끊임없이 생멸한다고 본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목탁소리에는 목탁소리라고 할 만한 자성이 없기 때문에 목탁소리가 분명히 나고 있다 해도 실상에 있어서는 목탁소리가 아니며 목탁소리가 아니기 때문에 목탁소리는 난적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십이연기로 설명한다면 십이연기는 각 지분마다 실체가 없어서 일어난 듯 보이지만 이는 모두 허구이고 실상에 있어서는 본래는 아무런 법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 된다. 무명 자체가 연기된 존재라면 그 무명은 무명이라 할 만한 자성이 있는 것이 아니며 무명이 자성이 없으므로 무명은 일어나지 않았고 무명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뒤에 이어지는 행·식·명색 등의 고리들도 일어 난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승불교에서는 법을 바로 본다함은 연기를 바로 본다는 것이고 연기를 바로 본다는 것은 법에 기멸과 생멸이 없음을 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대승열반경은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십이연기를 설하면서 “십이인연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항상하지도 않고 단절되지도 않으며,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며, 원인도 아니고 결과도 아니니 원인도 아니고 결과도 아닌 것을 불성이라 하니 원인도 아니고 결과도 아니므로 항상 무변하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대승불교에서 볼 때 연기는 부정적 법칙이 아니다. 무기이므로 본래 고요한 것이며 본래 고요하기 때문에 중생의 오온과 일체법이 그대로 부처의 속성을 지닌다. 대승불교의 연기론은 후에 불성론이나 법신론 열반론 정토론 등과 동일시되어 대승불교 교리의 기반을 이룬다. 대 긍정의 법칙이 연기론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연기는 벗어남의 대상이 아니라 생멸과 고락을 떠난 중도묘법의 실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열 법림법회 법사  yoomalee@hanmail.net
 

[1238호 / 2014년 3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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