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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세월호’ 아이들이 남긴 말

기자명 하림 스님

어두운 창문 밖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오늘은 왠지 그 소리마저 귀에 거슬립니다. 바닷물에 갇혀 있는 어린 친구들이 추위에 떨 것 같아서입니다. 왜 이렇게 자꾸 슬퍼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의 몸짓과 마음이 하나 둘씩 전해질 때마다 가슴이 시립니다. 사람의 소식은 없고 마지막 순간의 외침들만 뜨문뜨문 들려옵니다.

물에 빠진 아이 생각하면
슬픔 깊어져 가슴 시려와
지금 책임 대상 찾기보다
서로 슬픔 나눠야 할 때

오늘이 마침 지장재일이라 위패를 하나 더 얹었습니다. 차마 영가라고 부를 수 없어 고민하다가 세월호의 친구들이라고만 적었습니다. 염불을 하면서 중간 중간 슬픔이 북받쳐 옵니다. 그러면서 화가 납니다. 도대체 관세음보살님은 뭐하시나. 물에 빠져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들 구해주지 않고. 배 안에 갇혀 있을 아이들을 구해 주지 않고. 순간 원망하는 마음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아니 누군가를 원망하고 누군가에게 고함을 지르고 혼내주고 싶습니다. 슬픔의 파도에 온 국민이 빠져있습니다. 그 많은 신들은 다 어디가고 그 많은 구세주들은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미래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왜 아이들이 그 배에 타도록 말리지 않았고, 배가 출항하는 것을 멈추게 하지 않았는가요? 행여 그런 능력이 있음에도 내버려 두었다면 그들은 큰 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미리 아는 인간은 아무도 없고, 그것을 내다보는 어떤 신도 없습니다. 있다면 신이라도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신이 안 되니 누군가에게 화풀이할 대상을 찾습니다. 누구의 잘못인지, 누구 때문인지를 찾아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그 누군가는 아마 불안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입니다. 슬픕니다. 그리고 그 슬픔은 활화산처럼 분노로 변합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언제 어느 곳으로 터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더 슬픕니다. 마른 들판에 불덩어리가 온 벌판을 굴러다닐 것 같기 때문입니다. 먼저 간 이는 슬픕니다. 남은 이들도 힘이 듭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용해 내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사회의 성숙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지금 책임질 사람을 찾는 것이 우선이 아닙니다. 책임질 대상은 어디 가지 않습니다. 지금은 구조를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혜를 모을 때입니다. 남은 가족들과 함께 슬픔을 나눌 때입니다. 가족들이 울 때 어깨를 빌려줄 때입니다. 그리고 시민들이 슬픔을 나눌 수 있는 분향소를 설치하는 것입니다.

울고 싶을 때 울고 나면 좀 났습니다. 시민이 슬퍼할 곳이 있어야 합니다. 저희 절에도 작으나마 분향소를 설치합니다. 마음을 달래는데 최소한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슬픔이 분노를 부르고 그 분노가 다시 더 큰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져가는 것을 아이들은 원치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그들이 남긴 말이 있습니다. “엄마! 사랑해요.” 그들의 마지막 말이 누군가를 원망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못다 한 사랑을 나누고자 했던 말입니다. “애들아! 내가 잘못한 것 용서해줘.” 친구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이 이 아이들의 마지막 말이자 마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모여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서로 못다 한 사랑을 나누는 마음으로, 용서받지 못했던 일에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이 사고를 수습해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아이들아, 살아 있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 그리고 너희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께. 부디 편안하고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한다. 안녕!

하림 스님 whyharim@hanmail.net
 

 

[1242호 / 2014년 4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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