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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자관

대승의 제자들은 방편으로 화현한 보살

▲ 그림=김승연 화백

스승의 수준이 높으면 제자들의 수준도 그에 맞게 높아야 한다. 초기불교의 교리를 한 단계 뛰어넘어선 대승불교에서 부처님 제자들은 초기불교와 많이 다르다. 초기불교에서 부처님이 법을 설하는 대상은 비구들이 대부분이다. 부처님께 귀의한 사람들은 비구만 있는 것은 아니고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도 있지만 법은 주로 비구들을 대상으로 행해진다. 법을 설하는 방식도 초기불교는 많은 대중을 모아놓고 동시에 법을 설하기 보다는 개인이나 작은 무리들을 향해서 그때그때 법을 설한다. 제자들이 부처님을 대하는 예법이나 청법의 방식도 매우 소박하고 단출하다.

초기불교 제자는 실존인물
대승불교는 초인격적 존재

초기불교 제자는 걸사지만
대승의 제자는 베푸는 존재

초기경전에 따르면 부처님에게는 훌륭한 제자들이 많이 있다. 수행 경지가 아라한에 오른 비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리불, 아난, 목련, 가섭 등과 같은 십대제자가 있다. 사람들은 부처님의 십대제자라고 하면 위에 열거한 비구 십대제자들을 떠올리지만 십대제자는 비구들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비구니 십대제자도 있고 우바새 십대제자도 있었으며 우바이 십대제자도 있었다. 이들 제자들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무학(無學)의 성자들로 부처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이들이었다. 이런 부처님 제자 중에서 가장 출중한 제자를 꼽는다면 사리불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은 사리불을 법의 사령관이라 할 만큼 총애하셨고 자신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도록 부탁까지 하셨다. 초기불교에서 부처님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지만 모두가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제자들 중에는 데와닷다와 같은 배반자가 있는가 하면 자리를 깔아달라는 부처님의 청을 단호히 거절하면서 “세존의 일은 세존이 하소서. 저는 제 일을 하겠습니다”고 말하는 비구도 있었다. 초기경전의 부처님과 제자들은 극히 인간적 모습으로 가르침이 설해진다. 수행을 통해 얻은 경지는 초인적이었겠지만 모습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형태를 벗어나지 않았다.

초기불교의 이러한 모습과는 달리 대승경전의 제자들은 인간의 모습이나 속성을 띠고 있지 않다. 대승경전에서 비구들의 위상은 극히 축소된다. 대승경전에서 설법대상은 비구들이 아닌 보살이나 선남자·선여인이다. 초기경전에는 부처님이 설법을 하기 전에 대부분 “비구들이여” 라고 부르지만 대승경전에서는 “선남자 선여인 혹은 ~보살이여”라고 부른다. 비구 중심의 교설에서 보살 중심의 교설로 바뀐 것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대승경전에서는 사리불, 가섭, 목련 등과 같은 훌륭한 제자들도 품격이 낮은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승경전에서는 완벽성을 자랑하는 사리불조차도 질책을 받고 교화의 대상이 된다. ‘법화경’이나 ‘화엄경’ ‘반야경’과 같은 대승경전을 보면 사리불은 언제나 미완성의 인물로 등장한다. 부처님과 보살로부터 질책을 당하거나 대승의 가르침을 듣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수행자의 모습을 띤다. 특히 대승경전에 나오는 부처님의 제자들은 인간의 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초인격적이고 초역사적인 인물들로 부처님의 깨달음에서 방편으로 화현한 보살들이다.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소승으로 보는 대승불교로서는 사리불과 같은 비구들을 법의 전승자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승불교는 자신들의 가르침을 전승하기 위해 새로운 법의 계승자를 필요로 했고 그 적임자를 비구가 아닌 보살에 두었다. ‘유마경’에 나오는 유마거사는 재가보살의 대표가 되는 보살이다. 유마거사의 뿌리는 초기경전 ‘쌍윷다니까야’에 나오는 찌따장자라 할 수 있다. 찌따장자는 유마거사와 같은 바이샬리 사람으로 아라한의 지위에 올랐으며 장로급 비구들과 대론을 하기도 하고 암마라원이라는 절을 지어 그 곳에 살면서 종신토록 수행만 하던 사람이었다. 찌따장자는 부처님으로부터 재가법사제일이라는 호칭을 받기도 하였는데 후에 대승불교에서 그를 보살로서의 유마거사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제자들의 숫자도 초기불교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초기불교에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숫자가 한명·두명·일백명·오백명·일천명 등으로 나온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십만명·백천만억명·아승지 등으로 표현된다. 이 세계의 보살이나 중생뿐 아니라 타방 국토의 보살이나 중생들까지 몰려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교화를 받는다. 설법방식도 한꺼번에 엄청난 인원을 향해 끝없는 가르침이 펼쳐진다. 예법과 청법에 있어서도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을 향해 한없는 존경심과 함께 몸을 던지는 방식의 예를 표한다. 부처님을 대하는 태도가 초기불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엄숙하고 거룩한 것이다. 제자들의 모습도 다르다. 비구 중심의 초기불교 제자들은 재가신자들로부터 공양을 받는 존재다. 남루한 옷을 걸치고 맨발로 거리에서 탁발을 하는 모습이 초기불교의 제자들이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제자들은 탁발이 없다. 보살을 제자로 삼고 있는 대승불교에서는 재가신도들의 공양을 필요로 하지 않을뿐더러 가사를 걸치지도 않고 맨발을 하고 다니지도 않는다. 도리어 대승불교의 보살제자들은 매우 화려한 의상과 영락을 걸치고 있으며 중생들을 향해 베푸는 모습을 띤다. 대승불교에서의 부처님 제자는 초기불교의 제자들처럼 걸사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무한한 능력과 불가사의한 힘을 갖추고 온갖 장엄된 공덕으로 중생들을 교화 한다. 비구불교가 아닌 보살불교는 공양을 받는 존재에서 공양을 베푸는 존재로 바뀐다. 대승의 교화방식은 권현보살(權現普薩)이 지전보살(地前菩薩)들에게 법을 설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현보살은 부처님에게 있어 부처님 자신임과 동시에 제자이다. 그 제자가 미완성의 발심한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는 것이 대승불교의 설법형태라 할 수 있다. 실존 인물들인 초기불교의 제자들과 권화신인 대승불교의 제자들 중에서 신뢰도는 아무래도 초기불교의 제자들일 것이다. 사람들은 가공의 인물보다는 실존인물에 더욱 믿음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승의 이념을 전개하기 위해 출현시킨 화현제자들은 대승불교의 탁월한 안목이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열 법림법회 법사  yoomalee@hanmail.net

[1245호 / 2014년 5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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