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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중학생 시절의 회상

기자명 하림 스님

중학교 때 일이 생각납니다. 어릴 적 지리산 실상사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산 넘어 남쪽인 화개 쌍계사에서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전학을 간 여름 방학기간으로 기억이 됩니다. 이름처럼 쌍계사는 양 옆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습니다. 동생하고 계곡 쪽으로 수영을 하러가는데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침 물고기를 죽이면 절대 안 된다는 신념으로 살고 있을 때여서 큰 소리로 “야! 너희들 모두 나가, 여기서 물고기 잡으면 안 돼”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이들은 순간 멈칫 거렸습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갈등하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더 크게 그리고 강하게 소리쳤습니다. “여기서 고기 잡지 말라고.”

물고기 잡는 아이들에게
규칙 앞세워 소리쳤던 일
‘내가 주인’이란 생각은
아직도 내 삶 힘들게 해

아이들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순순히 고기 잡는 것을 그만두고 동네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개학을 했습니다. 교실에 처음 자리를 배정 받았는데 마침 한 아이의 옆자리가 비어서 앉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제 옆자리에 앉은 아이는 물고기를 잡던 바로 그 아이였습니다. 그 인연 때문인지 그 아이는 중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로 지금도 추억 속에 주인공이 되어있습니다.

체격도 그리 크지 않은 제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곰곰이 되짚어봅니다. 그것은 아마 절은 나의 구역이라고 믿는 자신감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넓은 땅과 계곡에서는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절 인근에 오면 함부로 살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그 규칙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당당하게 나서야 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 중학교 시절을 생각하면서 지금 내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많아 놀라게 됩니다. 어찌 그 때의 모습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 곳 용두산 절에 와서 산지가 벌써 9년을 넘어 10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대나무가 마디의 힘으로 성장해 가듯 10년이란 세월을 뭔가 마디로 삼고 싶은 생각이 많습니다.

스님들과 신도님들을 대할 때 이곳에서는 나의 생각을 존중해 달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에 동의하지 않으면 동의하는 곳에 가서 살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당신도 힘들지 않고 이곳도 힘들지 않다고 말이지요. 그러다 보니 모든 결정을 제가 하게 되고 모든 식구들이 저의 결정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늘 힘들어하는 모습이 제 삶의 길이 되었습니다. 이젠 뭔가 다른 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남의 앞에 서는 길이 아니라 남의 뒤에 서는 길을 가고 싶습니다. 주목을 받으려는 길이 아니라 주목을 피하는 길이고 채우려는 길이 아니라 비우려는 길을 가고 싶습니다. 이젠 자연과 함께 하고 싶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가급적 불을 켜지 않습니다. 어둠이 걷히고 밝음이 찾아오는 것을 보고 싶어서입니다. 문을 열어서 서늘한 공기를 만납니다. 바람이 피부에 와 닿을 때, 향긋한 내음이 코끝을 두드릴 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새 소리가 들려올 때 저절로 눈이 감아집니다. 머리가 시원해지고 평온해진 마음을 만납니다. 자연은 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눈을 뜨고 공기를 만나면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 이런 것에 감사하고 고마워하고 눈물 흘리며 사는 길을 걷고 싶습니다. 존재하게 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하림 스님 whyharim@hanmail.net

[1245호 / 2014년 5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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