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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일상서 깨달은 수행 의미

기자명 하림 스님

며칠 전 저녁 공양 초대를 받아 한 신도 집에 갔습니다. 어린 남자아이 둘이 거실에 누어있었습니다. 양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인사할 겨를도 없이 벌러덩 누워서 게임에 집중합니다. ‘아이고 이래서 될까’하다가, 순간 ‘아니야 이 아이들도 성장하면 달라지겠지’라는 목소리가 내면에서 들려옵니다. 게임을 마치면 ‘원래대로 착한 아이들로 돌아갈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바라봅니다. 잠시 후 호통을 치는 엄마의 목소리에 아이들은 게임에서 빠져나옵니다. 집착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깨우침의 소리였습니다. 그 시간이 10분 정도 걸렸습니다. 어떤 판단을 할 때 ‘그 판단이 너무 빨라도 안 되겠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사도 하지 않고 게임에 열중하던 아이는 10분 뒤에는 착하고 귀여운 아이였습니다. 매사에 판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오류를 만들어 내는지 얼마나 좁은 시각으로 대상을 ‘이렇다 저렇다’고 결정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미리 정한 판단 기준이
자신 옭매는 생각 만들어
수행은 생각·감정 놓아
생각오류서 벗어나는 길

일상에서 무엇인가에 집착해 있을 때 소통이 어려워집니다. 가령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을 때, 상대방의 손을 잡고 싶어도 내 손에 뭔가를 가득 들고 있으면 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소통을 위해서는 내가 들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 아이들이 잠시라도 게임기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면 적정한 시간에 인사를 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이 스스로에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럴 때 엄마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수행이 다른데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지금 잡고 있는 ‘이렇게 해야 해’ 혹은 ‘저렇게 해야 돼’라는 생각과 감정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힘이 있다면 고통의 웅덩이에 빠지는 일이 훨씬 적어질 것입니다.

며칠 전에도 화가 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젊은 보살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불편하게 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상대보다 우위에 있는 입장일 때 약한 사람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잘 참지 못합니다. 사실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제게는 그것이 큰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젊은 보살이 상대를 대하는 과정에서 좋은 분위기가 95%였다면 불편하게 대하는 것은 1%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제 마음은 화로 가득 찼습니다. 다음날 그 보살에게 불편한 소리를 좀 했습니다. 지금 화를 낸 것을 후회하고 어떻게 보살의 마음 상처를 아물게 할까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사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약한 입장에 있어서 상처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분은 전혀 상처를 받은 것 같지 않았습니다. 젊은 보살과 그 분은 둘도 없이 친한 사람이었습니다. 순간 제가 너무 한심합니다. 모두가 혼자만의 생각이었습니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된다’거나 ‘상대보다 우위의 입장에 있을수록 친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지 않은 사람이야. 그런 습관을 고쳐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꽉 붙들려 짜증의 감정을 앞세웠던 것입니다. 이럴 때 누가 큰 소리로 빠져나오게 도와주었다면, 아니면 내가 잠시 심호흡을 하고 열까지 셀 수 있었다면, 양손을 모으고 관세음보살을 10번만 할 수 있었다면, 화두를 들 수 있었다면 그 괴로운 마음을 지금까지 담아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행생활은 우리를 보호하고 치유하는 삶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늘 불법에 의지해서 행복의 길로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하림 스님 whyharim@hanmail.net
 

[1251호 / 2014년 7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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