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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수행관

초기엔 없던 참회·발원도 대승선 수행돼

▲ 그림=김승연 화백

수행은 불교의 이상계에 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불교수행의 범주에 대해 정확하게 정의 내리기란 쉽지 않다. 팔정도(八正道)·육바라밀(六波羅蜜)·십선행(十善行)·사무량심(四無量心)·사섭법(四攝法)·삼심칠조도(三十七助道) 등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수많은 방편을 수행으로 본다면 수행의 범주는 대단히 넓다. 하지만 불교수행을 논한다면 정학(定學)과 혜학(慧學)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정학과 혜학은 모든 불교수행의 근본이다. 그러나 정학과 혜학을 수행하는데 있어 초기와 대승불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초기불교건 대승불교건 정혜를 중심에 놓고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에서 언급하지 않는 많은 방법들을 권장한다.
 
초기불교는 정·혜 별개지만
대승은 정과 혜 함께 닦아
 
초기의 수행법 치밀한 반면
대승의 수행법 무디고 느슨
 
초기불교에서 정학과 혜학은 별개의 수행법이다. 정학은 삼매를 얻는 방법이고 혜학은 지혜를 얻는 방법이다. 삼매를 얻는다고 해서 지혜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삼매보다는 지혜를 수승하게 보는 초기불교로서는 삼매는 지혜를 얻기 위한 전 단계의 수행이다. 초기경전을 보면 정학을 닦는 도중 삼매가 지혜로 전환되어 열반을 성취하는 예가 많이 등장한다. 수행체계에 있어서 정학과 혜학이 분리되고 있는 것이다. 초기불교에서 삼매를 얻기 위해 소개되는 수행법은 지·수·화·풍·허공 등을 떠올리는 까시나 수행, 시체를 떠올리는 부정관을 비롯해 대략 40여 가지 정도이다. 수행자는 수행주제 중에 하나를 택하여 계속적으로 마음속에 떠올린 다음 표상을 얻고 그 표상이 높은 차원의 선정 단계로 나아가도록 집중한다. 그리고 수행자는 이런 삼매에서 얻어진 평정의 힘으로 몸과 마음을 직접적으로 관찰하는 혜학을 닦아나간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정학과 혜학을 뚜렷하게 분리하고 있지 않다. 정혜쌍수(定慧雙修)라 하여 정과 혜를 함께 닦는 법을 말하고 있다. 또 초기불교에서 정과 혜가 열반을 이루는 수단인데 비해 대승불교에서는 정과 혜는 열반 안에 수반되어지는 경지 그 자체다. 초기불교가 정혜와 열반을 분리하고 있는 반면 대승불교는 정혜와 열반이 다른 경지가 아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삼매를 깨달음과 열반을 대신하는 용어로 삼고 있다. 초기불교의 근접삼매니 본삼매니하는 용어들은 열반을 이루기 전 수행의 과정에서 얻어지지만 대승의 삼매들은 수행과정과 함께 열반에서도 얻어진다. 이를테면 대승불교의 경전에 따라 소개되고 있는 해인 삼매(海印三昧)니 무량의처삼매(無量義處三昧)니 금강삼매(金剛三昧)니 하는 용어들은 모두 부처님이 이루신 경지 자체를 나타내는 말들이다. 지나칠 수 없는 점은 대승의 이러한 삼매들이 대승의 주된 사상인 불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생들의 불성 안에는 본래부터 정과 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정혜는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없고 깨달음과 열반을 성취할 때에 비로소 드러난다. 대승불교에서 삼매를 얻기 위해 소개되는 방법은 초기불교에서 권하고 있는 40여 가지의 주제와는 별개의 방법들이다.
무엇보다 대승불교에서는 삼매를 얻기 위한 전단계로 공덕을 쌓는 수행을 적극 권장한다. 수행자가 공덕을 쌓게 되면 삼매를 얻을 수 있고 나아가 지혜를 성취한다고 가르친다. 공덕수행은 정학 그리고 혜학을 성취하는데 크나큰 자양분으로 작용하여 필경 불도를 완성하게 된다. 이때 공덕을 쌓는 수행이란 경전의 사경(寫經)이나 수지독송, 참회, 발원 등이다. 대승불교의 각 경전마다에는 경전이 지닌 위력을 설하고 그 경을 베끼거나 수지하고 독송하면 최고의 공덕을 얻고 필경 불도를 성취 할 것이라고 가르친다. 또한 대승불교에서는 과거의 죄장과 업장을 불보살 앞에서 참회하고 소멸시킬 것을 설하고 있으며 갖가지 서원을 발하는 행위로 성불의 인을 삼을 것을 요구한다. 초기불교에는 없는 이러한 수행법이 대승불교에 강력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삼매를 닦는 방법에 있어 대승불교에서는 좀 더 일반화 된 방법이 설해진다. 염불이나 다라니독송 등이 대표적이다. 염불의 경우 초기불교에서도 삼매를 얻는 방법으로 설해지고 있지만 대승불교에서는 다양한 불보살의 명칭을 등장시켜 칭념염불, 관상염불 등에 적용한다. 다라니의 독송은 마음을 집중시키는 독특한 방법이다. 부사의한 언어로 이루어진 다라니의 위력을 믿고 수지독송하면 온갖 삼매를 얻어 부처의 경지를 이룬다고 가르친다. 본래 다라니는 초기불교에서는 금기시하는 외도들의 수행법이었다. 부처님은 세간의 주문 따위에 의지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타이르셨다. 그러나 후에 대승불교에 이르러 주문으로서의 다라니는 공덕과 깨달음을 이루는 중요한 방편으로 자리매김한다. 부처님의 정법과 부합하는 견해를 지니고 마음을 집중시키는 도구로 사용한다면 오히려 훌륭한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에서 이렇게 사경이나 경전 수지독송, 참회, 발원, 염불과 다라니 등의 방편들을 만들어 낸 것은 수행의 대중화와 용이성 때문이다. 초기불교의 까시나 수행법과 부정관 등의 수행은 쉽게 닦을 수 있는 방법들은 아니다. 흙으로 쟁반 같은 모양을 만들어 계속 들여다본다든가 죽은 시체의 썩어가는 모습을 계속 들여다보는 수행은 아무래도 힘들다. 일상에서 수시로 닦을 수도 없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출가한 수행자들이나 할 수 있는 방편들인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열거한 수행법들은 출가하지 않은 재가신자들도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대승불교의 지혜수행은 초기불교처럼 몸과 마음을 모두 관찰하라고 강조하지 않는다. 마음을 하나의 주제에 몰입시키는 삼매를 닦다보면 홀연히 불성이 열려 완전한 지혜를 얻기도 하고 부처님의 형상을 떠올려 표상을 얻은 후 그 표상을 예의주시하는 관찰법에 의해 불성의 지혜를 얻는다고 한다. 마음을 몰입하고 마음을 보는 수행으로 정혜가 완성 되는 것이다. 여기서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승불교가 초기불교에 비해 정과 혜를 닦는 방법에 있어 구체적이지 못하다는데 있다. 초기불교의 수행법이 예리하고 치밀한 반면 대승불교의 수행법은 무디고 느슨하다. 만약 이 둘을 잘 융합한다면 불교수행은 진일보 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제열 법림법회 법사 yoomalee@hanmail.net

[1253호 / 2014년 7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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