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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노블링카

티베트 민초들이 흘린 핏물 배인 달라이라마의 여름궁전

▲ 현재 인도에 망명 중인 14대 달라이라마는 노블랑카를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생애 가장 행복한 추억이 깃든 곳'으로 회고할 정도다. 그러나 노블랑카는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중국인들의 총칼에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1959년 3월, 라싸에서 신년 축제기간에 맞춰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1년 전인 1958년 티베트 동부 캄과 암도 지역을 피로 물들인 무장봉기에 이은 독립투쟁이었다. 중국정부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12만 명이 학살되고 6000개 사원이 파괴됐다. 불안한 정국이 지속되자 중국정부가 달라이라마를 납치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연극공연에 초대하면서 홀로 중국군 사령부로 오라는 조건을 붙인 것이다. 수만 명 티베트인들이 달라이라마를 보호하기 위해 노블링카로 모여들었다. 중국정부는 이들을 짓밟기로 결정했다. 달라이라마는 결단을 내려야했다. 3월18일 밤 9시, 군복을 입고 병사로 위장한 채 소수 인원의 호위를 받으며 탈출을 시도했다. 중국정부가 노블링카를 향해 기관총과 박격포를 쐈으나 티베트인들은 물러서지 않고 스스로의 몸을 방패삼아 달라이라마의 탈출시간을 벌었다. 8만7000명 티베트인들이 스러져갔다. 달라이라마는 티베트인들의 희생에 눈물 흘릴새도 없이 2600km 고단한 여정 끝에 3월31일 인도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1959년 달라이라마 납치 소문에
티베트 민중 수만 명 모여들어
달라이라마 탈출시간 벌기 위해
중국군 기관총에 맨몸으로 맞서
8만7000명 숨 거둔 역사의 현장
 
달라이라마 자취 곳곳에 남아
지금도 순례하는 티베트인 많아
집무실 시계는 망명 당시 시간인
9시 가리킨 채 움직임 멈춘 상태

노블링카. ‘보석정원’이라는 뜻을 지닌 이곳은 달라이라마의 여름궁전이다. 1755년 7대 달라이라마가 조성했으며 8·13대 달라이라마와 14대 달라이라마에 의해 증축됐다. 현재 인도에 망명 중인 14대 달라이라마는 노블링카를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자서전에 따르면 좁고 어두운 복도가 미로처럼 얽혀있는 포탈라궁을 ‘감옥’으로 여겼던 반면, 쾌적한 환경의 노블링카를 ‘생애 가장 행복한 추억이 깃든 곳’으로 회고하고 있다. 1997년 개봉돼 화제를 일으켰던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에서 실제 인물인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의 도움으로 작은 영화관을 만들었던 장소 역시 노블링카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느꼈던 달라이라마의 행복은 일순간에 불과했다. 3월18일 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칼 앞에 몸을 던지고 있는 티베트 민중을 바라보는 달라이라마의 심정은 그야말로 참혹했을 것이다. 달라이라마는 자서전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라싸를 겨우 빠져나왔다. 원래는 티베트 남부에 있으면서 중국정부와 협상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폭격소식을 듣고 바로 국경을 넘기로 결정했다. 그 후 라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계속 보고받았다. 정말로 가슴이 아팠다.”

▲ 혹독한 환경의 티베트 라싸에서 울창한 숲과 지저귀는 새, 그리고 쾌적한 바람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조캉 사원을 참배한 순례단은 버스를 타고 노블링카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과 쾌적한 공기가 일행을 맞는다. 몸을 녹일 듯 맹렬한 기세로 내리쬐는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운이 솟는다. 질서정연하게 열을 맞추고 영적 분위기 감도는 길을 걷는다. 라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새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때마침 선선한 바람 불어와 송골송골 맺혀있던 땀을 씻어준다. 사막을 헤매다 오아시스를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마치 잘 조경된 유럽의 궁전정원을 산책하고 있는 듯하다. 가혹한 환경의 라싸에서 숨 막힐 정도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노블링카는, 가히 ‘보석궁전’이라는 호칭에 부족함이 없어보였다.

▲ 달라이라마를 지키려는 티베트인들은 노블링카 담벼락에 기대 중국군에 맞섰다.

정문에 도착할 무렵, 우거진 숲 너머로 노블링카의 담벼락이 보인다. 상단이 붉은 색으로 칠해져있다. 선혈을 흩뿌린 듯 빨갛게 물든 담벼락…. 불현듯 저곳을 등진 채 총칼에 맞섰던 티베트인들의 외침이 들린다. 55년 전, 총알이 몸에 박히고 칼이 피부를 도려냈어도, 오직 달라이라마를 지켜야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텨냈던 민중들. 그날의 피 맺힌 절규가 곳곳에 스며든 노블링카가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옥죈다. 이 암울한 은유가 건네는 의미를 도무지 헤아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리에 힘이 풀린다.

티베트는 달라이라마가 기약 없는 망명길에 올랐던 그날, 노블링카의 참담했던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지금 관광객들이 한가롭게 배회하고 있는 이곳을 지키기 위해 수만 명이 목숨을 내던졌다는 사실을, 과연 그 후손들은 기억하고 있는 걸까. 붉은 피 흘리고 있는 노블링카, 선홍빛 물든 담벼락 앞 길을 걸으며 달라이라마와 티베트를 생각하다 애써 고개 돌려 정문으로 향한 길을 마저 걷는다.

정문에 도착하자 가이드가 공안에게 허가서를 보여준 후 노블링카 내부로 안내한다. 노블링카의 면적은 36만㎡에 달한다. 걸어서는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다 보기 힘들만큼 넓다. 천천히 달라이라마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으나 빡빡한 순례일정이 허락하지 않는다. 가이드가 전동차를 불러 순례단을 태운다. 친환경 마크가 선명하게 박혀있는 전동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노라니 순례가 아닌 한낱 관광이 목적인 것 같은 기분이다. 이것저것 생각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노블링카 궁전에 도착했다. 소년 달라이라마가 탈출을 위해 마지막으로 걸었던 길을 전동차로 손쉽게 거슬러 올라와버렸으니, 아쉬운 마음 달래기 힘들다.

▲ 인공연못에는 달라이라마가 휴식을 취하던 정자가 세워져 있다.

전동차에서 내려 분수대를 지나 궁전으로 들어간다. 먼저 널찍한 응접실이 보인다. 달라이라마가 손님을 접견하거나 설법했던 장소다. 주인 잃은 옥좌에는 달라이라마를 대신해 그를 상징하는 황금색 옷이 덮여있다. 조캉 사원과 달리 다소 느슨한 분위기에 용기를 얻어 옥좌를 촬영하는데, 서양인 두 명을 가이드하고 있는 티베트인이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황급히 카메라를 내리면서도 불쾌한 감정은 없었다. 그가 내뱉은 말을 정확히 알아들을 순 없었으나, 달라이라마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 궁전 응접실 옥좌에는 달라이라마를 대신해 그를 상징하는 황금색 옷이 덮여있다. 이 사진을 찍은 후 티베트인 가이드에게 제재를 당했다.

순례기간 내내 경험했거니와, 돈을 내면 촬영 가능한 장소와 애초부터 촬영이 불가능한 장소에서 관광객이 든 카메라를 감시하는 티베트인들은 눈빛부터 다르다. 전자는 대부분 스님이었고, 업무에 임하듯 따분해 보이는 표정에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분노를 드러내곤 했다. 그 분노는 부역행위에 대한 묵은 자괴감이 분출된 결과가 아닐까. 후자는 일반인들이 많으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외국인들을 자발적이고도 열성적으로 제지했다. 체념했다면 방관했을 터. 저 가이드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믿음으로 외국인들에게 뵈릭 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오늘의 역경을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 솟는다.

상념을 접고 순례단과 궁전 내부를 찬찬히 살펴본다. 관광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외부와 달리 순례하는 티베트인들로 경건한 분위기다. 그들은 하나라도 놓치진 않을까 염려되는 듯 손으로 만지고 눈감고 기도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지금 밟고 있는 궁전바닥과 손에 닿은 물건 하나하나에 달라이라마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달라이라마가 티베트에서의 마지막 날들을 보냈던 장소이기에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듯했다.

응접실을 지나자 집무실이 나온다. 이곳에는 작은 시계가 있다. 일설에 따르면 달라이라마는 1959년 3월18일 밤 9시 노블링카를 탈출하기 직전, 집무실의 시계를 정지시켰다고 한다. 시계는 현재까지 9시를 가리키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혹 사라졌던 주인이 다시 나타나진 않을까 골똘히 바라보고 있는듯하다. 중국이 이 시계를 훼손하지 않고 내버려둔 이유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티베트의 역사가 중국에 편입된 순간을 영원한 기록으로 남기기 위함은 아닐는지. 중국의 의도가 무엇이든 지금 시계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간절함을 뛰어넘을 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궁전에서 나오니 짧은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조금이라도 더 봐야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지지만 고산증세로 땅바닥에 박혀버린 몸은 쉽게 움직여주질 않는다. 간신히 궁전 옆 연못과 오솔길을 거쳐 숲 속에 숨어있던 법당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도 티베트인들은 어김없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문고리에 입을 맞추고 땅바닥에 이마를 댄다. 오직 달라이라마를 위한 그들의 기도가 저 멀리 다람살라에 당도하게 되길, 그들의 바람처럼 달라이라마의 시간이 이곳 티베트에서 다시 흐르게 되길. 아름답기에 서글픈 이곳, 노블링카에 스며있는 간절한 바람에 이방인의 작은 염원 덧붙인다.

일행은 다시 전동차를 타고 입구로 향한다. 채 1시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아득한 옛날부터 머물러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여정을 떠나야하는 듯하다. 영화 ‘쿤둔’에서 달라이라마는 망명길에서 만난 인도 국경수비대에게 말한다.

“나는 그림자일 뿐이다. 물위에 비친 달처럼 나를 통해 그대들 자신의 선한 그림자를 보길 원할 뿐….”

여기, 얼어붙은 설산을 넘어온 달라이라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있다. 그 그림자 끌어당기다 보면 노블링카의 원래 주인 돌아올 수 있을까. 총 든 중국공안이 지키고 있는 정문을 통과해 한참동안 걸어가다 뒤 돌아보니 노블링카 담벼락의 붉은빛 선연하다.

라싸=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254호 / 2014년 7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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