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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작자미상, ‘평생도’

기자명 조정육

화살처럼 흐르는 시간 망각한 채 마냥 머무르려고만 하는가

“세존이 갖가지 인연과 비유 등 방편으로 법을 설하는 것은 모든 중생이 위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법화경
  
사대부 일생 도해한 ‘평생도’
영화로움에 대한 소망 담아
죽음 앞에선 영화 의미 없어
세월 무상함 망각치 말아야
 
▲ 작자미상, ‘평생도’, 조선후기, 종이에 연한 색, 각 36×99cm, 경기대박물관.

“중학교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 데 벌써 제가 대학생이라니, 정말 세월 빨라요.”
 
둘째 아들이 지나가는 어린 학생을 보고 무심코 한 말이다. 그 말을 들으니 웃음이 픽 나온다.
 
“너한테 세월이 빠르면 엄마는 어쩌겠냐? 아주 휙휙 날아간다.”
 
어릴 때는 절대 알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세월의 빠름이다. 그 때는 시간이 한여름 엿가락처럼 늘어진 줄 알았다. 너무너무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끌고 가다 지쳐 어른이 되기도 전에 늙어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벌떡 일어서서 걷는가 싶더니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미처 잡을 새도 없이 빠른 속도였다. 이젠 눈만 깜짝하면 하루 이틀이 사라지고 없다.
 
세월과 함께 이해되는 단어가 있다. 나이를 먹어봐야 실감나는 문장이 있고 자신이 겪어봐야 공감되는 스토리가 있다. 세월과 관련된 가르침이 그렇다. 광음여전(光陰如箭)은 세월이 쏜 화살과 같다는 뜻이다. 세월을 뜻하는 광음(光陰)이란 말이 참 재미있다. 빛과 어둠이다. 해가 뜨는 아침이 빛이라면 해가 지는 저녁은 어둠이다. 아침과 저녁이 자리바꿈하면 시간이 바뀌고 세월이 흐른다. 광음여서수(光陰如逝水)는 세월이 흐르는 물 같다는 뜻이다. 폭우가 쏟아지고 난 다음 날 계곡에 흐르는 물을 보면 알 수 있다. 흐르는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사실을. 전광석화(電光石火)는 번갯불이나 부싯돌의 불이란 뜻이다. 반짝 하고 비추었다 사라질 만큼 짧은 시간이니 쏜 화살만큼이나 빠르다는 뜻이다.
 
세월의 빠름에 대해 탄식한 글로는 송(宋)대의 철학자 주희(朱熹:1130-1200)의 ‘우성(偶成:우연히 짓다)’이 유명하다. 학교 다닐 때 외웠던 구절이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少年易老學難成)
짧은 시간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一寸光陰不可輕)
연못의 봄풀은 꿈을 깨지도 않았는데(未覺池塘春草夢)
섬돌 앞 오동잎 이미 가을을 알리나니(階前梧葉已秋聲)
 
‘평생도(平生圖)’는 오복(五福)을 누린 사대부의 일생을 여러 장면으로 도해한 그림이다. 태어나서 돌잔치를 치르고 혼례하고 벼슬살이하는 등의 의례를 여러 장면으로 나눠 그리다보니 보통 병풍으로 제작됐다. 각 장면은 흔히 8폭에서 10폭까지 구성된 병풍 그림이 가장 많다.
 
내용은 1.돌잔치 2.혼인식 3. 삼일유가 4.최초의 벼슬길 5.관찰사부임 6.판서행차 7.정승행차 8.회혼례의 장면이 대표적이다. 10폭일 경우 8폭 장면을 기본으로 하되 1.돌잔치와 2.혼인식 사이에 소과응시가, 7.정승행차와 8.회혼례 사이에 회방례가 첨가된다. 그러니 10폭은 1.돌잔치 2.소과응시 3.혼인식 4.삼일유가 5.최초의 벼슬길 6.관찰사부임 7.판서행차 8.정승행차 9.회방례 10.회혼례 장면으로 구성된다. 12폭일 경우에는 10폭을 기본으로 하되 1.돌잔치 다음에 서당공부가, 8.정승행차 다음에 회방례 대신 귀인행차와 치사가 첨가된다. 부피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치르게 되는 통과의례와 벼슬살이가 평생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기대박물관에 소장된 작자미상의 ‘평생도’는 6폭이다. 원래부터 6폭이었는지 아니면 앞에 있던 몇 폭이 떨어져 나가고 남은 그림만 장황이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10폭에 들어간 회방례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원래는 8폭이나 10폭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10폭이었다면 1.돌잔치 2.소과응시 3.혼인식 4.삼일유가의 네 폭이 멸실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평생도’에 들어간 내용은 거의가 비슷비슷하다. 돌잔치부터 회혼례까지의 그림 전개 순서도 비슷하거니와 내용도 비슷하다. 특정인물의 기록화가 아니라 이상적인 인물을 설정한 후 그가 누릴 수 있는 통과의례와 관직생활을 형상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작자미상의 ‘평생도’와 김홍도 작품으로 전하는 ‘평생도’중 ‘회혼례’ 부분을 비교해보자. 회혼례(回婚禮)는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축하잔치다. 오늘의 주인공인 늙은 부부는 큰 차일이 쳐진 대청마루에서 혼례복차림을 하고 초례청 앞에 섰다. 얼굴은 비록 주름살로 뒤덮이고 백발이 성성하지만 60년 전과 똑같은 설렘으로 혼례의식을 재현한다. 자손과 친지들도 고운 색동옷을 입고 해로한 늙은 부부를 헌수(獻壽)하고 축원한다. 만약 오늘의 주인공이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이라면 임금으로부터 의복과 잔치 음식 그리고 궤장(几杖)을 하사받는다. 각지에서 모여든 친지들과 축하객들은 문간방에서 따로 상을 받는다. 젊은 하인은 쟁반에 음식을 담아 사랑방에 앉은 손님을 대접하느라 바쁘다.
 
두 작품은 가로 세로의 크기만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은 흡사하다. ‘평생도’에 담긴 내용이 특정한 인물의 실제 행적을 기록한 기록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이 누리고 싶었던 복록을 몇 가지 사건으로 압축해 그려 넣은 상상화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형식의 ‘평생도’가 반복적으로 그려졌던 것은 그림 속 주인공처럼 영화로운 삶을 소망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상황은 다르다. 이렇게 평생 행복만 누리며 산 사람이 몇이나 될까. 행복하게 살았다 해도 금세 죽음 앞에 서야 한다. 죽음 앞에서 영화로운 과거는 아무 의미가 없다. 관찰사로 부임하고 판서가 되어 행차를 하고 회혼례까지 치룬 지난 시간이 삶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는 그 사람을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었을 때는 모른다. 오죽하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책 제목이 있을까.
 
옛날에 어느 장자가 있었다. 그는 많은 재산을 소유했으며 여러 하인들을 거느린 부호였다. 그의 집은 매우 크고 넓었으나 대문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오래되어 낡았고 기둥은 썩고 대들보가 기울어져 있었다. 어느 날 이 고택에 불이 나 순식간에 집 전체에 번져가기 시작했다. 장자는 엉겁결에 대문 밖으로 겨우 피신했으나 아이들은 집 안에서 놀고 있었다. 장자는 애들에게 ‘나오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아이들은 노는 데 정신 팔려 불타는 집에서 빠져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장자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에게 외쳤다.
 
“얘들아. 지금 집이 불타고 있다. 위험하니, 빨리 집 밖으로 나가자.”
 
이렇게 타일렀으나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방편을 쓰기로 하고 크게 외쳤다.
“얘들아. 대문 밖에 너희가 좋아하는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소가 끄는 수레들이 있단다. 이것들을 너희에게 줄 테니 이 불타는 집에서 빨리 나오너라.”
 
아이들은 아버지가 말한 진귀한 장난감이 마음에 들었으므로 기뻐하며 서로 밀치면서 앞다투어 불타는 집에서 뛰쳐나왔다. 장자는 여러 아들들에게 각각 평등하게 큰 수레를 나누어 주었다. ‘법화경’ 가운데 ‘삼계화택’ 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장자는 부처님이고 아이들은 어리석은 중생이다. 저택은 삼계(三界:생사유전이 쉴 새 없는 중생계를 셋으로 분류한 것. 욕계, 색계, 무색계를 의미)에 비유한 것이다. 중생들은 삼계의 썩고 낡은 불타는 집에서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고민하다 인생을 마친다. 즐거움과 기쁨이 어쩌다 한 번 스쳐 지나갈 때도 있다.
 
그러나 행복은 짧다. 짧은 행복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이 어리석은 인간이다. 어느 정도로 어리석을까. 안수정등(岸樹井藤)의 비유에서처럼 어리석다. 한 남자가 코끼리를 피해 우물 속으로 도망을 갔는데 칡넝쿨에 매달려 밑을 내려다보니 네 마리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고 흰 쥐 검은 쥐는 그 남자가 매달린 칡넝쿨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때 마침 벌집에서 꿀이 몇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 남자는 달콤한 꿀맛에 취해 현재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를 잊어버린다. 이것이 안수정등의 비유다. 사찰의 벽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으로 우리 삶의 실상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보면 뭐하나.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는데.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칡넝쿨을 갉아먹는 쥐 즉 세월이 곧 우리를 죽음으로 떨어뜨릴 텐데도 나만은 죽지 않고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오해한다. 미련하다. 어디 그뿐인가. 그 짧은 시간에 더 많이 가지려 아귀다툼하고 뺏기지 않으려 불같이 화를 낸다. 딱 불타는 집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다. 돌잔치를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정승행차가 불필요하다는 게 아니다. 거기서 머무르지 말라는 뜻이다. 이런저런 행복과 즐거움에 시간을 빼앗겨 자기를 잊다보면 어느 새 세월은 화살처럼 흘러 우리를 죽음 앞에 세워둔다. 세월의 속도는 냉정하다 못해 잔인하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들은 삶에 휩쓸려 세월의 무상함을 망각한다. 이 어리석은 중생을 어떡하나. 어떻게 하면 불타는 집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 속에서 부처님은 탐진치 삼독의 불 속에서 놀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방편으로 수레를 말씀하셨다. 한 번 말할 때 순순히 따르지 않기 때문에 방편을 쓴 것이다. 말귀를 금방 알아먹었다면 결코 필요 없는 방편이다. 부처님께서 팔만 사천 법문을 펼치고도 한 마디도 설한 법이 없다고 한 것은 법문이 모두 방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방편을 통해 가르침의 본질을 파악해야 된다. 위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이 무엇인 지를 말이다.
 
 
[1255호 / 2014년 7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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