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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선오 스님의 지팡이

기자명 성재헌

선오, 지팡이 하나 들고 떠나면서도 웃다

▲ 일러스트=이승윤

잠깐 아름답긴 쉽지만 그 향기가 변치 않기는 어렵다. 한번쯤, 타인을 자신처럼 여겨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보살피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한번쯤, 이 세상 모든 이는 나그네요 모든 것은 스치는 바람이라 생각하고 말하면서 서늘한 가슴을 쓸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지혜로운 생각, 따뜻한 마음, 바람직한 언행들, 스스로 돌이켜보아도 뿌듯한 순간은 이 세상 누구에게나 있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를 귀감이라 하지는 않고, 스승이라 하지도 않는다. ‘스승’이란 고귀한 호칭을 붙일 때에는, 그들에게서 세월의 강물마저 거스르는 매혹적인 향기가 풍기기 때문이다.
 
사물은 앞뒤가 똑같기 어렵고, 사람은 시작과 끝이 한결같기 어렵다. 스스로 연극을 하고 있다 생각하는 배우는 삼류다. 일류는 무대로 올라간 그 순간만큼은 진정 하늘을 나는 무술 고단자에 세상을 바꾼 위인이고, 사랑에 목숨 거는 순정파 사나이에 정의를 위해 한 목숨 바치는 열사이다.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그는 더 이상 고단자도 위인도 순정의 연인도 열사도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일류라도 그를 ‘배우’라 하고, 아무리 그 행위가 아름다워도 ‘꾸밈’이라 부른다. 인생이란 무대에서 배우의 꾸밈이 아닌 스승의 한결같음을 보이기란 실로 어렵다. 송나라 때 운거산(雲居山)에 주석하셨던 선오(善悟) 선사가 그런 드문 사람 가운데 한분이셨다.
 
선오 스님은 열한 살에 출가하여 경전을 공부하고 제방을 행각하였다. 충(沖) 선사 회상에 머물던 어느 날이었다. 충 선사가 양무제와 달마 스님이 나누었던 대화를 소재로 법문을 하셨다. “텅 비어 성스럽다 할 것도 없습니다[廓然無聖]”라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때 대중 틈에 앉아있던 선오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말이 터져 나왔다.
 
“나라는 것이 이미 텅 비었는데, 무슨 성스러운 진리와 성인이 있겠습니까!”
 
충 선사는 선오를 기특하게 여겼다. 하지만 선오는 다시 행각을 떠났다. 분명히 깨달았다 생각했는데, 가지고 싶고 하고 싶은 일들이 맘속에 여전하고, 거슬림에 울컥울컥하는 일들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상태를 점검받으려고 태평사로 불감 혜근(佛鑑慧懃) 선사를 찾아갔다. 마침 혜근 선사께서 소참법문을 하고 계셨다.
 
“탐욕과 분노는 원수나 도적과 같으니, 반드시 지혜로써 대적해야 한다. 지혜는 물과 같아 쓰지 않으면 막히고, 막히면 흐르지 않고, 흐르지 않으면 지혜가 행해질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그 탐욕과 성냄을 어쩌지 못하게 된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선오의 의심이 물에 던진 날기와처럼 풀렸다. 이런 분이 선지식이고, 이런 분이 스승이구나 하고 감탄한 선오는 그곳에 바랑을 풀었다. 그런 그를 눈여겨보던 혜근 선사가 어느 날 당부하셨다.
 
“장차 불조의 혜명을 받들어 선림을 지탱할 동량이 되려면 모름지기 견문이 넓어야 해. 자네에게 이곳은 좁아.”
 
혜근 선사는 편지까지 써주며 선오를 용문사 불안 청원(佛眼淸遠) 선사에게 보냈다. 청원 선사 회하에서도 지혜의 불빛을 더하며 탐욕과 분노의 때를 씻는 선오의 나날은 변함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 스님이 밭에서 운력을 하다가 뱀에게 물렸다. 동료들이 우르르 청원 선사께 몰려갔다.
“이 스님이 뱀한테 물렸습니다!”
 
청원 선사가 괭이질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여기가 용문사(龍門寺)인데 어쩌다 뱀한테 물렸냐?”
 
그 순간 대중의 입이 딱 벌어졌다. 청원 선사는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이놈들이 몽땅 벙어리였구나.”
 
그때 선오가 한 마디 했다.
 
“용이 드디어 그 거룩한 모습을 드러내셨지요.”
 
청원 선사는 선오의 등을 두들겨주며 매우 기뻐하였다. 얼마 후 선오 스님에게 운거사(雲居寺) 주지를 맡으라는 명이 내려졌다. 하지만 선오는 거절하였다. 그러자 스승 청원 선사가 직접 권유하였다.
 
“운거사는 강동 지방에서 으뜸가는 도량이다. 대중을 편안하게 하고 도를 실천할 만하니, 굳이 사양하지 말거라.”
 
선오는 재차 거절하며 스승에게 답하였다.
 
“총림이 생기고부터 그런 명목으로 절개와 의리를 꺾은 납자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불감 선사와 불과 선사도 운거사 주지는 선오가 아니면 안 되겠다며 거듭 권유하였다. 삼불의 권유에 못 이겨 결국 주지직을 수락하였다. 그리고 스승 청원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한 말씀을 청하였다. 그러자 청원 선사가 말씀하셨다.
 
“지금처럼만 하게. 아주 가는 털끝 차이까지 구별할 수 있는 사람도 자기 속눈썹은 보지 못하는 법이고, 천근만근 무거운 걸 들 수 있는 자도 제 몸뚱이 하나 들지 못하는 법이지. 남의 허물은 잘 보면서 자기에겐 관대한 것을 수행자는 무엇보다 조심해야 해.”
 
인사를 드리고 물러난 선오는 지팡이 하나만 달랑 짚고 운거사로 갔다. 운거사 대중 가운데는 그를 못마땅해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갖가지 방해와 비방에도 그는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늘 스스로를 살펴 자신의 일은 간소하게 하고, 만사를 공정하게 처리할 뿐이었다. 세월이 지나자 어느덧 운거사 대중 모두가 그를 닮아 조심하고 공손한 태도를 갖추게 되었다. 추위에 따뜻한 난로를 찾듯 사람들이 몰려들고, 가뭄에 단비를 기다리듯 대중 모두가 그의 법문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 그의 덕화를 놀라워하며 어떤 이가 비결을 묻자, 선오 스님이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는 남보다 나은 구석이 없습니다. 그저 양심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긴 세월이 흐르고 선오 스님이 운거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평소 사재를 한 푼도 축적하지 않던 그임을 잘 알던 원오 선사가, 불인 요원(佛印了元)께서 주석하셨던 와룡암(臥龍菴)을 수리해 그의 말년 처소로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정중히 거절하였다.
 
“숲에서 사는 사람이 정말로 도를 닦는 즐거움을 안다면 육신 따위는 도외시해도 됩니다. 제 나이 칠십입니다. 새벽녘 달빛 별빛이 가봐야 얼마나 가겠습니까. 게다가 서산(西山)에 언덕과 초가집이 넘쳐나고 숲과 샘이 즐비하니, 모두 제가 편안히 늙어 갈만한 곳입니다. 꼭 제 것으로 소유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지요.”
 
올 때 그랬듯, 선오 선사는 지팡이 하나만 달랑 짚고 운거산 운거사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후 천태산 화정봉(華頂峯)에서 생을 마쳤다.
 

[1256호 / 2014년 8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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