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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언어의 감옥

기자명 인경 스님

인간은 언어 사유만으로 문화 만들어내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인간의 중요한 특징은 언어를 가지고 사유한다는 것이다. 현생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는 것을 안다’는 의미로서 이차적이고 반성적인 상위의 능력을 가리킨다.

언어자극으로 반응하는 인간
추측만으로도 사유작용 일으켜
특권인 동시에 고통의 씨앗
실재 없는 숙명적 형벌되기도

동물들도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이차적으로 인식하고 조직화하는 기능은 없다. 도구적이고, 메타적 인식은 언어에 의해서 촉발되고 구성된다. 인간은 언어를 가지고 사유함으로 말미암아서 엄청난 문화를 만들어왔다. 관찰된 자료를 모아서 어떤 규칙과 원리를 발견하고, 미래에 닥쳐올 사건이나 현상을 예측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도구를 만들어냄으로써, 위협적인 자연의 공포로부터 자유스러워졌고, 끊임없이 먹이를 찾아서 배회하는 동물들에 비교할 수 없는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이룩하였다. 그러면 우리는 물질적인 풍요를 이룬 만큼 내적으로도 성숙했고, 자유로운가?

역설적으로 인간은 물질문화의 풍요로움 만큼, 그 만큼 심각하게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 적절한 평가인 것 같다. 동물은 직접적인 자극에 대해서만 반응을 한다. 반면에 언어를 가지고 사유하는 인간은 직접적인 자극이 없더라도, 언어적인 자극이나 사유에 의한 상상만으로도 실제적으로 반응을 하게 된다.

이를테면 어떤 아이가 개를 발로 걷어찼다고 하자. 다음에 개는 그 아이를 보면, 도망을 간다. 아이를 눈으로 보는 것은 자극이고, 도망을 가는 도피행동은 반응이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발생된다. 하지만 인간은 실제적인 자극이 없어도 단지 언어적인 자극에도 놀라고 두려움을 경험할 수가 있다.

귀신이란 존재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에게 어떤 자극을 줄 수가 없다. 하지만 어린 아이는 귀신이 나온다는 소리 하나에 놀라고, 어두운 골목길을 나갈 수가 없다. 실제적 자극이 없는, 언어적인 자극만으로도 회피행동을 만들어낸다. 영화처럼, 귀신의 환상을 만들어내어서 그것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관객에게 보여주면, 그들은 그곳에서 놀람과 공포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 인간의 이런 능력은 예술을 만들고, 높은 수준의 문화를 창조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고통의 씨앗이기도 하다.

이것을 인지치료의 ABC모델에서는 다음과 같이 2개의 단계로 다시 이해할 수가 있다. 첫째는 선행사건(A)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특정한 믿음(B)이 생겨나고, 이에 따라서 감정적인 결과(C)가 발생된다. 일단 첫 번째의 과정이 성립이 되면, 나중에는 선행사건의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도 특정한 믿음(B)만으로도 자동적으로 마음은 작동되어서 감정적인 결과(C)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심한 꾸중과 폭행을 당하면서 자라난 아이는 당시에 심각한 위협과 심리적인 불안감을 경험하였다. 하지만 현재에는 실질적으로 위협적인 상황이 아닌 경우에도 불구하고, 그와 유사한 다른 상황에서 자신과 관련 없는 장면을 목격하거나, 그런 생각이나 상상만으로도 과거의 경험내용이 떠올라오면서 심각한 불안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일단 조건화가 되면, 이제는 외적인 자극과 관계가 없이,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추측하면서, 근심과 걱정을 하는 사유작용이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우리는 생각의 폭류를 어떻게 통제할 수가 없다. 온갖 생각들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터져나면서 잠을 못 이루게 한다. 밤 새워서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이렇게도 만들어보고 다시 그것을 지우고 저렇게 만들어 보면서 결국은 새벽을 맞이하게 된다.

인간의 사유작용은 매우 중요한 특권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에게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을 경험하게 한다. 사유작용은 현실에 뛰어난 적응력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실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서 스스로 고통 받는 숙명적 ‘형벌’을 가져다주었다. 인간은 언어적 사유의 감옥에 갇혀 날지 못하는 처량한 새가 되었다.

인경 스님 명상상담 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256호 / 2014년 8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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