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삼경의 시경은 옛날 중국의 각 나라의 유행가 모음집이다. ‘터치 마이 바디’까지 공개적으로 노래로 부르는 우리나라 이 시대의 시경은 정나라의 유행가와 많이 닮아있다.
호흡 힘 모아 멀리 바라보면
날마다 날마다 새로운 시작
세월 흘러도 젊은 마음 꿈은
한 순간에도 깨어날 수 있어
PC방에서 유튜브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고 김광석의 노래를 한동안 들었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천천히 뜨면서 위턱과 아래턱의 힘을 완전히 빼버리고 아랫배에서 수액을 끌어올려 위턱과 아래턱으로 맷돌을 만들어 자신의 혀를 갈면서 뿜어내는 듯한 독특한 창법이 마치 마법처럼 그의 노래를 세 시간 동안 검색하게 만들었다. ‘가슴 속엔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하는 ‘이등병의 편지’ 한 대목에서 ‘무엇인가’를 뿜어내는 목소리는 단순한 목소리가 아니라 목의 울대와 혀가 맷돌에 갈려서 살포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경상도에 거처를 잡고 있는 성일우 선생이 몇 년 전에 여러 지인들과 함께 들렀던 노래방에서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를 열창했다. 말하자면 이 시대의 시경을 한 수 읊었다. 아!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를 뽑아 올릴 때 뒤쪽으로 휘어지던 그 등줄기의 애잔함과 천장을 향해 있던 그 입체적인 표정을 차마 잊을 수가 없다.
전에 읽은 어느 시집에서 시인은 ‘송창식이나 정태춘 노래가사만도 못한 시를 시라고 쓰고 있다’고 겸손한 시를 썼다.
입추가 지났다. 무더위가 사람을 지치게 만들지만 자기 자신도 지치게 만드는지 이따금씩 태풍이라는 친구도 불러들인다. 늦더위 속에 이미 가을의 향기가 스며있다. 아직은 푸르른 저 신록도 어느 시인의 시처럼 곧 지쳐서 칼라의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은행나무 이파리가 살짝 지친 듯 보이기도 한다.
한시는 다른 시도 마찬가지이지만 지친 삶의 세포에 활력을 불러 일으켜주는 힘이 있다. 시험의 대상이 되거나 숙제가 되는 경우는 예외이다.
초급한문 강의 시간에 즉석에서 교과서에 없는 한시를 칠판에 써서 소개했더니 질문이 날아 들어왔다. “시험에 나옵니까?” 그만 싹 지워버릴까 하다가 시험에 내지 않겠다고 말하고 설명을 하노라니 듣는 자세들이 참으로 가관이다. 소귀에 경 읽어주는 느낌과 비슷했다. 그 와중에 몇 명 눈빛을 반짝이는 친구도 있었다.
山重水複疑無路(산중수복의무로)
柳暗花明又一村(류암화명우일촌).
산과 물이 겹쳐서 가로막아 길이 없나 했더니 /
버드나무 짙은 그늘에 꽃이 활짝 핀 또 한 마을 나타나네.
육유의 시에서 두 구절만 읽어본다. 전에 어느 큰스님께서 법문을 하시다가 허공에 뿌려주신 구절이다. 산 넘고 물 건너느라 종아리에 쥐가 나면서 지쳐있는 나그네가 산과 물이 한꺼번에 가로 막는 골짜기에 들어섰다.
하늘이 무너지면 운석을 주워서 보석으로 팔면 된다. 촛불이 쓰러져 집에 불이 나는 것은 더 좋은 새집이 마련되는 기회이다. 몸에 견딜 수 없는 통증이 엄습하는 것은 이 통증만 극복하면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는 우주의 방송이다. 이제는 어렴풋이 기억되고 있는 온몸을 덮쳐 엄습했던 통증보살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있다. 김광석도 노래했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종아리가 지치는 바람에 함께 지쳐서 몇 발짝 앞만 보이거나 내면으로 시선이 갈 여력이 없는 눈에 지그시 호흡의 힘을 모아 조금만 멀리 바라보면 버드나무도 보이고 미소 짓고 있는 꽃들도 반드시 눈에 들어온다. 몇 년 동안 무심하게 다닌 화장실 가는 길에서 오래 묵은 산삼이 어느 날 눈에 들어와 건강을 크게 회복한 오대산의 스님도 있었다. 날마다 날마다 새로운 시작이다. 세월이 좀 흘렀더라도 아직 젊은 마음의 꿈은 한 순간에 깨어날 수 있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56호 / 2014년 8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