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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굉지(宏智) 스님의 상주

기자명 성재헌

굉지의 상주 부탁에 횃불 밝혀 달려간 종고

▲ 일러스트=이승윤

천하에 큰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대지와 태양만한 것이 없다. 드넓은 대지는 호오(好惡), 장단(長短), 시비(是非), 미추(美醜)를 가리지 않고 만물이 분수 따라 천명을 향유할 수 있도록 품어주고 실어주고 베풀어준다. 그 넉넉함이 없다면 미미한 벌레서부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고, 평온하고 안락한 삶이란 꿈에도 엿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만물에게 대지 못지않은 은혜를 베푸는 것이 태양이다. 찬란한 그 빛은 만물의 호오(好惡), 장단(長短), 시비(是非), 미추(美醜)를 극명하게 드러내어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면서 만물이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장하고 변화하도록 유도한다.

스승 역시 세상에 은혜를 베푸는 자들이다. 큰 은혜를 베풀면 큰 스승이고, 작은 은혜를 베풀면 작은 스승인 것이다. 그 은혜의 종류를 헤아리자면 끝이 없겠지만,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추앙되는 분들이 베푼 은혜의 공통점을 추출해 보면 두 가지 특성이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지혜와 자비이다.
 
공교롭게도 지혜와 자비의 은혜는 태양과 대지의 은혜와 무척이나 닮았다. 만물을 대하는 태양과 대지의 특성은 극명하게 대립된다. 하지만 어느 하나만 있어서는 안 되고, 어느 하나만 있을 수도 없다. 대지와 태양은 서로 상반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만물에게 이롭다’는 효용에 있어서는 일치한다. 또한 대지건 태양이건 그들의 초점은 ‘만물’에게 맞춰져 있지 서로를 향하지는 않는다.
 
지혜와 자비도 마찬가지이다. 그 초점이 ‘중생’에게 맞춰져 있고, 오직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목적으로 시행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래서 지혜의 날카로운 칼날은 자비의 무분별을 탓하지 않고, 자비의 넉넉한 품은 지혜의 살벌함을 탓하지 않는다. 도리어 자비로운 자만큼 지혜의 효용을 잘 아는 자가 없고, 지혜로운 자만큼 자비의 노고를 잘 아는 자가 없다.
 
대혜 종고(大慧宗杲)선사는 임제종 양기파 사람이다. 그는 경산(徑山) 능인선원(能仁禪院) 등지에 주석하면서 묵조선(黙照禪)의 폐해를 드러내 공격하면서 간화(看話)의 선풍을 크게 진작하였다. 하지만 금나라와의 전란 속에서 주전론자인 장구성(張九成)과 모의했다는 모함을 받아 유배되었다. 그렇게 남쪽의 형주(衡州)와 매주(梅州)에서 10년의 유배생활을 하다가 사면되어 북쪽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가장 반긴 사람은 천동사(天童寺)에 주석하던 굉지 정각(宏智正覺)선사였다. 그는 조동종(曹洞宗) 사람으로 묵조선의 태두로 존경받고 있었다. 굉지선사는 마침 근처 육왕사(育王寺)에 주지 자리가 비어 있자 곧바로 종고선사를 주지로 천거하였다. 그리고 주지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절의 사무를 총괄하던 소임자를 불렀다.
 
“자네가 나를 위해 급히 해줄 일이 생겼네.”
 
“하명 하십시오.”
 
“올해는 예산을 많이 늘려주게. 창고의 일용품을 모두 작년의 두 배로 비축해 두게.”
 
“예, 스님”
 
소임자는 두 말 없이 명을 수용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천동사의 재정은 넉넉하였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 든 새로 화주할 수도 있었다. 그 모두가 굉지선사의 넉넉한 인품 덕분이었다. 스님은 주지를 맡은 이래로 받은 시주를 탐한 적이 없고, 베푸는 일에 주저하는 법이 없었다. 당신은 평생 오후불식을 하며 방에 성한 돗자리 하나 없이 생활하였지만 대중에게만큼은 항상 넉넉하였다. 또한 극심한 흉년이 들었던 해에는 최소한의 식량만 남기고 사중의 식량을 인근 주민들에게 모두 보시하였다. 그렇게 목숨을 구한 사람의 수가 수만 명에 이르렀기에 상하 승속을 막론하고 모두가 그의 덕망을 우러렀다.
 
소임자는 은근히 까닭이 궁금했다.
 
“스님, 제가 그 연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굉지선사는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몇 달 후 종고선사께서 육왕사로 오실거야. 아마 현재 육왕사의 살림규모로는 감당하기 힘들걸.”
 
소임자는 놀랐다.
 
“스님, 종고 스님은 저희를 두고 ‘캄캄한 귀신동굴 속에서 뒹굴며 아무 일 없다고 태평가를 부르는 멍텅구리 꼴’이라고 비판하던 분입니다.”
 
“묵묵히 관조하는 납자들이 실로 온갖 번뇌 망상을 접어버린다면야 종고 스님의 비판도 터무니없는 군소리가 되겠지. 하지만 돌아보게. 과연 그런가?”
 
“그렇다고 본래 아무 일 없는데 벌건 대낮에 허깨비를 보는 정신병자들처럼 이러쿵저러쿵 난리법석을 떠는 짓을 옳다고 할 순 없지 않습니까?”
 
“그건 깨닫지 못한 자들 얘기지. 명명백백한 실상을 확연히 깨달았다면 일거수일투족이 몽땅 불성의 대용(大用)이야. 종고 스님은 그런 분이야. 그 지혜의 날카로움이 용수보살 못지않지.”
 
이듬해 종고선사가 육왕사로 오자, 과연 사방에서 납자들이 운집하여 대중이 천 명을 넘어섰다. 육왕사의 창고는 곧 바닥이 났고, 대중도 종고선사도 갈팡질팡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이때 굉지선사가 비축해 두었던 물품들을 모조리 꺼내 육왕사로 보내주었다. 종고선사는 천동사로 직접 찾아와 굉지선사께 감사를 표하였다.
“고불(古佛)이 아니시면 어떻게 이와 같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그 후로 두 분은 자주 왕래하면서 종문(宗門)의 앞날에 대해 함께 근심을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종고선사가 굉지선사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하였다.
 
“우리 두 사람 다 늙었습니다. 스님이 부르면 제가 화답하고 제가 부르면 스님이 화답하다가, 어느 날 아침 누가 먼저 죽거든 남은 사람이 장례를 치러주도록 합시다.”
 
그 이듬해 볕 좋은 10월의 어느 날, 오전에 깨끗이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은 굉지선사는 자리에 앉아 대중들에게 이별을 고하였다. 그리고 시자에게 지필묵을 가져오게 하여 육왕사의 종고선사에게 뒷일을 부탁한다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게송 한 수를 남기고는 붓을 던지고 서거하셨다.
 
꿈이요 환상이요 허공의 꽃이지
이리저리 살아온 육십 칠년 세월
하얀 새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가을 강물은 아득히 저 하늘로
 
그날 밤, 편지를 받은 종고선사는 곧바로 횃불을 밝혀 천동사로 달려왔고, 약속대로 상주(喪主)가 되어 굉지선사의 장례를 주관하였다.
 

[1259호 / 2014년 9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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