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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악마의 군대

악을 넘어 선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종교가 공통으로 갖는 요소일 것이다. 물론 종교마다 악이나 선을 규정하는 내용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보편적 선이라는 것을 역사의 흐름을 견디어 온 전통적인 종교들은 갖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자비, 어짊(仁), 사랑으로 표현한다.
 
악마는 내안 욕망에 있고
내가 갈애·공포 일으켜
만들고 없애는 자는 나요
선택 역시 내게 달린 것
 
그런데 종교마다 악을 규정하는 내용은 다소 다르다. 말하자면 악을 실존하는 악마에게서 찾고, 그것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종교도 있다. 그리고 그 절대악의 대척점에는 절대선 즉 선함 그 자체인 절대자가 놓여 있게 된다. 서양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인 스피노자는 악마를 “악마란 신의 의지에 반해 수많은 인간을 꾀어내고 속이는 자”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악마를 신의 적대자란 의미에서 디아볼로스(diabolos)라고 불렀고, 이 단어에서 영어 devil이 나왔다.
 
그런데 불교의 경우는 악마에 대한 관념이 서양과는 다르다. 우선 악마란 단어는 빨리어 마라(Ma-ra)의 번역어로, 마라는 ‘죽는다’라는 동사 ‘마라띠(marati)’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따라서 불교에서 악마는 죽음의 신으로 이해된다. 다른 한편, 악마를 나타내는 다른 말로 빠삐만뜨(Pa-pimant)란 단어가 있다. 이것은 ‘사악함을 지닌 자’란 의미로, 한역으로는 파순(波旬)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름은 나무치(Namuci)로 ‘파괴자’, 혹은 ‘죽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불교의 악마는 실제 욕계(欲界)의 지배자로서 이해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번뇌의 상징적 표현이기도 하다. 경전을 보면, 오히려 후자의 성격이 더 강하며, 본래적인 의미라고 이해된다. 이와 관련된 경전의 대표적인 기술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세존께서는 악마 나무치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군대 가운데 첫째는 욕망, 둘째는 혐오, 셋째는 배고픔과 목마름, 넷째는 갈애라 불린다. 다섯째는 혼침과 무기력, 여섯째는 공포, 일곱째는 의심, 여덟째는 위선과 고집이라 불린다. 잘못 얻어진 이득과 환대와 타인의 예경과 명성 그리고 자신을 칭찬하고 타인을 경멸하는 것도 그대의 군대가 아니던가.””(Suttanipa-ta 중, Padha-nasutta에서)
 
위 인용문은 ‘정진의 경’의 일부이다. 부처님께서 악마 나무치에게 말씀하신 내용으로 악마 나무치가 위력을 지니는 것은 다름 아닌 욕망과 혐오 등과 같은 번뇌를 군대로 거닐고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인간은 때로 강력한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때로는 무기력과 우울함, 공포에 짓눌리기도 한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정서적 내용들, 그것들의 정체가 바로 악마의 군대로 표현된 것이다. 따라서 내 안의 불건전한 정서, 번뇌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들을 통제하거나 제거하게 되면 바로 악마를 물리치는 것이 된다.
 
말하자면 부처님께서는 악마를 멀리 다른 세계의 존재로 보지 말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욕망의 내용에서 찾으라고 하시는 것이다. 악마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욕망과 갈애, 혼침과 공포, 위선과 경멸 등으로 악마를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직시하라고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배고프면 밥을 먹으면 된다. 그런데 배고프면 우리는 짜증과 분노, 무기력 등의 격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허기를 면할 정도의 양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맛난 것을 찾아다니며 투정한다. 전자의 경우는 악마와 관련 없지만, 후자의 경우는 악마를 불러들인 것이다. 따라서 악마를 만드는 자도 나요, 악마를 없앨 수 있는 자도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오직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1259호 / 2014년 9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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