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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중앙종회 해산

‘의현 총무원장 3선 결의’ 오명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 조계종 제10대 중앙종회는 1994년 4월15일 마지막 임시회를 열어 4월10일 승려대회에 따라 종단의 행정·입법·사법의 권한을 개혁회의에 이양하기로 결의하고 자진해산을 결정했다. 종권을 이양 받은 개혁회의 상임위원장 탄성 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종단개혁기념사업추진위 제공

1994년 4월15일 오전 세간의 눈과 귀가 다시 조계사로 향했다. 의현 총무원장의 3선을 결의했던 중앙종회가 제113차 임시회를 열기로 한 날이었다. 이미 4월10일 승려대회를 통해 종단의 입법과 사법, 행정의 권한을 갖는 조계종 개혁회의를 출범시키기로 결의했지만, 그에 따른 법적 절차가 필요했다. 승려대회는 종헌종법의 틀을 넘어선 초법적 권한행사였기 때문이다. 중앙종회가 승려대회의 결의를 부정한다면 법적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승려대회에 따라 종권 이양
의현 원장·서암 종정 불신임
종헌개정·개혁회의법 등 결의

해산 앞두고 종회의원들 참회
“공포 분위기로 반대 못했다”
현근스님 “양심 없다” 반발도

오전 10시 조계사 대웅전은 종회의원과 회의를 방청하려는 스님, 신도들로 가득했다. 혜암 스님을 비롯해 원로들과 탄성 스님 등 개혁회의 집행부도 이를 지켜봤다.

중앙종회 회의록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는 종회의원 58명이 참석했다. 의원 점명에 이어 종회의장 종하 스님은 종단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공개 사과한 뒤 “화합을 이룬 바탕 위에서 종단의 개혁과 쇄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개혁세력들이 과거 청산을 내세울 것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됐다.

원로의장 혜암 스님도 “지나간 일은 잘했던, 못했던 그걸 밝히면 안 된다”며 “실수하는 것이 중생이고, 또 실수는 성공의 모체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혜암 스님은 원로회의가 종정 서암 스님을 불신임한 것에 대해 “불가피했다”고 항변했다. 스님은 “종정 스님을 제가 추대해 놓고 제가 불신임한 일이 제일 부끄럽다”며 “그러나 이유가 있었다. 불가피해서 이렇게 됐다”고 주장했다. 스님은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듯 “거두절미하고 이왕지사 이렇게 됐으니까 지나간 일은 얘기 하지 말자”며 “다 같이 단결화합해 주길 바란다”고 인사말을 마무리했다.

순조로울 것 같았던 113차 중앙종회는 안건 채택에서부터 논란이 일었다. 종단사태 수습을 위해 갑작스럽게 소집된 탓에 전차 회의록은 물론 기본적인 회의 자료조차 준비되지 못했다. 논의 안건도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나 개혁회의 측은 이미 중앙종회가 논의해야 할 안건을 준비했고, 그 계획에 따라 종회는 진행됐다.

종회의장 종하 스님은 “의장 직권으로 종단 사태 수습에 관한 건을 넣었지만 그 외의 안건이 있는 줄 안다”며 회의 시작과 함께 10분간 정회를 요구했다. 그러자 원두 스님은 “종회 스케줄이 이미 정해진 모양”이라며 “총무분과위원회에서 일방적으로 안건 채택을 하는 것보다 (전체 종회의원의) 의견을 수렴해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스님은 “그동안 종회의원들이 자기들의 뜻을 개진하지 못하고 스스로 제 역할을 못해 이 사태를 맞았다”며 “오늘은 종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의장 스님이 이끌어 달라”고 주문했다. 향운 스님도 “새삼스럽게 (총무분과위원회에서 안건 조정)할 것 없이 의장단에서 원로들을 모시고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논의했으면 좋겠다”고 동의했다.

그러나 월주·정휴 스님은 원칙론을 내세우며 “총무분과위원과 각 분과위원장들이 안건을 조정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총무분과위원과 각 분과위원장들에 의해 이날 토의 안건이 확정됐다. 사무처장 일면 스님은 “논의 결과 △원로회의의 27대 총무원장 선출 인준 거부의 건 △총무원장 사퇴 문제 및 불신임 처리의 건 △원로회의 종정 불신임의 건 △종헌개정의 건 △개혁회의법 제정의 건 △종회해산의 건 등 6개 안건으로 정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원두 스님이 다시 이의를 제기했다.

원두 스님은 “종헌 개정은 즉석에서 발의되는 것이 아니다. 종회의원 3분의 1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동의를 받았느냐”며 “의현 총무원장 당시 종회가 그렇게 적당주의로 했기 때문에 오늘의 이 사태를 가져왔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종하 스님은 “타당한 말씀이지만 종회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 일단 채택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원두 스님은 물러서지 않았다. 스님은 “종정 불신임결의는 부처님의 교법에 어긋난 것”이라며 “부처님 교법에 어긋난 결의를 했다면 그 회의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수의 종회의원 스님들이 원안대로 처리할 것을 요구해 안건은 그대로 채택됐다.

첫 안건으로 상정된 ‘원로회의의 제27대 총무원장 선출 인준 거부의 건’은 특별한 이견이 없었다. “4월5일 원로회의에서 합법적인 절차로 부결됐다”는 종하 스님의 설명에 따라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두 번째 안건으로 상정된 ‘총무원장 사퇴 및 불신임 처리의 건’에서는 의현 총무원장의 사직서 제출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종하 스님은 “총무원장은 종회에서 선출되기 때문에 사표를 제출할 때도 중앙종회에 내야 한다”며 “매스컴을 통해 총무원장 권한을 종정에게 일임한다고 했지만 사표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의현 총무원장의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현근 스님은 “총무원장은 언론을 통해 공식적으로 사퇴를 선언한 것”이라며 “따라서 불신임안은 필요 없고, 우리는 사표만 수리하면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설조 스님은 “세상이 혼탁하니까 언론 기관에 보도된 사실도 오보가 수두룩하다”며 “혹여 여진이 생길 수 있으니 중앙종회에서 불신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다수의 종회의원들이 불신임을 요구해 ‘의현 총무원장의 불신임’의 건은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종하 스님은 다시 ‘4월10일 원로회의 종정 불신임의 건’을 상정했다. 지형(중원) 스님은 “원로스님들이 (종정 스님을)모셨다가 다시 철회했기 때문에 중앙종회는 원로 스님들의 뜻을 확인만 하면 된다”며 원안대로 통과시킬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원두 스님은 “종정 스님의 불신임을 결의한 것은 승려대회 금지교시를 내렸다는 이유”라며 “그 교시가 부처님 법에 어긋났다면 당연히 불신임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오해에 의한 것이라면 원로와 종정 스님이 자체적으로 수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반대의 뜻을 밝혔다.

이 발언으로 장내는 술렁였다. 그러자 정대 스님은 “종정 스님 불신임 문제는 애초 원로회의에서 불신임했으니까 중앙종회에서 다룰 일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두 스님은 멈추지 않았다. 스님은 “부처님 교법에 어긋난 결의를 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원로의장 스님의 말씀을 들어봐야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종하 스님은 “부처님 법도 세속의 변천에 따라 변해가야 한다”며 “자꾸 율장, 교법 어쩌고 하는 그런 어려운 소리하지 말라. 우리는 종헌종법대로만 한다”고 원두 스님의 발언을 제지했다. 명선 스님은 “종헌종법에도 종정을 불신임한다는 조항이 없다”며 “초법적으로 승려대회를 했더라도 종정 불신임 문제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니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만류했다.

논란이 커지자 혜암 스님이 발언에 나섰다. 스님은 “종정 스님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정성을 다해 밤낮으로 만나서 타협을 하려고 해도 어디에 숨었는지 만날 겨를이 없었다”며 “종단이 곪아터지고 불이 타고 있는데 불은 꺼야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불을 끄기 위해 불가피하게 불신임을 했다. 이것은 합법이지 비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혜암 스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법장 스님은 “원로 스님들의 뜻에 따라 (원안대로) 결의할 것”을 요구했다. 다수의 종회의원들이 이에 동의하면서 결국 ‘종정 불신임결의의 건’은 원안대로 가결됐다.

종하 스님은 다음 안건으로 종회 해산 절차를 위한 종헌개정안을 상정했다. 그러나 원두 스님은 논의에 앞서 신상발언을 요구했다. 스님은 중앙종회가 ‘종정 불신임결의’를 가결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스님은 “종정 스님은 결코 의현 스님을 두둔하기 위해 숨으신 적이 없었다”며 “종단을 위해 종정으로서 그 책무를 다하려고 노력했고, 3번의 교시를 통해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고 강조했다. 원두 스님은 종정 스님이 3월23일 봉암사에서 원로들과 만나 의현 스님의 3선을 반대했고, 4월2일 혜암 스님과 함께 의현 스님의 사표를 받아 사태를 수습하려 했던 사실을 설명했다. 그러나 4월3일 자신이 납치되면서 이 일이 끝내 성사되지 못했지만 종정 스님은 종단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스님은 “종정 스님이 부처님 말씀에 어긋난 일을 하셨다면, 또 대중이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숨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그러나 종정 스님은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스님은 “종회가 해산하기 전에 나는 스스로 물러나겠다”며 “마지막으로 종회가 세에 의해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해 달라”고 말하고 회의장을 떠났다. 그러자 영담 스님은 회의장을 벗어나는 원두 스님을 향해 “확인할 것이 있다”며 “여기에서 나가면 종회의원을 사퇴하는 것이냐, 뭐냐”고 이죽거려, 의장 종하 스님에게 “그만하라”는 핀잔을 받기도 했다.

원두 스님의 퇴장으로 혼란스러웠던 장내는 곧 수습됐다. 곧이어 중앙종회는 ‘종단의 개혁과 쇄신이 필요할 경우 입법·사법·행정을 총괄하는 기구를 탄생시키고, 그 기구에 전권을 넘길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종헌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혁회의의 법적 토대를 마련한 개혁회의법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마지막 안건인 종회해산권이 상정됐다. 그러자 종회의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참회와 해명을 쏟아냈다. 성타 스님은 “총무원장의 3선 반대는 사부대중 절대 다수의 뜻이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역사의 오점을 남긴 것을 반성한다”며 “그러나 그 당시 토론을 못할 정도의 공포분위기가 있었고, 의사를 표현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성 스님도 “의현 총무원장을 가까이 모셨던 사람으로서 저는 재선을 할 때부터 반대하고, 몇 번을 만류했지만 여의치 않아 이렇게 된 것에 대중 스님들께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현근 스님은 “분위기가 살벌하고 무서워서 못했다고 하는데 법등 스님은 목이 터져라 반대했고, 설조 스님은 반대하다 (투표를)거부하고 나갔다”며 “무조건 따라가 놓고 지금 와서 분위기에 의해서 3선을 해줬다는 것이 말이 되나. 양심은 있느냐”고 질타했다. 스님은 “원장 비서실장으로서 저도 (3선을) 반대하지 못한 점 깊이 느끼고 있다”며 “많은 부분에 책임감을 통감하면서 종회해산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4월15일 오후 5시15분, ‘의현 총무원장의 3선 가결’이라는 역사적 오명을 남긴 제10대 중앙종회는 대국민 사과문 발표를 끝으로 자진해산을 결정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260호 / 2014년 9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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