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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설당 스님의 후임

기자명 성재헌

대중 스스로 할일 하도록 하는게 참 주지

▲ 일러스트=이승윤

물론 세상사는 단정할 수 없다. 내일도 태양은 뜬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하루 이틀 돈 지구가 아니기에 어제 돌았고 오늘도 돌듯이 내일도 돌 가능성이 많은 것만큼은 대략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인간사도 단정할 수 없다. 내일도 살아서 숨 쉬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하루나 이틀 치 인연으로 만들어진 몸이 아니기에 어제 건강했고 오늘도 건강하다면 내일도 건강할 가능성이 많은 것만큼은 대략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몸이 그렇듯, 마음도 그렇다. 인연 따라 천변만화하는 정도가 몸보다 심한 측면이 있지만 마음에도 근육이 있으니, 익어진 습관이 그것이다. 습관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그가 하고 있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찬찬히 관찰해 보면 그의 내면세계를 대략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하루 이틀에 익어진 습관이 아니기에 어제 그랬고 오늘도 그런다면 내일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 즉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사람의 마음은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는 사람의 행동을 통해 추측할 수 있고, 알 수 없는 내일은 알고 있는 어제와 오늘을 기반으로 예측할 수 있다.

개인의 삶에서도 단체의 운영에서도 어떤 주인을 선택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주인이 어떠냐에 따라 개인과 단체의 운명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주인을 선택해야 할까? 설당 도행(雪堂道行) 스님께 여쭤볼 일이다.

설당 스님께서 천복사(薦福寺)에 머물 때 일이다. 어느 날 군수 오부붕(吳傅朋)이 찾아오자 설당 스님이 후임 주지 문제를 꺼냈다.

“노승은 너무 늙었습니다. 이 문중을 이끌 새로운 사람을 찾았으면 합니다.”

“염두에 두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몇 사람이 있긴 하지만…”

“뭘 그리 주저하십니까?”

“우리 문중의 미래가 달린 일이니, 주저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제자 가운데서 한 분 추천해 주시지요.”

“몇몇이 모여 사는 작은 암자야 행여 운영에 실수를 범한다 해도 그 피해가 작고, 작은 피해는 또 쉽게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복사는 결코 작은 규모의 사찰이 아닙니다. 한번 잘못되면 불조의 혜명을 잇는 과업을 그르치게 되고, 불교집안에 막대한 폐해를 끼치는 것이 됩니다. 저에게 역량을 갖춘 제자가 몇몇 있다지만 큰 집안을 이끌기에는 경험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때 마침, 한 납자가 찾아와 지팡이를 세우고 다가왔다.

설당 스님은 잠시 대화를 멈추고, 납자의 인사를 받았다.

“자네는 어디서 왔는가?”

“복주(福州)에서 왔습니다.”

말쑥한 얼굴에 말하는 품세도 맞잡은 두 손도 참 공손했다. 설당 스님은 젊은 납자의 태도에 흐뭇해하며 불쑥 물으셨다.

“멀리서 행각했으니, 여기저기 들러보았겠구나. 그래, 자네가 보기에 훌륭하신 큰스님이라 여겨지는 분이 계시더냐?”

“네, 스님.”

“어느 분이 훌륭하더냐?”

“오본(悟本) 스님이 참으로 훌륭하셨습니다.”

“신주(信州) 박산(博山)에 있는 오본 스님?”

오본 스님은 설당 스님이 맘속에 꼽고 있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모른 척하고 다시 물었다.

“그래 그가 무슨 말을 하던가?”

“그분의 말씀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설당 스님은 웃었다.

“말도 들어보지 않고 훌륭하다고 평을 해, 얼굴에서 방광이라도 하더냐?”

“마침 제가 찾아갔을 때, 급한 일로 출타하고 계시지 않아 얼굴도 뵙지 못했습니다.”

설당 스님은 깜짝 놀랐다.

“그럼, 너는 뭘 근거로 오본 스님이 훌륭하다는 거냐?”

젊은 스님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말씀드렸다.

“그 절로 들어가는 길은 널찍하고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더군요. 또, 줄줄이 이어진 회랑이 반듯하고 먼지 한 톨 없이 빗질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법당에는 향과 등불이 끊어지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정확히 시간을 맞춰 종과 북소리가 울리더군요. 게다가 아침의 죽도 점심 때 밥도 깔끔하고 맛깔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절 스님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일을 알아서 조용히 하고, 곁에 사람이 지나가면 공손히 합장을 하더군요. 그래서 주지이신 오본 스님이 정말 훌륭한 분이란 걸 알았습니다.”

젊은 납자의 이야기가 끝나자 설당 스님은 크게 웃으셨다.

“하, 하. 자네 말이 맞아. 오본 스님은 훌륭한 분이야. 그걸 알아보는 자네도 안목이 있구나.”

설당 스님은 고개를 돌려 군수를 바라보았다.

“오본 스님을 이 늙은이의 후임으로 추천했으면 합니다.”

군수는 난색을 표했다.

“아니 그리 망설이시더니, 처음 본 스님의 한 마디에 이리 쉽게 결정하십니까?”

설당 스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절의 주지를 추천하는 일이 관리를 추천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얼마 전 범연령(范延齡)이 전직(殿直)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금릉을 지나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금릉을 다스리던 장영(張詠)이 범연령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었지요.

‘그래, 오던 길에 훌륭한 관리가 좀 있던가요?’

‘예, 어제 평향(萍鄕)을 지나왔는데, 그곳의 읍재(邑宰)인 장희안(張希顔)이란 자가 참 훌륭하더군요.’

‘그를 만났습니까?’

‘만나지 못했습니다.’

‘만나 보지도 않았는데, 그가 좋은 관리란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 평향 고을로 접어들자 다른 고을과 달리 다리도 잘 놓여있고 길도 잘 닦여져 있더군요. 널찍한 논밭에 두렁이며 도랑도 반듯반듯하고, 들판에 노는 땅이 없었습니다. 또 장거리에 도박하는 사람이 없고, 밤에는 정확히 시간을 맞춰 북을 치더군요. 그래서 그 고을 관리가 참 괜찮은 사람이란 걸 알았습니다.’

‘장희안은 예전부터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알아보고 추천하는 당신도 참 좋은 관원이군요.’

장영은 매우 기뻐하며, 그날로 곧장 조정에 장희안과 범연령을 추천했지요.

제가 이 스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범연령이 장희안을 추천한 일과 매우 비슷합니다. 게다가 군수께서는 장영보다 훨씬 현명한 분이십니다. 그러니 군수께서 오본 스님을 주지로 청해주신다면, 이 늙은이는 물론 문중의 영광일 것입니다.”

군수 오부붕은 기뻐하며, 곧바로 오본 스님을 천복사 주지로 초청하였다. 

성재헌


[1260호 / 2014년 9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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