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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얌드로쵸

광활한 티베트 대자연서 세월호 상처의 치유를 기원하다

▲ 얌드로쵸 가는 길에서 만난 티베트 문명의 발상지 얄룽창포강.

순례단을 태운 버스가 히말라야의 품속으로 들어간다. 판첸라마의 도시, 시가체로 향하는 길. 라싸에서 벗어나자마자 눈부신 대자연과 얄룽창포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얄룽창포강은 신들이 살고 있는 카일라스산에서 발원해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을 흐르는 티베트 문명의 발상지다. 12개 마을 부족장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됐던 네치짼뽀가 강림했던 얄룽 계곡을 품었기에 뵈릭 민족에게는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진다. 보랏빛 야생화가 곳곳에 피어있는 강가 주변으로 등짐 진 아낙들이 한갓진 걸음을 옮긴다. 목동은 풀을 뜯어먹기 위해 멈춰선 면양을 가벼운 돌팔매질로 재촉한다. 척박한 돌무더기 산 아래로는 그들의 보금자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강이 불어넣은 숨결을 소중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의 모습이, 수천 년 전 이 땅의 풍경을 그대로 박제한 듯 이어진다. 한들거리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굳건함이 느껴진다. 스님들의 교리문답인 최라(chora), 그 열띤 분위기에서 감지했던 희망이 히말라야 고원을 관통하는 얄룽창포강처럼 순례자의 마음에 흐른다. 티베트인들의 내면까지 들여다보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대자연에 순응해온 그들을 깊숙이 목격하고 있음이라.

티베트 3대 성호 가운데 하나
‘분노한 신들의 안식처’ 뜻 간직
에메랄드빛으로 푸른보석 애칭

토번왕조 시원과 맞닿은 성지
치유와 지혜증득의 믿음 내려와
티베트 순례자들의 발길 이어져

해발 4480m에 둘레만도 250km
하늘·산 만들어내는 풍경 장관
타르쵸에 노란리본 매단 순례단
세월호 희생자 극락왕생 발원

얄룽창포강이 점점 멀어진다. 버스는 이내 급경사를 오르기 시작한다. 목적지인 얌드로쵸의 전망대에 가기 위해서는 험준한 산 중턱에 건설된 도로를 통과해야 한다. 라싸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잇는 우정공로(Friendship Road)에서 얌드로쵸 방향의 도로에 접어들자마자 현기증이 일어난다. 얌드로쵸의 고도는 라싸보다 900m 높은 4480m다. 게다가 전망대가 위치한 깜바라 언덕은 4900m에 달한다. 눈을 잠시 감았다 떴을 뿐인데, 방금 지나온 길이 계곡 아래로 까마득하게 물러나있다. 운전사가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순식간에 산 밑으로 굴러 떨어질 것 같다. 히말라야 고원에서 생과 사의 경계는 이토록 얄팍한 것인가. 죽음에 대한 공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물러나기를 반복하며 마음을 어지럽힌다.

▲ 얌드로쵸를 보기 위해선 가파른 경사의 도로를 통해야 한다.

고산증세도 점점 심해진다. 라싸에서도 진정되지 않아 고생했는데, 하물며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있는 이곳에서의 고통은 이루 말하기 힘들 정도다. 출발 전 걱정했던 대로 숨 쉬기가 거북하고 머리는 지끈지끈거린다. 다행히 운전기사가 한국 돈으로 1만원에 산소통을 팔고 있다. 산소를 흡입하니 안개가 낀 듯 흐릿했던 머릿속이 조금 맑아진다. 산소통을 입에 물고 창밖을 바라본다. 바람에 나부끼는 오색 타르쵸와 사다리모양이 그려진 돌이 보인다. 가이드에 따르면 티베트인들은 윤회의 거죽을 벗고 하늘로 올라가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사다리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만난 티베트인들의 갸륵한 신심이기에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천 길 낭떠러지 위를 위태롭게 달리던 버스가 속도를 천천히 줄인다. 깜바라 언덕 전망대에 도착한 것이다. 얌드로쵸의 ‘쵸’는 티베트어로 호수를 뜻한다. ‘분노한 신들의 안식처’라는 뜻의 얌드로쵸는 남쵸, 마나사로바와 함께 티베트 3대 성호(聖湖) 가운데 하나로 길이 130km에 너비 70km, 둘레 250km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네치짼뽀는 바로 이곳, 얌드로쵸 용왕의 딸 남무무와 결혼해 토번 왕조를 세운다. ‘푸른 보석’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얌드로쵸는 수명연장과 지혜증득의 믿음을 간직하고 있어 티베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 깜바라 언덕에서 바라본 얌드로쵸. 해발 7197m 노진 캉짱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맥과 코발트빛 하늘, 옥색 얌드로쵸가 눈부신 조화로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 에메랄드빛 장관이 펼쳐진다. 지금껏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더없이 푸른 하늘과 느릿느릿 움직이는 구름, 해발 7197m 노진 캉짱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맥이 조화롭게 자리 잡았다. 타르쵸에 새겨진 경전을 훑던 바람이 어느덧 곁으로 다가와 찌들어있던 눈과 마음을 개운하게 씻어준다. 얌드로쵸는 그 모든 것들을 실제보다 더 선명하게 담아내며 유유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너저분한 상념과 들끓는 욕망은 얌드로쵸의 풍광에 흘려보내고, 벌거벗은 채 덩그러니 남겨진 존재와 마주한다.

히말라야의 품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겸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가 아닐까. 어떤 형태의 미사여구로도 표현해낼 수 없는 압도적 풍경에 겸허한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고는 마침내 태고의 비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쌓아온 관념과 축적한 기술,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낸 모든 것들은 그저 부질없이 흩날리는 티끌에 불과하다는 사실. 아만과 아집의 독기서린 눈으로 사바세계를 헤집으며 거친 숨소리 내뱉던 인간들은, 절대 무너지지 않으리라 믿던 것들이 순식간에 증발하는 경험을 하며 결국 스스로를 내려놔 버린다.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유구한 윤회의 물결 속 미세한 파동에 아스라이 걸쳐선 인간들에게 히말라야는, 그렇게 존재를 뒤흔드는 자각의 무대가 되어준다. 그리고 마침내 부처님이 설한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가르침과 조우하게 된다.

▲ 혜총 스님을 비롯한 순례단은 얌드로쵸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세월호의 아픔을 나눴다.

전망대에서 얌드로쵸를 조망한 순례단은 한국에서 준비해온 노란리본을 꺼내 오색 타르쵸로 향했다. 노란리본은 올 봉축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실종자들을 위해 작성한 것이다.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했던 세월호 침몰은,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총체적으로 집약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켜켜이 누적된 오류들이 세월호를 진도 바다에 가라앉혔으며, 죄 없는 학생들은 청춘을 채 피워내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대한민국 모든 구성원들과 함께 불교계 역시 긴급재난구호봉사대를 파견하고 전국 사찰에서 무사생환 기원법회를 봉행하는 등 간절히 노력하고 기도했지만 가라앉은 생명은 결국 떠오르지 못했다. 티베트를 순례하면서도 세월호의 비극은 언제나 순례단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 순례단이 매단 노란리본이 타르쵸와 함께 나부끼고 있다.

조계종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과 경주 골굴사 주지 적운 스님, 조계종 교육원 연수국장 진광 스님 등 순례단은 고산증세로 호흡이 어렵고 가슴이 조이는 상황이었지만 저마다 노란리본을 정성스럽게 매달며 기도한다. 얌드로쵸 오색 타르쵸에 순례단의 간절함이 서리고, 때마침 불어온 바람은 기도를 싣고 고원을 넘는다. 저 바람이 대한민국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은 순례단 모두 똑같을 것이다.
순례단을 이끌고 있는 혜총 스님은 “세월호 참사 영가들은 부디 극락왕생하고 그 가족들은 새롭게 태어나길 바란다”며 “아울러 대한민국이 건전한 공동체로 거듭나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계기로 삼자”고 기원했다.

기도를 마친 순례단은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한참을 이동하다 얌드로쵸 주변 공터에 내린다. 얌드로쵸를 에워싼 땅은 멀리서 봤던 것과 달리 무르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진흙을 털어내며 조심스럽게 호수로 발걸음을 옮긴다. 바짝 다가온 얌드로쵸가 시리도록 푸르다. 아니, 하늘이 푸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얌드로쵸는 다만 이곳의 풍경을 있는 모습 그대로 담아내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손을 모아 물을 긷는다. 잔물결이 일더니 이내 사라진다. 길어 올린 물이 흘러내려 또 다른 잔물결을 만든다. 티베트인들에게 얌드로쵸는 치유의 가피가 서린 곳. 바람에 묻은 순례단의 기도는 지금쯤 어디를 흐르고 있을까. 스러져버린 어린 생명들과 남은 가족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이들의 상처가 부디 치유될 수 있기를. 그리고 더 이상 이러한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되기를. 치유에 대한 티베트인들의 오랜 믿음을 다시 한 번 바람결에 흘려보낸다.

얌드로쵸가 햇빛을 반사하며 찬란하게 빛난다. 고개 들어보니 태양이 중천에 떠올랐다. 가야할 길이 멀다. 출발을 알리는 가이드의 목소리가 들린다. 진흙길을 거슬러 올라 버스에 탄다. 오전 내내 험준한 산 중턱을 가로지르던 버스는 이제 협곡을 통과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가시지 않는 여운을 되새겨본다. 순례단은 원시의 광활함 앞에서 한없이 스스로를 낮췄으며 세월호 침몰 사고의 아픔을 함께 나눴다. 이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순례지를 만나게 되겠지만, 조금 전 느꼈던 감동과 간절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얌드로쵸=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260호 / 2014년 9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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