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새의 자취
81. 새의 자취
  • 이필원 박사
  • 승인 2014.09.15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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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살아 온 삶의 자취를 기록한 것을 ‘전기(傳記)’라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의 삶이 모여 하나의 사건으로 구성되게 되면, 그것을 우리는 ‘역사(歷史)’라고 한다. 역사에는 따라서 시대를 살아갔던 민초들의 삶이 배경으로 존재한다. 아주 소소한 작은 일상의 일들이 역사라는 커다란 배경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역사를 중시한다. 후대에 어떠한 이름을 남길 것인지, 어떻게 사람들에게 ‘내’가 기억될 것인지가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유이다. 이러한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금을 불문하는 인류의 공통적인 의식의 내용일 것이지만, 특히 유교 문명을 배경으로 하는 동북아에서 중요시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좋은 이름을 드날리는 양명(揚名)이 효의 내용으로 강조되기도 한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면
그자체가 이미 만족된 삶
집착과 소유 덜어 낼수록
새처럼 흔적 남지 않게돼


이러한 것은 모두 자취를 남기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 자취를 통해 사회적으로 평가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삶을 함부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그런데 과연 ‘삶의 자취를 꼭 남겨야만 그 삶이 의미 있는 것일까’라는 문제는 남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성인의 삶은 오히려 ‘자취를 남기지 않는’ 삶을 찬탄한다. 경전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자신의 것으로 모아놓은 것이 없고 음식에 대해서 완전히 알며, 삶의 영역은 텅 비어 있고 상(相)이 없어 자유롭네. 마치 허공에 새들의 자취가 남지 없듯이, 그들의 자취는 찾기 어렵다네.”(Dhammapada, Arahantavagga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 것’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도 한다. 많이 소유한 것이 ‘선’한 것으로,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오감(五感)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회이다 보니, 결과적으로 욕망의 실현과 충족을 지향하는 삶을 그리게 된다. 이러한 삶은 나의 삶의 궤적을 분명하고 선명하게 남기는 방식이다.

하지만 인용된 경구와 같이 불교에서 말하는 삶의 방식은 그와 반대가 된다. ‘내 것’이라고 쌓아 놓은 것이 없으며, 나아가 음식에 대한 어떠한 욕망과 집착도 갖지 않는다. 물건을 사용하고, 음식을 먹지만 그것에 대해 집착하거나 소유한다는 생각이 없으니 그의 삶은 한가롭고, 여유롭다. 그래서 그의 삶 자체는 허공과 같이 모든 것을 품고 있으나 어떠한 망상(相)도 짓지 않기에 언제나 자유롭다. ‘담마빠다’에서는 아라한의 삶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과 삶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는 곳에서 고통이 발생한다. 또한 ‘내 것’이란 생각이 확고해지면, 곧 ‘남의 것’과 비교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비교하는 것에서 또한 커다란 고통이 생겨난다. 그래서 인연이 닿은 물건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사용할 뿐 그것에 ‘내 것’이란 생각을 만들어 붙이지만 않는다면, 삶의 모습은 한결 가볍고 상쾌해질 것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으니 다만 내가 할 일을 하고 그에 만족할 수 있게 되니,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만족된 삶이 될 것이다.

피서지든, 유원지든 놀러 가면 즐겁게 놀고 내가 다녀갔단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깨끗이 청소하고 오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좋은 흔적도 남기려 하지 않거늘, 어찌 하물며 나쁜 흔적을 남기려 애쓰겠는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가능한 훼손하지 않고 돌아오는 것, 그것이 제대로 ‘논’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내 것’이라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생각을 덜어 낼수록, 우리는 허공을 나는 새처럼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게 될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1261호 / 2014년 9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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