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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염라대왕의 CCTV

생각과 마음을 풀어내면
몸도 반드시 풀리게 돼
진면목은 껍데기가 아닌
마음 속 한 생각이 결정

自鳴雪琴 (자명설금)
萬里泉香 (만리천향)

저절로 울리는 설악의 거문고 소리에/ 만리를 거슬러 설악으로 흘러가는 샘물의 향기.

벌써 오세암 다녀온 일이 꿈결처럼 아득하다. 오후가 되면 오전에 있던 일이 벌써 꿈이다. 5분 전의 일도 꿈이다.

월창거사의 술몽쇄언에 나오는 구절을 읽어본다.

以覺視夢 (이교시몽)
所行皆是妄作 (소행개시망작)
所見皆是幻境 (소견개시환경)
知不能見於幻 (지불능견어환)
思不能及於覺 (사불능급어교)
反以出夢之說 (반이출몽지설)
指爲虛誕 (지위허탄)

깨어있는 상태에서 꿈속의 세계를 바라봄에/ 하는 것이 모두 허망한 짓거리이고/ 보는 것이 모두 실체없는 허깨비 경계이거늘/ 지각 능력이 허깨비임을 알지 못하고/ 생각이 꿈깬 상태에 미치지 못하여/ 거꾸로 꿈속에서 벗어나 해주는 말을/ 헛소리라고 한다네.

시향만리 원고를 쓰는 이 일도 사실은 꿈이다. 신문에 연재된 글을 잠시 읽는 것도 잠시의 꿈이다. 세월이 좀 더 흐르면 그런 연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아예 감각도 없어질 터이다.

꿈에서 5000조의 당첨금이 걸려있는 복권이 당첨되어도 꿈에서 깨어났을 때 머리맡에 복권이 떨어져주지 않는다. 물에 빠져서 꼬르륵 거리며 허우적거리다가 꿈에서 깨어났을 때 방에 물이 가득차있지도 않다.

인색하다는 의미의 아낄 간자가 있다. 심방변에 굳을 견자를 합쳐서 간(慳)이라고 쓴다. 마음이 딱딱한 쇠붙이처럼 되었다는 뜻이다.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있으면 몸 어딘가가 틀림없이 쇳덩이처럼 굳어있다. 뼛속의 골수가 굳어도 굳어있다.

삼천배를 하고 나면 마음도 넉넉해지고 더러 ‘아이고 내가 뭘 잘못했었구나’하는 생각이 슬며시 일어나는 것은 딱딱하게 굳어있던 골수 덩어리가 풀리면서 마음의 한 구석이 덩달아 느슨하게 릴랙스되었기 때문이다. 또 한 생각 마음을 풀어낼 수 있으면 몸도 따라서 반드시 풀린다. 신구의 삼업이 입체적으로 한꺼번에 동시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꼭 삼천배를 해야 그런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꼭 염불을 해야만 효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참선도 경전공부도 명상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이래야만 이런 효과가 있다고 마음 깊은 속에서 한 생각 일어나는 순간 이미 몸과 마음이 굳어있기도 하고 굳은 상태가 더욱 굳어지는 쪽으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깨에 붙어있는 계급장을 뗀다 해도 가슴 속의 계급장을 꺼내서 청소하지 않으면 본인도 가슴이 답답하고 타인들에게도 답답함을 안겨줄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상식이다.
강감찬 장군이 중국사신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허우대 좋은 부하를 장군 복장을 입혀서 말에 태우고 말고삐 잡은 부하차림으로 나갔다. 중국사신이 오더니 말 위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허름한 차림으로 말고삐를 잡고 있는 강감찬 장군에게 정중하게 “장군님 참 멋지십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염라대왕의 CCTV화면에는 우리가 꿈 속에서 하는 것까지 다 뜬다고 한다. 혼자서 하는 것도 다 뜨고 여럿이 하는 것은 아주 선명하게 뜬다고 들었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염라왕이 직접 체크한다고 한다. 그 염라대왕의 TV 화면에는 껍데기가 아니라 그 사람의 진면목이 뜨기 때문에 어찌해 볼 수가 없다. 염라대왕까지 갈 것도 없이 자신의 마음의 화면은 더 생생하고 선명하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1262호 / 2014년 9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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