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작자미상, ‘곽분양행락도’
35. 작자미상, ‘곽분양행락도’
  • 조정육
  • 승인 2014.09.22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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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진리라 말하는가

“코끼리는 하나이거늘, 저 여섯 맹인은 제각기 자기가 보고 느낀 것만을 가지고 ‘코끼리는 바로 이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열반경

‘곽분양도’로 복을 기원하지만
실제 곽분양 인생은 고난 연속
‘맹인이 만진 코끼리’ 비유처럼
자신 관점 넘어 진실 직시해야

언니와 함께 어린 시절 추억을 얘기하다 뜻밖의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나는 무척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언니에게는 지긋지긋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나는 아프고 힘든 기억이 언니에게는 신나고 의미심장한 기억으로 추억되었다. 나는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을 언니는 생전 처음 듣듯 떠올리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똑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전혀 다른 기억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우리 생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세 사람이 한 극장에서 만나 남녀가 이별한 영화를 봤다고 치자. 한 사람은 남자 주인공이 비열하다고 비난한다. 또 한 사람은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노라고 그를 옹호한다. 세 번째 사람은 여자 주인공이 더 나쁘다고 주장한다. 조건 좋은 남자를 만나자마자 남자 주인공의 여린 마음을 이용해 교묘히 떠나게 했다는 것이다. 세 사람 중 누구의 판단이 옳을까. 세 사람 다 정확하다고도 할 수 있고 세 사람 다 틀리다고도 할 수 있다. 어쩌면 세 사람의 생각을 다 섞어 놓은 것이 진실에 가까울 수도 있다. 문제는 세 사람이 오직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고 우기는 데 있다. 세 사람 모두 전체의 한 측면만을 봤을 뿐인데 자신이 본 측면이 전체라고 판단한다. 그런 예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학자가 자신의 학설을 주장할 때도, 정치인이 정견을 발표할 때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옛날 인도의 어떤 왕이 신하들과 진리에 대해 말하던 중, 대신을 시켜 코끼리 한 마리를 몰고 오도록 했다. 그런 뒤 왕은 여섯 명의 맹인을 불러 손으로 코끼리를 만져 보고, 각각 소견을 말해보라고 했다. 제일 먼저 코끼리의 이빨을 만진 맹인이 말했다.

“폐하. 코끼리는 무같이 생긴 동물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코끼리의 귀를 만졌던 맹인이 말했다.

“아닙니다, 폐하. 저 사람이 말한 것은 틀렸습니다. 코끼리는 곡식을 까불 때 사용하는 키같이 생겼습니다.”

옆에서 코끼리의 다리를 만진 맹인이 나서며 큰소리로 말했다.

“둘 다 틀렸습니다. 제가 보기에 코끼리는 마치 커다란 절구통같이 생긴 동물입니다.”

또 코끼리 등을 만진 맹인이 말했다.

“코끼리는 평상같이 생겼습니다. 저 사람들이 모두 틀렸습니다.”

배를 만진 이는 코끼리가 ‘장독같이 생겼다’고 주장하고, 꼬리를 만진 이는 ‘굵은 밧줄같이 생겼다’고 우기면서 서로 자신이 옳다며 다투었다. 왕은 그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고 신하들에게 말했다.

“보아라. 코끼리는 하나이거늘, 저 여섯 맹인은 제각기 자기가 보고 느낀 것만을 가지고 ‘코끼리는 바로 이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남의 의견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과오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진리를 아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이 내용은 ‘열반경’에 나오는 얘기로 흔히 ‘군맹모상(群盲摸象)’ 혹은 ‘군맹평상(群盲評象)’이라는 비유로 알려져 있다. 여섯 맹인 중에 나도 포함되지 않을까 반성되는 얘기다. ‘군맹모상’의 사례는 코끼리를 만질 때나 영화를 볼 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의 인격이나 삶의 철학도 마찬가지다. 내가 알고 있는 그의 모습이 진짜 그의 모습일까. 당신이 알고 있는 나의 모습이 진짜 나라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의 인물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 작자미상, ‘곽분양행락도’, 19세기, 비단에 색, 131×415cm. 삼성리움미술관.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는 지난 해 연재한 ‘그림, 불교에 빠지다’의 첫 번째 글에서 살펴본 그림이다. 천하 모든 사람들이 열망하는 오복(五福)은 다 누리고 애써 피하고자 한 육극(六極)은 그림자도 밟지 않은 팔자 좋은 사람의 생애를 들여다본 글에서였다. 그가 바로 당(唐)나라 때 실존했던 곽자의(郭子儀:697-781)라는 사람이다. 유명한 무장(武將)이었던 곽자의는 나라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큰 공을 세워 분양왕(汾陽王)으로 봉해졌다. 그래서 곽자의라는 이름 대신 곽분양(郭汾陽)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그는 한 평생을 부귀영화를 누리며 풍족하게 살다 85세로 세상을 마쳤다. 그의 휘하에 있던 부하 중 60여명이 장수나 재상이 되었다. 그가 살아생전에 누렸던 부귀영화는 고스란히 자손에게 이어졌다. 8명의 아들과 7명의 사위가 모두 조정에서 중책을 맡았고 아들은 황제의 사위가, 손녀는 황태후가 되었다. 그야말로 복의 세습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그의 삶을 얼마나 부러워했을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는 공신의 몸으로 ‘그 공이 천하를 덮을 듯하나 주인이 의심하지 않았고, 신하로서 최고 직위에 이르렀으나 뭇 사람이 시기하지 않았고, 사치와 욕망을 다 누렸지만 사람들이 비난하지 않았다’고 평가받았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표상이었다. 이것이 ‘곽분양행락도’가 복을 가져다주는 길상의 대명사로 많이 그려지게 된 배경이다. 명문대에 합격한 사람의 교복을 물려받는 전통이나 1등에 당첨된 로또복권의 판매처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와 같은 예라 하겠다. ‘곽분양행락도’ 속의 배경은 화려하다. 그림은 절반으로 나뉘어 오른쪽에는 여성들의 공간이, 왼쪽에는 행사장이 그려졌다. 행사장 중앙에는 곽분양이 앉아 있고 그 앞에서 자식, 손주, 친척 등을 비롯한 축하객들이 모여 성대한 잔치를 벌이고 있다. 즐겁고 화려한 잔치다. 나도 이런 잔치에 초대받았으면 좋겠다.

여기까지가 곽자의가 행복의 표상으로써 알려진 부분이다. 그렇다면 그의 인생의 다른 측면을 들여다보자. 곽자의는 현종(玄宗) 때 무과 시험을 치른 후 군직을 역임했다.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안록산(安祿山)의 난이 발생했을 때였다. 안록산의 난은 현종이 수도 장안을 버리고 험난한 촉(蜀) 땅으로 도망 갈 정도로 큰 난이었다. 현종이 양귀비를 데리고 촉으로 도망간 사건은 여러 점의 ‘명황행촉도(明皇行蜀圖)’로 전해진다. 이 때 곽자의가 전투에서 공을 세워 장안을 수복한다. 나라를 구한 셈이다. 현종의 대를 이은 숙종(肅宗)은 곽자의에게 ‘국가가 다시 회복된 것은 오로지 경의 힘이다’라고 위로하며 그의 공을 높이 치하한다.

그러나 말 뿐이었다. 숙종은 나라가 아직 완전히 평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신하의 공이 너무 크면 부리기가 힘들다고 판단했다. 숙종은 곽자의를 원수로 삼는 대신 태감(太監) 어조은(魚朝恩)을 임명해서 군대를 감독하게 했다. 그러자 장수들과 군사들이 사기를 잃고 어조은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이에 다급해진 조정에서 어쩔 수 없이 곽자의를 다시 임명했다. 그 사건으로 어조은의 시기심이 더욱 커졌다. 어조은은 숙종에게 곽자의의 잘못을 밀고했고 숙종은 곽자의에게 병권을 넘겨주고 장안으로 돌아오라고 명령했다.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한 셈이다. 이 사실을 안 장졸들은 분노했다. 그러자 곽자의는 황제의 명을 받들기 위해 부하들을 속이고 홀로 부대를 빠져나와 장안으로 향했다. 황제는 그에게 미미한 한직을 주었다.

곽자의가 한직으로 물러나 잊혀질만할 때 사사명(史思明)의 난이 일어났다. 안록산의 난과 사사명의 난을 합해 ‘안사(安史)의 난(亂)’이라 부른 이유는 두 사람이 일으킨 난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사사명은 황하와 낙수를 함락시키고 거침없이 수도를 향해 진격했다. 조정에서는 다시 한직에 있던 곽자의에게 병권을 주고 사사명의 난을 막도록 했다. 난을 성공적으로 수습하자 곽자의에게 분양왕이라는 작호가 내려졌다. 이때부터 곽자의는 곽분양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도 잠깐이었다. 숙종이 죽고 대종(代宗)이 즉위했다. 대종은 곽자의에게 주어진 병권을 다시 거두어들이고 숙종 분묘의 축조를 감독하는 산릉사로 임명했다. 또 다시 토사구팽이었다. 이때 또 다시 반란이 일어났다. 양숭의(梁崇義)를 비롯한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대종은 조부인 현종과 마찬가지로 장안을 버리고 협주(陜州)로 피난을 떠났다. 대종은 상황이 위급해지자 다시 곽자의를 원수로 삼아 함양을 진압하라는 명을 내렸다. 당시 곽자의는 파직되어 장안에 돌아와 있었다. 그가 임명되자 순식간에 수천 명의 장수들이 몰려들었다. 곽자의는 마침내 장안을 수복하게 되었다. 대종은 딸 승평공주를 곽자의의 아들에게 주었다. 두 집안이 사돈의 연을 맺게 된 것이다. 비로소 두 집안 사이에 평화가 찾아들었다.
‘곽분양행락도’에는 오직 즐거움과 행복만이 가득하다. 곽자의가 겪어야 했던 쓰라린 상처는 담겨 있지 않다.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통해 보고자 한 것은 그가 누린 부와 명예와 장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만 본다. 자신이 듣고 싶은 얘기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한다. 자신이 보고 듣고 말한 것이 진실이냐 아니냐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곽분양행락도’를 보면 곽자의는 아무런 고난도 겪지 않고 그저 운이 좋아 승승장구한 것 같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의 인생이야말로 고난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천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보고자 한 것은 곽자의의 평정심이 아니다. 그가 어려움을 통해 배운 인생의 진리가 아니다. 이것이 ‘곽분양행락도’에 오로지 행복과 평안만이 담겨 있는 이유다.

이렇게 우리는 코끼리를 만진 맹인처럼 살고 있다. 그래서 권력자 곁에는 아첨꾼이 넘쳐나고 충신은 한직으로 밀려난다. 꼭 정치판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나의 잘못을 지적하는 친구보다 나를 칭찬하고 두둔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한다. 한번쯤 반성해볼 일이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1262호 / 2014년 9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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