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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동메달 선수의 70대 어깨

설악산에 다녀와서 떠오른 네 구절을 정리해본다.

泉香萬里(천향만리)
雪琴自鳴(설금자명)
自鳴雪琴(자명설금)
萬里泉香(만리천향)

샘물의 향기 만리를 흘러가니 / 설악의 거문고 저절로 울리고 / 저절로 울리는 설악의 거문고 소리에 / 만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샘물의 향기

설악산 샘물의 향기는 하산하는 사람의 발자욱을 따라서 흘러내려오고 설악산을 오르는 사람의 배낭 따라 흘러올라간다. 또 필요한 곳이 있으면 오르락 내리락 자유롭게 흘러다니기도 한다. 흘러내리는 향기 속에 이미 흘러오르는 향기가 스며있고 흘러오르는 향기 속에도 흘러내리는 향기가 이미 들어있다.

올라간 것 반드시 내려오니
세상만사 이치가 이와 같아
동메달 죄송하다는 운동선수
과로하지 않게 배려했어야

10월이다. 달력의 월 수를 표시하는 숫자가 두 자리수가 되었다. 누구나 하는 일마다 찾아오는 보람도 한 자리에서 두 자리로 틀림없이 불어나리라. 음력으로는 9월이 두 번이나 들어있다. 윤달이다. 한 달이 보너스로 들어있는 셈이다. 이럴 때 보너스를 신청하면서 음력으로 지급하자고 하면 정신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을 터이니 생각만하고 말은 아낄 일이다.

엘리베이터도 오르내린다. 올라가면 내려오고 내려가면 올라온다. 자신이 위층에서 기다릴 때는 빨리 올라오라고 고사를 지내고 아래층에 있을 때는 빨리 내려오라고 난리들이다. 엘리베이터가 생각이 없는 게 아니다. 올라오라고 하는 사람과 내려오라고 하는 사람 모두를 향해 나도 무상한 기계일 뿐이라고 외치면서 어떤 때는 덜컹 멈추어버린다.

엘리베이터뿐만 아니라 세상만사가 그런 것은 상식에서도 일반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은행나무들이 뭘 자꾸 바닥으로 던지고 있다. 향기가 제법 진하다. 향기 나는 물건을 밟은 사람들은 한참씩 자신의 뒤꿈치를 바라본다. 걸음걸이도 갑자기 다채롭게 된다. 허나 은행나무가 바닥을 향해 던지는 열매는 향기만 맡아도 건강에 크게 도움이 된다. 자고로 그 맛이 쓰고 그 향기가 독해야 제대로 된 약이다.

너무 쓰거나 너무 독하면 약도 너무한 약이 된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수영선수가 인천에서 동메달을 땄다. 신문에서는 갑자기 그 선수의 어깨연골상태가 60대 70대 어깨라고 호들갑을 떨어댄다. 아니 그 정도라면 운동을 쉬게 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정형외과에 보내든지 해야지 왜 우리는 그 선수를 자꾸 물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가. 힘들게 메달 따고 방송 마이크가 오면 “죄송합니다”하고 말한다. 그 선수도 선수이고 지켜보는 우리도 참으로 미안한 생각이 든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에 어깨치료에 전념하도록 하면서 수영중계 해설자로 등장하게 해도 될법한데 수영전문가가 아니니 그 내막을 알 길이 없다.

다만 과도하게 써버린 그의 어깨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그 투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 애잔해지는 이 가슴은 또 무엇인가.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한다. 운동선수의 건강도 건강선수일까. ‘앱썰루우뚤리 노오오’이다. 정신건강에 좋을 법한 학문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지수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운동선수이든 학문선수이든 모두가 과로하지 않게 서로서로 배려할 일이다. 경영선수, 수영에서 말하는 경영이 아니라 회사나 기업 경영선수도 마찬가지이다.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과로경영선수이다. 앞에서 말한 수영선수는 동메달을 땄지만 잡스는 세상하직메달을 손으로 쥐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그 메달을 땄다.

시의 향기도 너무 맡으면 코가 그 향기를 알지 못한다. 그 향 그만 좀 피우라고 말하는 사람도 전혀 없지는 않다. 그래도 지구는 돌고 또 돈다. 쉬면서 집중하고 집중하면서 쉬어갈 일이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63호 / 2014년 10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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