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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윤제홍, ‘옥순봉도’

기자명 조정육

“붉은 색안경을 쓰고서 불이 났다 믿고 있는가”

“이는 비유하면 병든 눈이 허공꽃과 제2의 달을 보는 것과 같느니라.” 원각경

중학교 수학여행 때였다. 짓궂은 친구들이 일찍 잠든 친구 안경에 싸인펜으로 붉게 칠한 뒤 ‘불이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친구는 진짜 불이 난 줄 알고 헐레벌떡 뛰쳐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깔깔거리며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비슷한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단양절경 운치 그린 옥순봉도
눈병 있다면 절경도 안 보여
거짓된 6진연영에 속지 말고
무명을 밝혀 윤회서 벗어나야

▲ 윤제홍, ‘옥순봉도’ 1844년 종이에 연한 색, 58.5×31.6cm 개인소장.

학산(鶴山) 윤제홍(尹濟弘:1764~?)의 ‘옥순봉도’는 그가 81세 때 단양을 유람했던 추억을 되살려 그린 작품이다. 먼저 제시를 살펴보자. 1봉과 2봉 사이에 써 놓은 제시를 보면 오늘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여정을 확인할 수 있다.

“바람이 잠잠해지고 햇살이 밝은 날이면 한벽루에서 배를 저어 거슬러 올라가 옥순봉에 이르고 흥이 다해서야 돌아왔다. 권백득이라는 자는 옥피리를 잘 부는 자로 신선처럼 노닌다. 함께 배를 탄 사람은 소석 김시랑, 천상 윤세마, 다불산인 권이로써 모두 운치 있는 기이한 선비들이다. 학산구구옹이 그리다.”

바람이 고요한 날이었다. 날이 밝자 학산구구옹(鶴山九九翁)인 윤제홍과 일행이 배를 타고 한벽루를 출발해 옥순봉에 이르렀다. 한참을 배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니 물 위에 우뚝 속은 옥순봉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모두 와아, 하고 감탄사를 연발하자 흥을 못이긴 권백득이라는 자가 배에서 내려 봉우리쪽으로 걸어간다. 이렇게 좋은 날 흥을 살려내지 않고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으랴. 옥피리를 꺼내들더니 한 곡조 멋들어지게 불어 제낀다. 물도 바람도 모두 숨소리를 죽이며 그의 피리소리에 취한다. 3봉 아래 피리를 불고 있는 권백득이 보인다.

윤제홍의 자는 경도(景道), 호는 학산(鶴山), 찬하(餐霞)다. 지두화법(指頭畵法:붓 대신 손에 물감을 묻혀 그리는 기법)에 뛰어났다. ‘옥순봉도’는 그의 장기인 지두화법으로 그린 작품이다. 윤제홍의 ‘옥순봉도’는 문인산수화로써의 격이 살아 있다. 멋스럽고 운치 있다. 훌륭한 솜씨를 가진 화가가 멋진 풍경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작품이다. 풍광 좋은 청풍에는 명문세가의 문인들이 수령으로 근무했다. 윤제홍도 청풍부사를 역임했다. 후원자가 있는 곳에 예술가가 있기 마련이다. 윤제홍 뿐만 아니라 김홍도(金弘道,1745-1806)와 엄치욱(嚴致郁,19세기)도 같은 제목의 그림을 남겼다.

단양에 가면 참으로 멋진 풍경을 많이 보게 된다. 옥순봉을 비롯해 사인암,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 등 빼어난 경치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황홀케 한다. 오죽하면 단양팔경이라 했을까. 수많은 문집과 화첩을 통해 글과 그림으로 상찬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그곳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 눈에 병이 들었다면 어떻게 할까. 천하의 절경이라 해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원각경’은 12명의 보살이 여래가 깨달은 대원각(大圓覺)의 도리에 대해 부처님께 묻고 답하는 경전이다. 그 12명의 보살 중 첫 번째로 등장한 보살이 문수보살이다. 문수보살은 보현보살과 함께 석가모니부처를 양쪽에서 보필하는 협시보살(脇侍菩薩)이다. 보현보살이 코끼리를 탄 모습으로 등장한다면 문수보살은 사자를 탄 모습이라도 등장한다. 왜 사자인가. 사자는 백수(百獸)의 왕이다. 사자가 한번 소리치면 숲속의 모든 짐승들은 숨죽여 몸을 낮춘다. 감히 사자의 위용에 맞설 수 없기 때문이다. 문수보살은 한 손에 칼을 들고 다른 손에는 경전을 들고 있다. 문수보살이 들고 있는 칼은 지혜의 칼이다. 무명(無明)을 잘라버리는 칼이다.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무명을 잘라버리는 모습은 사자의 포효소리에 뭇짐승들이 숨을 죽이는 것과 다름없다.

대중 가운데 있던 문수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나간 문수보살은 오체투지하고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는 부처님의 주위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나서 두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렇게 하는 행위는 인도의 예법이다. 경전마다 보살이 부처님께 질문을 할 때는 이와 같은 예법을 취한다.

“대자대비하신 세존이시여, 원하오니 이 법회에 온 모든 대중을 위해 여래가 본래 일으킨 청정함과 청정함에 도달하는 법문(因地法行)을 말씀하여 주소서. 그리고 어떻게 보살이 대승 가운데서 청정심을 일으키며, 모든 병을 멀리 떠나며, 미래의 말법시대의 중생으로서 대승을 구하는 자로 하여금 삿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 지 말씀해 주소서.”

문수보살은 지혜의 보살답게 부처님께 성불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묻는다. 성불하려면 청정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청정함에 도달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말법시대의 중생 중에서 대승을 구하는 자로 하여금 삿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가. 문수보살의 질문은 후세를 사는 우리들의 궁금증을 대신한 질문이다. 부처님이 대답하신다.

“선남자여, 무상법왕에게 대다라니문이 있나니 그 이름을 원각이라 한다. 이로부터 일체의 청정함과 진여와 보리와 열반과 바라밀을 흘려내고, 이 원각법문에 의지해 보살을 가르친다. 시방삼세 일체 여래는 본래 일으킨 인지(因地)에서 성불의 수단으로, 모두 원만히 비추는 청정한 각상(覺相)에 의지해, 영원히 무명을 끊고 비로소 불도를 이루느니라.”

무상법왕(無上法王) 석가모니불에게는 원각(圓覺)이라는 대다라니문이 있다. 대다라니는 총지(總持), 총강(總綱)이라는 뜻으로 8만4000법문의 근본 총법(總法)이다. 부처님 법문을 몇 자로 압축해놓은 진언이다. 그 진언이 원각이다. 원각은 원만(圓滿)하여 결함이나 새어나감이 없다. 일체의 시공간을 포함한다. 부처님도 원각에 의지해 성불하셨고 모든 불보살과 대승을 구하는 자들도 성불할 수 있다. 부처님은 성불하셨는데 우리는 어렵다. 왜일까. 무명(無明) 때문이다. 무엇이 무명인가.

“일체 중생은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먼 옛날부터 갖가지가 전도되어 있다. 마치 방향을 잃은 사람이 동서남북 네 방향을 서로 뒤바꾸어 이해한 것처럼, 4대의 인연화합인 몸을 자기 몸의 모습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으며, 6진과 6근이 상호작용하여 일어난 분별의식인 영상을 자기 마음의 모습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이는 비유하면 병든 눈이 허공꽃과 제2의 달을 보는 것과 같느니라.”

우리 몸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다. 지수화풍(地水火風)의 4대가 인연에 의해 화합한 것이다. 언젠가 인연이 다하면 지수화풍으로 분해되어 되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몸이 영원한 것으로 착각한다. 어디 그 뿐인가. 4대가 화합해 만든 여섯 가지 기능 즉 6근(眼耳鼻舌身意)이 대상이 되는 여섯 가지 경계 즉 6식(色聲香味觸法)과 상호작용해 만든 영상인 6진연영(六塵緣影)을 진짜라고 생각한다. 그림자를 보고 자기 마음이라고 믿는다. 6진연영이 영원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애착과 탐욕이 생긴다. 이것이야말로 뒤바뀌었다. 전도(顚倒)된 것이다. 이것을 비유하자면 마치 병든 눈이 허공꽃(空中華)을 보는 것이고 제2의 달을 보는 것과 같다. ‘반야심경’에서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 했던 내용과 맥락이 같다.

몇 해 전이었다. 컴퓨터 화면을 보는데 눈앞에 날파리가 날아갔다. 쫓았더니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다시 화면을 보는데 또다시 나타났다. 다시 쫓았다. 없어졌다. 없어졌던 날파리는 내가 눈동자를 움직일 때마다 나타났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도대체 저 날파리는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내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을 알고 나타날까. 안과에 갔다. 비문증이라고 했다. 일명 날파리증이라고도 하는데 눈앞에 먼지나 벌레 같은 것이 떠다니는 증세라고 했다. 비로소 이해가 됐다. 날파리가 허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눈 안에 있었다. 눈동자에 병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 눈 속의 날파리가 허공에 날아다닌다고 착각했다. 마치 붉은 색안경을 쓰고 세상에 불이 났다고 착각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허공에 꽃이 있다고 착각한 것은 꽃이 실재해서가 아니라 눈에 병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속에 비친 제2의 달을 보고 진짜 달이라고 생각한 것도 착각이다. 허공꽃과 제2의 달은 그림자이고 6진연영이다. 꽃이고 허깨비고 물거품이고 그림자(如夢幻泡影)다. 허공에 실제로 꽃이 없는데 미망으로 집착하는 것 때문에 우리는 생사를 반복하며 윤회한다. 이것이 무명이다. 우리 모두는 무명이라는 병에 시달린다. 아무리 단양팔경이 멋있다한들 눈이 아프면 볼 수 없다. 붉은 색 안경을 쓴다면 붉은 색으로 보일 것이다. 나처럼 날파리증이 있는 사람이 본다면 풍광 곳곳에 날파리가 날아다닐 것이다. 그러니 거짓된 6진연영에 속지 말고 진정한 생명을 찾아야 한다. 마음을 청정히 하여 6진연영이 실제가 아님을 아는 것. 이것이 무명을 끊는 것이다. 이것이 원각이고 모든 불보살님들이 성불한 비결이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1264호 / 2014년 10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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