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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삼예사-1

인도불교와 중국불교, 논쟁으로 격돌했던 역사의 무대

▲ 인도의 대학승 샨타라크시타는 삼예사에서 티베트 역사상 최초로 구족계를 내린다. 이로써 승단이 형성된 티베트 불교는 발전을 거듭하며 히말라야 고원을 부처님 가르침으로 물들인다. 한편 삼예사는 인도불교와 중국불교의 대립이 논쟁의 형식으로 표출됐던 장소이기도 하다.

라싸 외곽을 통과한다. 공사현장에서 흘러나온 소음이 곳곳에 내걸린 오성홍기(五星紅旗)들을 흔든다. 먼지는 멀리 돌무더기 산에서부터 바람에 실려 날아와 아스팔트 도로와 콘크리트 건물로 곤두박질친다. 현재 라싸는 시시각각 자신의 몸을 불리고 있다. 과거 황량한 벌판이었던 곳에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깔렸다. 높이가 깊음을 대신하고, 속도는 현상을 가로질러 질주하고 있다. 회색 라싸의 무미건조한 풍경을 무심히 바라본다. 오늘의 티베트를 응축하고도 내일의 청사진을 그려내고 있음인가. 알알이 박혀있는 신심만은 변치 않길 기원할 뿐이다.

8세기, 뵌교의 불교탄압 극심
토번의 치송데첸 왕 초청으로
인도 고승 샨타라크시타 입국
이를 계기로 뵌교 숭배 금지령

775년부터 삼예사 건립불사
마귀들의 방해로 전각 무너져
파드마삼바바 치열하게 싸워
마귀 물리치고 완공 이끌어내

인도·중국불교 치열한 대립에
양측 선사 삼예사서 논쟁 펼쳐
패한 쪽 티베트 떠나기로 약속

오늘의 목적지는 삼예사(桑耶寺)다. 티베트에서 최초의 수계가 이뤄진 곳. 파드마삼바바가 토속신앙인 뵌교를 신통력으로 몰아낸 전설이 깃든 사찰. 무엇보다 ‘인도불교와 중국불교의 충돌’이라는 티베트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이 벌어졌던 공간이다.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상징적으로 얽혀있기에 삼예사로 향하는 마음은 벌써부터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차창에 기대 생각에 잠겨있는데 가이드의 말이 귓전을 스친다. 대다수 티베트들은 현 체제에 만족하고 있으며 되도록 조용하게 살고자 한다고, 그러기에 대다수 티베트인들은 독립을 부르짖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본토에서 나고 자란 자부심이 느껴진다. 더불어 중국인들이 기껏해야 티베트의 외관만을 훑어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여유로움일까 외면일까, 그도 아니면 두려움일까.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게 마련이니, 순례자는 다만 티베트인들의 얼굴에서 금강석처럼 견고한 마음을 보고 듣는다.

▲ 배가 분주하게 오고 갔을 야크보트 선착장의 쓸쓸한 모습.

삼예사로 가기 위해서는 얄룽창포강을 건너야 한다. 3시간 넘게 달려 야크보트 선착장에 도착한다. 작은 배 한 척이 선착장에 외롭게 묶여있다.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봐도 직원은 보이지 않는다. 가이드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니 지난해 교량이 건설돼 뱃길은 폐쇄됐다고 한다. 히말라야 고원을 타고 넘어와 얄룽창포강을 배로 건넜던 옛 사람들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그라진다. 문명은 이미 히말라야 곳곳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아쉽지만 버스에 오른다. 도로는 얄룽창포강을 따라 길게 늘어져있다. 다리를 통과해 험준한 산길을 한참 올라간다. 예사롭지 않은 높이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얌드로쵸에서도 경험했거니와, 이곳 히말라야에서 죽음은 언제나 손에 잡힐 듯 바짝 다가왔다가 이내 멀어진다. 반대로 내 것처럼 현전하던 삶 역시 어느 순간에는 저 멀리로 달아나버린다. 그러기에 살아있음에 감사하면서도 결국에는 사대(四大)가 부질없이 흩어진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게 된다.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은 티베트가 순례자들에게 전하는 선물 가운데 하나다.

▲ 삼예사 인근지역은 현재 급격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동안 봐왔던 것과 달리 삼예사로 향하는 길 주변에는 모래가 넓게 분포돼있다. 가이드에 따르면 현재 이 주변은 급격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얇은 모래가 쌓이고 쌓여 돌무더기 산 중턱까지 올라왔다. 소위 말하는 현대화의 감춰진 실체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언젠가 저 모래가 돌무더기를 뒤덮는 날이면 지도는 이곳을 사막으로 기록할 것이다. 지겹게 봐왔던 돌무더기 산이지만 오늘만큼은 애처롭게 느껴진다.

▲ 자동차와 잡상인, 순례자들이 뒤엉켜 어수선한 분위기인 동문.

멀고 먼 길을 돌아 삼예사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내리니 정문인 동문이 보인다. 동문까지 다시 한참을 걸어간다. 동문 주변은 자동차와 잡상인, 순례자들이 뒤엉켜 어수선한 분위기다. 경내로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숨을 고른다.

티베트에 불교가 전파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송첸캄포 왕의 치세가 끝나고 100여년이 지난 8세기 중반, 토속신앙인 뵌교의 불교 탄압은 극에 달했다. 뵌교의 추종자들은 사원을 파괴하고 중국스님들을 추방했다. 당시 왕이었던 치송데첸은 불교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이들을 몰아내고자 761년 인도 나란다대학 대학승인 샨타라크시타를 초청한다. 샨타라크시타는 뵌교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 몇 달 지나지 않아 티베트를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10년 후 파드마삼바바와 함께 다시 입국한다. 이를 계기로 궁궐에서 뵌교식 제사를 금지한 치송데첸은 일반인의 뵌교 숭배 역시 금하고 775년 삼예사 건립 계획을 세운다. 전설에 따르면 건설 도중 전각이 자주 무너졌는데, 치송데첸은 이를 토착신의 방해로 여기고 파드마삼바바를 불러 마귀를 물리치도록 했다. 파드마삼바바는 부처님을 그린 부적을 땅에 놓고 7일 동안 깊은 선정에 잠겼다. 격렬했던 싸움에서 결국 파드마삼바바가 승리하고 이후 12년 동안의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된다.

전각들이 만다라 형식으로 배치된 삼예사에서 수미산에 해당하는 대법당은 779년 완공됐는데, 이곳에서 샨타라크시타를 계사로 구족계가 주어져 티베트 최초의 승단이 형성된다. 이어 치송데첸은 삼예사에 왕실의 가족을 모으고 숭불서약을 받았으며 비석을 세워 이를 대대로 증명토록 했다. 이처럼 불교는 치송데첸 왕에 이르러 국교로 공인됐지만 토번왕국의 둔황 점령으로 중국불교가 대거 유입되면서 샨타라크시타를 중심으로 한 인도불교세력과의 대립을 예고하고 있었다.

▲ 순례단 스님들의 모습에서 과거 구법승의 구도열정을 되새긴다.

순례단 스님들은 동문에서 열을 맞춰 경내로 진입한다. 과거 부처님 가르침을 좇아 한반도를 떠난 수많은 구법승들 역시 지금 스님들과 마찬가지로 경건하게 삼예사 경내를 걸었을 것이다. 숭고했던 구도열정이 1000년 넘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지금 이 자리에서 또 한 번 재현되고 있다. 그동안의 고단했던 여정에서 비롯된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스님들의 걸음걸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는다. 순례단 스님들은 웅장한 티베트 사찰을 그윽한 모습으로 장엄했다.

▲ 삼예사 경내에는 공안국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대법당으로 들어가는 스님들의 뒤를 따른다. 문득 고개 돌려보니 왼쪽으로 오성홍기가 휘날리고 있는 건물이 보인다. 건물에는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의 사진이 걸려있다. 사복공안처럼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순례단 주변을 맴돈다. 이곳에 공안국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부처님을 찬탄하는 작은 몸짓조차도 샅샅이 검문당할 수밖에 없는 티베트인들의 현실과 대면한다.

1200년 전, 티베트가 맞닥뜨린 현실은 인도불교와 중국불교의 치열한 대립이었다. 치송데첸은 자국에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중국불교에 위기감을 느꼈다. 토번의 둔황 점령에 맞춰 히말라야로 들어간 마하연 선사는 중국의 선불교를 널리 전파했다. 인도불교에 바탕을 둔 승단의 비판으로 한때 중국불교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지만 곧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불교 측의 강력한 항의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티베트 불교, 나아가 국론의 분열은 피할 수 없었다. 양측의 갈등을 해소해야 했다. 치송데첸은 인도불교를 대표하는 카말라실라와 중국불교를 대표하는 마하연을 불러 논쟁을 벌이도록 했다. 앞서 양측의 충돌을 직감한 샨타라크시타는 논쟁이 벌어지면 자신의 제자인 카말라실라를 부르라는 유언을 남겼다. 티베트 불교의 향방을 결정지을 무대는 삼예사. 패한 쪽은 티베트를 떠나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연장자인 마하연이 포문을 열었다.

“일체의 행위로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한 행위를 한다면 좋은 과보를 받아 태어나고 악한 행위를 한다면 나쁜 과보를 받아 태어난다. 선행이든 악행이든 깨달음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거나 분별의 경계를 지워버린다면 부처님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불사불관(不思不觀)한다면 경계의 순간에도 실재라는 착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궁극적인 지혜는 이와 같이 단숨에 증득할 수 있다.”

마하연은 선종 돈오(頓悟)의 핵심을 설파했다. 차분하게 듣고 있던 카말라실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삼예사 논쟁의 서막이 올랐다.

삼예사=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267호 / 2014년 10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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