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바위에 새기는 사람
87. 바위에 새기는 사람
  • 이필원 박사
  • 승인 2014.10.27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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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산에 오르면, 바위에 옛사람이 새겨 놓은 시구나 글귀를 보게 된다. 수백 년이 지났지만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글을 보면, 그 내용보다도 무엇보다도 ‘저걸 어떻게 새겼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바위에 보기 흉하게 새겨놓은 글씨나 그림을 보면, 저걸 어떻게 지우나 라는 생각도 든다.

분노 화살 간직하면
마음 속에 평화 없어
바위에 새겨진 화도
흘려버릴 수 있어야


여튼 바위에 새겨진 글이나 그림은 쉽게 지워지지도 않으며, 수백 년 이상의 세월을 견뎌낸다는 점에서 종이에 쓴 글씨나 나무에 새겨놓은 글씨보다도 더 오래간다.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도 바위에 새겨놓은 것처럼 오래 가는 것이 있다. 때로는 물위에 쓴 글씨처럼 흔적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을 바위와 땅과 물에 비유한 경전의 가르침이 있다. 그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바위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 땅 위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 물 위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주 화를 내는데 그에게 화가 오랜 세월 존속한다. 예를 들어 바위에 새기면 바람이나 물에 의해 쉽게 파괴되지 않듯… 이 사람을 바위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이라 한다. … 어떤 사람은 자주 화를 내더라도 그에게 화가 오랜 세월 존속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땅에 새기면 바람이나 물에 의해 쉽게 파괴되듯 … 어떤 사람은 거칠게 말하고 날카롭게 말하고 불쾌하게 말하더라도, 바로 화해하고 친목하고 친절하게 대한다. 예를 들어 물 위에 새기면, 그것이 쉽게 소멸되듯이. … 이 사람을 물 위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이라 한다.”(Aṅguttara nikāya, Pāsāṇalekhasutta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적어도 하루에 몇 번은 화가 나는 상황을 만난다. 그러면 사람에 따라 그때그때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화를 내고 때로는 참는 사람도 있고, 대부분 참아 넘기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화를 내더라도 어떤 사람은 마음속에 그것을 꼭꼭 간직하고 잊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쯤되면, 원한을 품었다고 해도 될 것이다. 이것을 부처님은 화를 바위에 새긴 사람이라고 비유하여 가르치고 계신다. 이렇듯 화를 새겨놓아 잊지 않는 것이 어떤 도움이 될까. 경전에는 두 번째 화살이란 가르침이 있다. 이것은 어떤 불쾌한 상황, 혹은 화나는 상황을 계속해서 생각함으로써, 끊임없이 분노의 화살로 자신을 찌르는 것을 말한다. 욕은 한 번 들었으나, 그것을 마음에 새겨두면 계속해서 욕을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그에게 마음의 평화란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화가 나면 물위에 새긴 것처럼 화가 나는 상황을 마음에 담아 두지 말고 흘려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나에게 이로운 것이다. 화를 내야할 상황에서 화를 내되, 그 화를 간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좋은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물며 해로운 것에 집착해서야 되겠는가.

화가 나는 상황이 계속되어 잊히지 않는다면, 두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남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방식으로 화를 분출하는 것이다. 산에 가서 마음껏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은 방법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비관을 하는 것이다. 경전에서 분노는 자비관으로 치유된다고 설해져 있다. ‘모든 존재들은 행복하소서.’, ‘모든 존재는 평온하소서.’라고 계속해서 되뇌는 것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이 말을 반복하다 보면, 마음이 어느덧 편안해 질 것이다. 그러면 바위에 새겨진 분노의 흔적은 찾기 힘들게 될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1267호 / 2014년 10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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