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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탈융합

기자명 인경 스님

탈융합, 자신만의 안경 벗고 세상 보는 것

요즈음 ‘융합(fusion)’ 혹은 ‘퓨전’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퓨전음악, 퓨전음식이란 말처럼, 서로 다른 분야가 결합하여 새로운 상품이나 물질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말한다. 동양의 음악과 서양의 음악이 서로 뒤섞고, 사람들은 맥주와 소주를 혼합하여 마신다. 이런 현상은 동서양의 문화적인 교류가 심화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심리학서 융합은 부정적 표현
자신 언어 속 갇혀 사는 삶 뜻해
신념을 존재 그대로 알아차리면
새로운 행동을 선택할 여유 생겨

자동차와 컴퓨터의 기술이 융합되고, 법률학과 심리학의 융합하여 새로운 학문분야가 탄생하기도 하고, 교육에서 융합적 사고를 가진 인재를 양성할 목적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하기도 한다. 산업화의 진행과 더불어 학문분야가 전문화되고 영역별 간격이 심화되면서, 융합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융합 혹은 퓨전이란 용어는 오늘날 문화 전반으로 번져나가는 현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융합이란 용어가 긍정적으로 사용하지만은 않는다. 이를테면 가족관계에서 엄마와 딸이 성장에 방해될 만큼 서로에게 과도하게 의존하여, 분리되어 있지 않는 상태를 말할 때, ‘융합’이란 말을 사용한다. 엄마는 딸의 모든 일들을 걱정한다. 어떤 바지와 치마를 입을지를 결정해준다. 물론 가능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딸이 대학을 다니고 있어도 여전히 모든 일정을 점검하고 심지어는 손톱의 매니큐어 색깔까지 결정해준다. 딸의 자율권을 손상시킨다. 반대로 딸은 어떨까? 밖에서 경험한 일들을 사소한 것들까지 무엇이든지 엄마에게 말하고 의사 결정을 할 때 엄마에게 물어본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하고 자신의 결정에 자신감을 가질 수가 없다. 이런 상태를 우리는 융합관계라고 부른다.

융합관계에 있다가 분리되는 순간에 매우 힘든 경험한다. 억울하고 배신감을 느낀다. 내가 그렇게 잘 해주었는데,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어. 엄마는 딸을 원망을 한다. 결국은 수건을 머리에 매고 드러눕는다. 이런 엄마를 보는 딸은 다시 힘들어서 엄마에게 잘못했다고 말한다. 모녀는 옛날의 익숙한 융합관계를 다시 유지 한다. 서로 매우 불편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특히 수용전념치료(ACT)에서 심리치료의 중요한 목표를 탈융합(defusion)에 둔다. 여기서 융합이란 특정한 언어적인 판단에 지배 받을 때, 융합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패배자야’, ‘나는 무가치해’,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런 생각에 압도당하여 우울증에 빠져 집안에 갇혀 지낸다면, 융합된 상태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하지만 일상에서 자신의 일들을 해낸다면, 이런 상태를 융합된 상태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융합은 자신의 언어적 안경을 쓰고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탈융합은 안경을 ‘벗고서’ 세상을 보는 것을 말한다. 융합상태에서 탈융합으로 옮겨가려면, 먼저 자신이 어떤 종류의 안경을 쓰고 있는 줄을 보아야 한다.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면서 이것을 굳게 믿는다면, 그는 실제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이 순간에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을 존재하는 그대로 ‘알아차림’한다면, 그는 새로운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나지 않겠는가?

특히 선불교에서는 ‘문자를 세우지 않고[不立文字] 언어적인 가르침 밖에 별도로 전해진[敎外別傳] 가르침이 있다’고 말한다.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께서는 48년 동안 설법을 하셨지만, ‘한마디도 설하지 않았다’고 하시고, 선종사찰 들어가는 입구에는 ‘이 문에 들어는 자[入此門來者]는 지적인 이해를 내지 말라[莫存知解]’고 하는 비문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어적인 지식에 갇혀있다. 하얗고 달콤한 크림빵이 입안에 있다고 말하면, 우리는 벌써 입안에 침이 가득해진다. 이런 식으로 인터넷과 TV에서 쏟아지는 언어적 정보는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우리의 생리적인 기능까지 장악하고 있다. 언어는 우리의 경험을 변화시키고, 존재 자체를 통제한다. 우리는 문화라는 거대한 감옥에 온통 갇혀있다. 그러면서도 이 사실을 보지 못한다.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267호 / 2014년 10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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