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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도통하는 것

기자명 하림 스님

비가 이틀째 내립니다. 창문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빗물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습니다. 조용한 아침시간에 비 내리는 창문을 보고 빗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워집니다. 요즘 ‘육조단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육조단경’에는 도통(道通)이란 말이 나옵니다.

피가 몸 곳곳에 흘러야
아프지 않고 건강하듯
도통은 정체된 마음을
막힘없이 흘려보내는것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이 문득 떠오릅니다. 선생님께서 장래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도통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는 도통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어른들이 도통을 위해 참선하고 기도한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서 그랬나 봅니다. 아무튼 도통을 하면 뭔가 이루어지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분위기였고 공부를 마친다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곤 10여 년을 잊고 지내다가 도통이란 말을 ‘육조단경’에서 만났습니다.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청화 스님은 도통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도는 모름지기 통하여 흘러야 하나니, 어찌 도리어 정체할 것인가? 마음이 머물러 있지 않으면 바로 통하여 흐르는 것이요, 머물러 있으면 바로 속박이 되는 것이니라.”

우리 몸은 피가 잘 돌아야 하는데 어느 한 곳이 막히면 그 곳은 상하게 됩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마음들을 흘러가게 놓아두지 않으면 그곳에서 정체되고 굳어져서 흐름을 막습니다. 저도 가끔 불편한 마음들을 만납니다. 혹 지인들 가운데 누군가가 어느 한 사람과 충돌이 생기거나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잘 참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런 관계를 바꾸려 하고 해결해 보려고 고민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 번 시도해도 성공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알려주면 그러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다시 관계 속으로 돌아가면 그대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남의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런 문제와 맞닿으면 제가 더 괴롭습니다. 묘안을 짜 보겠다고 밤사이 고민을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보면 정작 그들은 별로 괴로운 표정이 아닙니다. 너무 신기합니다. 사실 그들은 고민을 표현함으로써 스스로 마음을 풀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모습을 보고 들은 저만 밤새워 고민을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그 고통에서 벗어났는데 저는 그 불편함을 끌어안고 흘려보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제가 참 바보 같다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그 뒤로 불편함을 호소하는 말씀을 들을 때면 ‘이 분이 자기의 스트레스를 나를 통해 녹여내고 있구나’하고 흘려 보냅니다. 또 ‘이렇게 들어주고 공감하고 바라봐 주는 것이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고 ‘그가 후련해 하는 것처럼 나도 잊어야 하는 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깨달음 이후에는 저도 걱정이 많이 줄었습니다. 예전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가끔 머리에 열이 나고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 방에 돌아와서는 금방 잊고 잠을 푹 잘 수 있습니다.

이것이 도통하는 길이 아닌지 모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아무리 큰 기쁨과 슬픔마저도 어차피 사라지게 되고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부처님의 경전이고 그런 것에 머무르지 않도록 습관을 바꾸는 것이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을 도인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을 살피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들어준다면 당신은 우리가 애타게 찾는 관세음보살님일 것입니다. 

하림 스님 whyharim@hanmail.net

[1267호 / 2014년 10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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