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심사정, ‘철괴도’
41. 심사정, ‘철괴도’
  • 조정육
  • 승인 2014.11.03 13: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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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먼저 앞장서서 본보기가 돼라”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사십이장경

수려하고 출중한 외모였던 청년
제자가 육신 불태우자 혼만 남아
굶어죽은 거지에 깃들어 ‘철괴’돼
8신선 가운데 하나로 사랑 받아

중요한 것은 외모가 아닌 행동
솔선수범한다면 따라오게 마련


아들이 제대를 몇 달 앞두고 갑자기 3사관학교에 지원하겠다고 했다.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궁금했지만 자세히 묻지 않고 아들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아들이 군인이 되기를 원했다. 불투명한 미래와 취직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나라를 위해 이바지하며 사는 인생도 의미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들이 상병을 달 때쯤이었다. 직업군인이 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때를 잘못 골랐을까. 씨알도 안 먹혔다. 한참 군 생활에 지치고 사회에 복귀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할 때였다. 그런 아들이 병장을 달더니 마음을 바꿔 3사관학교에 입학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이유를 아들이 쓴 입학지원동기서를 읽어보고서야 알았다.

아들은 전방부대에 배치 받아 GOP에 투입됐다. 대대장 통신병으로 매일 새벽에 철책을 순찰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당시 연대장이 대단히 훌륭한 분이었다. 연대장은 병사들과 간부들을 격려하기 위해 매일같이 새벽에 순찰을 올라왔다. 경사가 심한 철책선에도 거리낌 없이 순찰을 돌며 고생하는 병사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었고 임무 수행이 뛰어난 병력에겐 포상을 주며 격려했다. 그렇게 매일 서너 시간씩 순찰을 돈 후 연대로 복귀하여 다시 업무를 보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 보이지 않았다. 아들 얘기로는 연대장이 초병보다 더 고생이 심한 것 같았다. 이렇게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연대장이었으니 그 분이 연대를 맡고 있을 동안에는 사건 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아들의 결심이 굳어지게 된 결정적인 순간은 연대장이 부대를 떠날 때였다. 연대장은 철책에 근무한 병사들을 직접 찾아와 한 명 한 명 악수하고 포옹해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대장이 마지막으로 명령하겠다. 전역하는 그 날까지 모두 몸 건강히 다치지 않고 전역하길 바란다.”

인연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22사단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아 얼마 전까지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곳이다. 임병장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고 A모 일병이 자살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안타까움을 샀다. 아들 얘기를 들어봐도 군대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곳이었다. 아들은 휴가만 나오면 군대가 썩었다고 욕했다. 절대로 군인이 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아들의 마음이 확 바뀌었다. 탁월한 지도자 덕분이다. 아들은 연대장의 멋진 행동을 본 후 자신도 그 분처럼 자기 업무에 충실하면서도 부하들을 아껴주는 멋진 지휘관이 되고 싶다고 했다.

부처님께서 한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한 사문이 대답하였다.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그대는 아직 도를 모른다.”다시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밥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그대도 아직 도를 모른다.”

다시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한 호흡과 한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그대야말로 도를 바르게 아는 것이다.”

‘사십이장경’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람인가. 귀신인가. 괴이하게 생긴 사람이 배를 드러낸 채 파도를 건넌다. 다리가 불편한지 왼손으로는 목발을 짚고 있고 오른손에는 이상한 병을 들고 있다. 몹시 빈곤한 듯 옷은 겨우 몸을 가렸을 뿐 허름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손에 든 병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연기 속에는 이상한 형체가 그려져 있다.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1707~1769)이 그린 ‘철괴도(鐵拐圖)’는 인물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그림이다.

▲ 심사정, ‘철괴도’, 비단에 연한 색, 29.7×20cm,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에는 신선도(神仙圖)가 많이 그려졌다. 신선은 도교(道敎)의 예배대상으로 불로불사(不老不死)하는 신적인 존재다. 특별히 도교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도 수복(壽福)을 주고 액을 막을 수 있다는 신선의 존상을 그려 축수화(祝壽畵)나 세화(歲畵)로 주고받았다. 그 중에서도 팔선(八仙)은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아 단독상 혹은 군선도로 많이 그려졌다. 팔선은 이철괴(李鐵拐), 종리권(鍾離權), 장과로(張果老), 하선고(何仙姑), 남채화(藍采和), 여동빈(呂洞賓), 한상자(韓湘子), 조국구(曹國舅) 등 여덟 명의 신선을 일컫는다. 심사정이 그린 그림은 팔선의 한 명인 이철괴다.

이철괴는 철괴리(鐵拐李) 또는 철괴(鐵拐)로 불린다. 신선들은 여동빈이나 종리권처럼 역사 속에 실존했던 사람도 있는 반면 이철괴처럼 실존하지 않은 전설상의 인물도 있다. 실존하지 않은 만큼 이철괴에 대해서는 기록마다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의 형상을 그린 도상적인 특징은 아주 개성이 강해 한번 보면 잊지 못할 정도다. 그는 팔선 가운데서 가장 못생기고 추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그가 이런 모습을 하게 된 계기는 철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배경과도 연관이 깊다.

그는 원래 인물이 수려하고 외모가 출중한 청년이었다. 어느 날 그는 노자(老子)를 따라 수행하기 위해 화산(華山)으로 떠났다. 노자는 춘추시대의 사상가였는데 시대가 흐르면서 도교에서 최고의 지위를 지닌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 신격화되었다. 철괴는 떠나면서 그의 제자에게 만약 자신의 혼이 7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몸을 불태우라고 명한다. 몸만 남기고 넋이 빠져나가 신선이 되는 것을 시해(尸解)라고 한다. 시해는 도가의 대표적인 신선술이다. 문제는 이때 발생했다. 철괴의 제자가 스승의 혼이 빠져 나간 몸을 지키고 있는데 노모(老母)가 병이 깊어 위독하다는 전갈이 왔다. 마음이 다급해진 제자는 7일 정오가 되어도 스승의 혼이 돌아오지 않자 스승의 몸을 태우고 집으로 가버렸다.

철괴의 혼이 집에 돌아왔을 때는 자신의 몸도 제자도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혼만 남은 철괴는 이리저리 몸을 찾아 돌아다니다 숲 속에서 굶어 죽은 거지의 몸을 발견했다. 아쉽지만 대안이 없어 거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누더기를 걸치고 다리를 절룩거리는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다시 혼을 빼내 거지의 몸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그때 철괴의 호로에서 빛이 나와 노자를 비추었다. 호로(葫蘆)는 신선들이 허리나 어깨 혹은 손에 들고 다니는 호리병이다. 나쁜 액을 막아주는 액맥이로 신선의 상징이다. 호로 안에는 불로장생할 수 있는 선약(仙藥)이 담겨 있다. 철괴의 행동을 본 노자가 한마디 했다.

“도행(道行)은 겉모습에 있지 않느니라.”

진정한 도는 외모가 아니라 내면에 있다는 것. 올바른 행동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었다. 이 말을 하면서 노자는 철괴에게 머리에 두르는 금테와 철지팡이인 철괴(鐵拐)를 주었다. 그가 철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내력이다. 스승의 가르침으로 깨달음을 얻은 철괴는 열심히 수련하여 혼백을 분리시키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심사정의 ‘철괴도’에서 호로 연기 속에 흐릿하게 보이는 것은 사람의 혼백이다. 철괴가 혐오스러운 외모로도 사랑받는 신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신선의 본분을 잊지 않아서다. 호로 속의 단약을 사람들에게 주는 능력 있는 신선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군인은 되지 않겠다던 아들이 군인의 길을 선택한 것은 지도자의 솔선수범 때문이었다. 솔선수범(率先垂範)의 사전적 의미는 ‘남보다 앞장서서 행동하여 몸소 다른 사람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아들 부대의 연대장은 사람의 도리를 직접 실천해보였다. 글이 짧은 아들이 ‘진짜 군인답고 멋있는 지휘관’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감동을 주었다. 감동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역시 사람이 중요하다. 그래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윗사람이 예의를 좋아하면 백성들을 이끌기 쉬워진다.” ‘논어’에 나온 말이다.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이 솔선수범하면 보통 사람들은 그`들을 따라서 행동한다는 뜻이다.

사람의 목숨은 호흡지간에 있다. 호흡하는 동안에만 살아 있다. 잠깐 동안이라도 호흡을 멈추면 목숨이 끊어진다. 불교 수행법으로 여러 가지 호흡명상이 발전하게 된 것도 그만큼 호흡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흡만 한다 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도리를 실천하며 살아야 호흡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잘 호흡하고 있는가. 숨을 들이 쉴 때와 내쉴 때 잘 살고 있는가. 잠깐 멈추어 호흡을 살펴볼 일이다.

아들은 8월 5일 무사히 전역하고 3사관학교에 합격했다. 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다. 내년 1월8일 입교 해 2년 동안 교육을 받은 후 장교로 임관되면 직업군인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아들도 그 연대장처럼 누군가의 등불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1268호 / 2014년 11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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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버지 2014-11-07 07:01:56
교훈적인 글입니다. 내 아들에게도 읽어보라고 연락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