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작자미상, ‘여래정례’
42. 작자미상, ‘여래정례’
  • 조정육
  • 승인 2014.11.10 16: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햇볕, 바람, 물 없이 살 수 없으니, 부모의 은혜가 이와 같다”

“세존께서는 삼계의 큰 스승이요, 사생의 아버지로서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성인이신데 어찌 하찮은 뼈 무덤에 절을 하십니까?” 부모은중경

뼈 무덤에 절 하시는 부처님
놀라서 이유를 묻는 아난에게
“육도중생이 내 부모·형제라”

서말 서되 피 흘려 자식 낳고
여덟 섬 네 말 젖 먹여 키워
부모 은혜는 햇볕, 바람 같아


▲ 작자미상, ‘여래정례(如來頂禮)’, 1796년, 종이에 먹, 21.7×15.7cm, 용주사본.

우리는 살아가면서 대가 없이 받는 은혜에 대해 무관심하다. 감사할 줄 모르고 당연하게 여긴다. 햇볕이 그렇고 공기가 그렇고 물이 그렇다. 공짜라서 더욱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까짓 것 쯤 없어서 문제될 게 있느냐는 듯 가당찮은 오만에 젖어 산다. 공기가 없으면 단 한 순간도 살지 못하면서 말이다. 햇볕이 없고 물이 없으면 오래지 않아 금새 탈진되면서 말이다. 그만큼 우리의 지견은 허술하고 실점 투성이다.

계측할 수 없는 은혜 중에 부모의 은혜가 있다. 부모의 은혜라니. 여자 친구 은혜라면 모를까 부모의 은혜라니. 무슨 시대착오적인 소리인가. 부모니 은혜니 하는 단어는 그동안 우리가 너무 오래 잊고 살아 어느새 고색창연한 골동품이 되어 버렸다. 주인이 버리고 간 빈 집 대청마루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바스러진 낡은 궤짝 같은 단어다. 오늘은 그 골동품 같은 궤짝의 먼지를 털어내고 수 천 년 동안 집을 지켜 온 부모의 은혜를 짚어보자.

부처님께서 여러 제자와 함께 길을 가다, 길가에 쌓인 뼈 무덤을 보고 절을 하셨다. 이때 제자 아난이 물었다.

“세존께서는 삼계(三界)의 큰 스승이요, 사생(四生)의 아버지로서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성인이신데 어찌 하찮은 뼈 무덤에 절을 하십니까?”

삼계(三界)는 중생이 생사 윤회하는 세 가지 세계인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다. 사생(四生)은 중생이 탄생하는 네 가지 방식으로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이다. 삼계와 사생은 모든 생명들이 윤회하는 곳이다. 부처님이 삼계의 스승이요 사생의 아버지라는 찬탄은 예불문의 첫 구절에도 나온다.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이 말의 뜻은 이렇다. ‘삼계의 모든 중생들을 인도하여 가르치시는 스승이시며 온갖 생명들의 자비하신 부모이시며 우리의 참다운 근본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이 목숨 다해 귀의하며 받드옵니다.’ 그렇게 찬탄 받아 마땅한 귀한 부처님께서 근본도 알 수 없는 뼈를 보고 절을 하신다. 아난이 놀랄 만하다. 이 질문에 대해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네가 나의 제자가 된 지 오래되었는데,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구나. 이 뼈 무더기가 나의 전생에 조상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다. 끝없는 옛적부터 금생에 이르는 동안 육도중생이 나의 부모, 형제, 친척 아님이 없느니라. 모든 이들과 서로서로 인연으로 얽혀 있느니라.”

만약 불교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육도중생이 나의 부모, 형체, 친척 아님이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이 말씀은 단순히 육도중생이 윤회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온 우주에 있는 모든 생명이 본체(本體)의 변화 현상이라는 뜻이다. 바다가 있으면 파도가 일어났다 잦아든다. 파도가 일어난 것이 태어남(生)이라면 잦아들어 사라지는 것은 죽음(死)이다. 파도는 사라져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다로 돌아갔을 뿐이다. 그래서 파도(생명)는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아 불생불멸이다. 불생불멸한 본체는 비로자나불이라 부른다. 진여불성이라고도 부르고 본래면목이라고도 부르고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명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질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부처와 중생이 한 몸이고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불이(不二)법문이다. ‘육도중생이 나의 부모, 형체, 친척 아님이 없다’는 뜻이다. 뼈 무더기가 나의 조상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니 바로 나와 한 몸이라는 뜻이다. 이런 가르침을 문자로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정말 그렇구나,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와야 진짜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을 공부해야 하는가.

경전공부는 등산에 비유할 수 있다. 산에 오르는 사람은 정상에 도달할 때까지 하염없이 지루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면 꼭대기에 도달할 수 없다. 육조 혜능 대사처럼 근기가 높은 사람이라면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뜻의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 한 구절만 들어도 바로 깨닫는 바가 있어 나무지게를 내던지고 선지식을 찾아 나서겠지만 둔한 사람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20여년을 죽자 사자 공부해도 알까 말까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공부라면 그 문제가 풀릴 때까지 가야 한다.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밀어 붙여야 한다. 그곳이 정상이다. 중간에 어떤 경계가 나타나든 그것은 과정일 뿐이지 정상이 아니다.

깨달음은 순간이다.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디면 정상이다. 대부분은 그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돌아선다. 안타까운 일이다. 깨달음을 얻고 나면 비로소 보인다. 깨닫기 전까지는 눈을 뜨고도 보이지 않던 진리가 깨닫고 나면 보이는 대로 진리다.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던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고 몇 년을 궁리해도 이해되지 않던 경전 구절이 단박에 이해된다. 이런 경지를 문리가 트였다고도 하고 한 소식 했다고도 말한다. 한 소식했을 때의 후련함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 같다는 소리는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깨닫고 나면 이해하게 된다. 예전 선사들이 돌을 보고 깨닫고 바람소리에 깨닫고 울타리를 보고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나서 왜 덩실덩실 춤을 추며 환희롭다 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정상에 도달했을 때의 만족감은 물질을 소유함에서 오는 차원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남들 위에 군림했다는 오만함과는 비교불가다. 일종의 시원함이다. 막힌 눈이 뚫린 듯한 시원함. 주변 산봉우리는 물론 산 너머 세계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걸림 없는 시원함이다. 그 경지에 이르면 모든 이들과 서로서로 인연으로 얽혀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단박에 이해된다.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행(行)이 생겨나고, 행을 조건으로 식(識)이 생겨나고, 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생을 조건으로 노사(老死)가 생겨난다’는 12인연(因緣)이 가감 없이 그대로 내 것이 된다.

부처님이 뼈 무덤을 보고 절을 한 것은 모든 생명이 본체의 변화 현상이라는 법문을 들려주신 것이다. 그러니 그 뼈가 나와 무관한 사람의 뼈가 아니다. 아난이 그에 대해 질문한 것은 그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존자는 부처님 곁에서 법문을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지만 그 법문을 자기 것으로 만든 수행력이 부족해 부처님 입멸 시까지 아라한과를 얻지 못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지하여 정념으로 밀어붙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가섭존자가 일부러 그의 분심을 자극하기 위해 칠엽굴에서의 일차 결집에 참여시키지 않은 것을 계기로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된다.

부처님이 뼈 무덤을 보고 절한 내용은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나온다. ‘부모은중경’은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라고도 하는데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높고 깊은가를 설한 경전이다. 당(唐)대 중국(中國)에서 만든 위경(僞經)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효(孝)를 중요하게 여긴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조선시대에는 그 판본이 60여 가지가 넘을 정도로 왕실과 사찰에서 널리 간행 유포되었다.

정조는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용주사(龍珠寺)를 창건하고 부모의 은혜를 잊기 않기 위한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을 제작해 보관하게 했다. 그 중 ‘여래정례(如來頂禮)’는 ‘불설대보부모은중경’에 들어있는 장면으로 김홍도가 1796년(52세) 5월에 정조의 명을 받아 그 삽도(揷圖)를 맡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중앙에서 부처님이 뼈를 향해 머리를 숙여 절을 한다. 부처님의 머리 주변에는 불꽃같은 화염(火焰) 광배(光背)를 그린 후 여러 줄의 선을 그어 빛이 퍼져 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부처님 주변에는 여러 명의 제자들과 보살이 합장한 채 서 있다. 제자들의 머리 위에도 각각 둥그런 원을 그려 두광(頭光)을 표현했다. 제자들 뒤로 뭉게구름이 흐른다. 구름은 이곳이 상서로운 장소임을 상징한다. 사천왕이 구름을 경계로 하늘 위에서 호위하듯 지켜보고 있다. 부처님의 뒤쪽 제자들은 정면상을 그린 반면 앞쪽 제자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을 그려 생동감을 더했다. 김홍도는 수행자의 뒷모습을 그린 표현법을 더욱 발전시켜 말년에 ‘염불서승(念佛西昇)’같은 명작을 완성했다.

부처님의 말씀이 계속된다.

“아난아. 네가 뼈 무더기를 둘로 나눠 보아라. 남자의 뼈는 희고 무거운 반면, 여자의 뼈는 검고 가벼울 것이다.”

아난이 말했다.

“부처님. 남자는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 큰 옷을 입고 띠를 두르고 신을 신기 때문에 남자인 줄을 알고, 여자는 화장을 하고 향수를 뿌려 여인의 몸인 줄 알지만, 죽은 뒤의 백골을 보고 어떻게 남자인지 여자인 지 구별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남자라면 세상에 있을 때 절에 가서 법문도 듣고, 경전도 외우며, 삼보에 예배하기 때문에 그 뼈는 희고 무거울 것이다. 그런데 여자는 세상에 살면서 자식을 낳을 때 서말 서되나 되는 많은 피를 흘리고, 여덟 섬 네 말이나 되는 흰 젖을 아기에게 먹인다. 이렇게 몸의 기운을 다 뽑아 버리게 되니, 죽어서 여자의 뼈는 남자의 뼈보다 검고 가벼우니라.”

아난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마치 칼로 가슴을 베인 듯 눈물 흘리며 슬피 울었다. 아난이 눈물을 멈추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어머니의 은혜를 어떻게 하면 갚을 수 있습니까?”

‘부모은중경’은 이에 대한 대답을 기록한 경전이다. 여인이 10개월 동안 자식을 잉태한 수고로움과 자식을 낳아 기른 열 가지 은혜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자식을 낳을 때 서말 서되나 되는 피를 흘리고, 여덟 섬 네 말이나 되는 흰 젖을 먹인 수고로움 때문에 죽어서 남자의 뼈보다 검고 가벼운 이유가 기록되어 있다. 자식으로 태어난 자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봐야 할 필독서다. 읽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부모의 은혜가 여전히 살아있는 현재 진행형인 것을. 부모의 은혜가 햇볕 같고 바람 같고 물 같다는 것을. 결코 빈 집 마루에서 바스라진 퇴락한 골동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1269호 / 2014년 11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