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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산골 집에서의 하루

기자명 하림 스님

방바닥에 배를 붙이고 엎드려 있습니다. 군불을 땐 시골집의 아랫목에서 배를 바닥에 데고 있으니 온몸이 나른해 지고 어린 시절 평화롭던 느낌이 떠오릅니다. 왠지 고향에 온 듯합니다. 손에는 연필이 들려있고 바닥에는 어느 노트에서 찢어낸 3장의 종이가 하얗게 깔려 있습니다. 글을 쓸 종이가 없어서 이 집 주인의 노트를 찢어 밀린 숙제를 하고 있습니다.

익숙한 도시서 벗어나
산골집에서 보낸 하루
자연 의지해 사는 주인
행복의 참 뜻 알려줘

고개를 돌려보니 장판은 얇고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고, 벽지는 빛이 바래 원래의 색을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방문이 닫힌 집안에서 군불을 때니 눈에서는 눈물이, 목에는 기침이 납니다. 그래도 평온한 분위기가 마음에 안정을 줍니다. 오랜 만에 쉬고 싶은 마음으로 찾아온 강원도 산골의 외딴집입니다. 이틀 밤을 보내려고 합니다. 식어가는 방에 군불을 때 준다는 주인의 말이 베토벤의 음악소리보다 감미롭게 들립니다. 집이 반듯하고 깨끗해야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이 왜 이렇게 편한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의 편안함과 휴식을 찾는 우리에게 이런 길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행복한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러나 너무 한곳으로 몰리다보니 서로 경쟁하게 되고, 혹시 나의 기회를 빼앗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로가 서로에게 위험한 존재들이 되어갑니다.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면 서로간의 경쟁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산골에는 경쟁이 없어 보입니다. 집도 많지 않아 집과 집의 거리가 소리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에 있습니다. 간혹 그 중간에 집들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빈집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그립고 반갑습니다.

멀리서 사람 모습을 보면 손을 마구 흔들어 아는 체를 하고 싶어 합니다. 혹여 그리운 이가 찾아온 것은 아닌가싶고 설령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말벗이라도 되어줄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산골에 와야 사람으로 존중받게 될 줄 누가 알았습니까.

이 산골 집은 홀로 사는 아저씨 한분이 계시는 곳입니다. 이 분은 계절마다 산에서 수확한 것을 우리 절에 보내줍니다. 옥수수 철이면 옥수수를, 배추철이면 배추를, 고추를 따면 고추를 보내줍니다. 옥수수가 오면 여름이 온 걸 알게 되고, 배추가 오면 가을이 온줄 알게 됩니다.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알림이인 셈입니다.

오늘은 이웃에 사는 동생분과 함께 콩 타작을 하는 날입니다. 손길이 더 분주하고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오랜만에 탈곡기도 볼 수 있었습니다. 형제분이 강원도 산골의 밭을 계절의 흐름에 따라 손으로 고랑을 파고 파종을 하고 수확을 합니다. 또 틈이 날 때에는 산을 오릅니다. 그저 이분들의 삶은 산에서 주어지는 것들에 의지합니다.

산과 밭에서 의식주의 모든 것을 얻어냅니다. 도시화된 삶으로 잃어버린 인간의 모습을 여기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사는 모습이 여러 생동안 내가 살아온 본래 삶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군불 땐 방에 엎드려 연필을 잡고 글을 써내려가는 모습에서 나의 고향을 만납니다.

왠지 먼 길을 돌아 이곳에 온 것 같아 더 애틋합니다. 지금 심정은 이곳서 오랫동안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야 합니다. 고향도 좋지만 지금의 인연도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있는 곳을 산골로 모두 옮기기 전에는 그들과 함께 하는 곳을 고향처럼 편안한 곳으로 가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랜 만에 더욱 편안함을 느낍니다.

하림 스님 whyharim@hanmail.net

[1269호 / 2014년 11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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