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1. 설법의 배경관

사실과 진리 어느 것 중시하냐에 내용 달라져

▲ 그림=최병용 화백

종교의 유형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계시에 의해 이루어진 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각(覺)에 의해 이루어진 종교이다. 계시의 종교는 신이나 절대자가 자신의 뜻을 세상에 펼치기 위해 특정한 인간에게 계시를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기독교나 이슬람교가 대표적이다. 이에 반해 각의 종교는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지혜를 계발하고 능력을 연마하여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발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불교나 유교가 대표적이다.

불교는 깨달음에 기반한 종교
부처님의 행적이 교리의 일부

초기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
실제사건 중심 설득력 높아

대승은 초월적 진리 인격화
비현실적이면서 진리 자체

계시종교의 중심이 신이라면 각의 종교의 중심은 인간이다. 불교의 경우 교조인 석가모니 부처님은 신분만 달랐을 뿐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다. 고향이 있었고 부모형제가 있었으며 처자권속이 있었다. 또한 몸을 지탱하기 위해 밥을 먹어야 했고 피곤하면 잠을 자야 했다. 아무리 부처님이라도 역사 속에서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었고 사람과 사건 속에서 자신의 뜻을 이룰 수밖에 없었던 성자였다. 따라서 그 분의 가르침 역시 세상을 초월해 설해질 수 없었다. 인도라는 구체적 지형 속에서 실존했던 제자들과 신도들을 대상으로 가르침이 설해졌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두고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는 이해를 달리한다.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역사적 사실과 함께 실제 사건들 속에서 설해진다. 초기경전에는 실제로 존재했던 지역이 등장하고 부처님과 함께 생존했던 다양한 인물들도 출현한다. 마가다국, 코살라국. 밧지국 등 부처님 재세시의 여러 나라들과 아난, 가섭 사리불 등 실제 제자들과 빈비사라왕, 파사익왕, 수닷타 장자, 시리마 기녀 같은 재가신도가 등장한다. 여기 이런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런 사건들 속에서 이런 가르침이 설해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초기경전의 서술방식이다. 무엇보다 친근감이 가는 것은 살고 부대끼는 실제의 삶이 연출되는 속에서 법이 설해졌다는 점이다. 초기경전의 이런 서술방식은 교리를 실감나게 받아들이게 하는 장점이 있다. 부처님께서 전하고자 했던 진리가 역사적 사실 속에서 구현되었음을 증명하는데 아무런 손색이 없다. 사람들은 역사적 실제사건을 통한 가르침에 더욱 매료된다. 실제적 상황 속에서 전개되는 교리는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이에 반해 대승불교는 초기불교 교리보다 훨씬 방대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대승불교에서 부처님은 인간적인 모습이 아니다. 초역사적이고 초인간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그래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은 부처님만이 아니다. 대승경전에 등장하는 부처님의 제자들도 부처님처럼 똑같이 초역사적이고 초인간적인 면모를 나타낸다.

대승불교에서의 제자들과 신도들은 부처님이 살아계셨던 당시의 제자들이 아니다. 혹 경전에 사리불이나 수보리 그리고 아난존자와 같이 실재했던 제자들의 이름이 나오고 있지만 이들은 대승불교의 주역들이라 할 수 없다. 대승불교의 주역들은 문수, 보현, 관음과 같은 보살들이다. 분명한 것은 대승경전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보살들이 실존인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마거사나 승만부인 또는 ‘화엄경’의 선재동자와 오십삼 선지식들도 모두 대승불교의 교리를 이끌어 내기위해 만든 가공의 인물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대승불교의 인물들이 결코 허황되거나 무의미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들은 모두 부처님의 성스러운 경계인 깨달음 속에서 출현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신앙의 대상이 되고 귀의의 대상이 된다. 이들이 비록 가공의 인물이기는하지만 진리와 깨달음의 성품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실존인물보다 더욱 신뢰할 것을 가르친다.

대승불교의 이러한 분위기는 설법장소에 있어서도 특이한 양상을 보인다. 대승불교의 설법장소는 중생들이 사는 이 세계보다는 부처님이 깨달아 누리시는 자내증(自內證)의 경지나 삼매를 택하는 수가 많다. 특히 차원이 높은 경전일수록 설법장소는 중생계가 아닌 부처님이 누리고 있는 경지속에서 이루어진다. ‘화엄경’을 예로 든다면 법을 설하는 부처님과 법을 경청하는 보살들과 법을 설하는 장소가 모두 부처님의 깨달음 안에서 펼쳐지고 있다. 실제로는 부처님 옆에 한 사람도 함께 하고 있지 않은데 부처님 경지에서는 측량할 수 없는 법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설법배경은 생각하기에 따라 너무 추상적일 수 있고 비합리적일 수 있다.

과거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편찬했던 수행자들은 대승불교의 설법방식과 등장인물들을 선정하는데 있어 많은 고민이 뒤따랐을 것이다. 대승불교의 가르침을 부처님 재세 당시 십대제자나 비구들을 등장시켜 구성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천상의 신이나 지상의 중생들을 등장시켜 구성할 수는 더더욱 없다. 대승불교의 깨달음을 세상에 발현시키는데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은 깨달음에 존재하는 갖가지 공덕들을 수행자로 만들어 대승불교의 교리를 묻고 답하는 형식을 찾아냈던 것이다. 이는 대승불교 수행자들의 탁월한 안목과 지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대승불교가 초기불교의 설법배경에 비해 사실감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불교의 교리에 능숙하지 않은 불자나 일반인들로서는 대승불교의 이런 상황들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대승경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그 정체를 알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면에서 초기불교보다 대승불교가 법을 전하는데 있어 훨씬 어려움이 따른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진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사람들을 설득시키는데 매우 유리하다. 그러나 사람의 차원을 벗어난 초월적 진리를 인격화시켜 사람들을 설득하기란 난감한 면이 있다.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대승불교의 경전에 나오는 인물들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신화적 존재로 여기기도 하고 힌두신의 변용으로 여기기도 한다. 물론 사실적 근거가 전혀 없는 인물과 사건들을 왜 믿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초기경전과 대승불교의 설법배경을 잘 파악하는 일은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다. 불교는 분명 인간이 세운 종교이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성취한 부처님의 깨달음은 인간의 역사와 국토를 초월한다. 부처님은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두 가지 속성을 지닌 존재이다. 그렇다면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설법배경도 다 맞는 말씀은 아닐까 싶다.

이제열 법림법회 법사  yoomalee@hanmail.net
 

[1269호 / 2014년 11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