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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꼬리뼈에 곤장 때리기

금강경야부송(金剛經冶父頌)을 쓴 야부 스님은 중국 송나라 때의 스님이다. 당나라의 뒤를 이은 시대이다. ‘야보’로 읽는견해도 있지만 관용발음을 존중해서 야부 스님으로 부르기도 한다.

모든 법 공하단 금강경 가르침
집착이 공함 일깨우는데 있어
세상 부질없다는 뜻도 있지만
내면의 색안경 부질없단 의미도

중급 관리로 있었는데 참선에 몰두하느라고 맡은 바 업무를 태만하게 하는 바람에 곤장을 맞게 되었다. 치는 사람이 잘 쳤는지 맞는 사람이 잘 맞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분은 곤장을 맞다가 온몸의 전생수행세포가 확하고 깨어나 버렸다. 그리고는 관리직을 과감하게 사표 내고 출가대장부의 길을 걸어서 큰스님이 되었다.

야(冶)는 ‘인격도야’할 때의 야인데 벌겋게 달구어진 쇳덩어리를 대장장이가 찬 물에 ‘파시시식’하고 밀어넣어서 꺼내고 다시 두드려서 호미도 만들고 명검도 만드는데 달구어지고 찬물에 들어가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쇳덩어리에 깊숙이 박혀있던 불순물들이 제거된다.

모든 스승들이 제자를 훈련시키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후려치고 물에 담구는 단련과정을 진행시키는데 제자도 묵묵하게 끈기와 인내로 견디고 견디었을 때 마침내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조우가 이루어지게 된다.

몇 년 전에 어느 후배는 양주에 있는 불곡산(佛谷山) 등반을 갔다가 비 뿌리기 시작하는 저녁 어스름에 익숙하다고 여겼던 길을 잃었다. 이리저리 길을 찾느라고 움직이다가 바위에서 미끌어지면서 1m 남짓 되는 아래쪽의 바위로 떨어졌단다. 꼬리뼈 쪽에 아찌일한 느낌이 있었는데 진한 통증이 가시고 나서 일어나보니 평소에 틀어져있던 꼬리뼈가 제자리로 쑥 들어가서 양 다리와 뻐근했던 허리가 가뿐해졌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야부 스님 생각을 했었다. 꼬리뼈와 곤장은 미묘한 함수관계가 틀림없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금강경에서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의 가르침을 듣고 놀라지도 않고 벌벌 떨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매우 희유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若復有人 得聞是經 不驚不怖不畏 當知是人 甚爲希有)”고 한 구절에 야부 스님은 다음과 같이 게송을 매달았다.

毛呑巨海水 (모탄거해수)
芥子納須彌 (개자납수미)
碧漢一輪滿 (벽한일륜만)
淸光六合輝 (청광육합휘)
踏得故鄕田地穩 (답득고향전지온)
更無南北與東西 (갱무남북여동서)

한 터럭으로 큰 바닷물을 들이마시고 / 개자씨 속에 수미산을 집어넣는구나 / 푸른 하늘에 한 수레바퀴 가득하니 / 맑은 빛이 육합 우주허공을 비추누나 / 편안하게 고향땅을 밟고 보니 / 이제는 남북도 따로 없고 동서도 없어졌네.

모든 법이 공하다는 금강경의 가르침은 기실 우리들의 집착덩어리의 꼬리뼈에 곤장을 내리쳐서 그 집착이 공하다는 것을 일깨우는데 방점이 찍혀있다. 세상이 부질없다는 뜻도 있지만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갖가지 헤아릴 수 없는 누구나 하나씩은 쓰고 있는 색안경이 부질없다는 말이다.

꼬리뼈에 곤장을 제대로 맞으면 눈에 불이 번쩍거리면서 세상이 좀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맞을 자세가 경건하게 갖추어지지 않으면 꼬리뼈가 부러지게 맞아도 그저 아픈 통증으로 느껴질 뿐이다.

“어떤 때는 술에 취해서 사람들에게 욕지거리를 퍼붓다가 어떤 때는 법당에 올라가서 경건하게 향 사르고 삼배를 올린다네”하는 야부송의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하나 스치듯 지나갔다.

불곡산 후배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 차 한 잔 나누다 보면 저 책 속에서 잠자고 있는 야부 스님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야부 스님을 만날 수도 있으리라.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69호 / 2014년 11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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