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작자미상, ‘문자도’
43. 작자미상, ‘문자도’
  • 조정육
  • 승인 2014.11.17 14: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모 은혜 받기는 쉬워도 갚기는 어려워라”

“설령 어떤 사람이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메고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메고 살갗이 닳아 뼈가 드러나고 다시 골수가 보이게 되도록 수미산을 수천 번 돌더라도 부모님의 깊은 은혜에 보답할 수 없다.” 부모은중경

자신 죽이려는 아버지에게
효도하여 왕까지 오른 순

왕상은 병든 계모를 위해
얼어붙은 강에서 곡괭이질

70세 노래자, 부모 앞에서
색동옷 입고 재롱 떨기도


학교 다닐 때 배운 ‘어머니 마음’이란 가곡이 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손발이 다 닿도록 고생 하시네/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하리오/어머님의 희생은 한이 없어라.’

1절도 감동적이지만 2절은 더 감동적이다.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으로 시작된다. 오로지 희생으로 점철된 어머니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이 곡은 양주동의 시에 이흥렬이 곡을 붙였다. 도대체 양주동은 어떻게 이렇게 감동적인 시를 쓸 수 있었을까. 내내 궁금했는데 ‘부모은중경’에서 그 출처를 찾았다. ‘부모은중경’은 부처님이 부모님의 은혜에 대해 설법하신 내용이다. 특히 어머니의 은혜를 어떻게 하면 갚을 수 있느냐는 아난의 질문에 부처님은 어머니가 자식을 잉태한 후 10개월 동안의 수고로움을 들려주신다. 그리고 계속해서 자식을 낳아 기르는 열 가지 은혜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어머니가 언제나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오롯이 자식을 품에 안고 지켜주는 은혜이다. 둘째, 임산부는 아기를 낳기 전, 진통이 오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하고 아기를 낳는다. 그만큼 산통을 이기면서까지 자식을 낳는 은혜이다. 셋째, 아기를 낳은 이후부터 줄곧 자식이 병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근심을 잊지 않는 은혜이다. 넷째, 쓴 것은 자신이 삼키고, 맛있고 단 것만을 뱉어내어 자식에게 먹이는 은혜이다. 다섯째, 아기가 누워 있는 자리가 젖어 있는지 살피고, 자리가 젖었거든 마른자리로 옮기어 자식에게 병이 생기지 않도록 보살피는 은혜이다. 여섯째, 젖을 먹여 기르는 은혜이다. 일곱째, 자신의 손발이 부르트고 닳도록 자식을 깨끗이 씻어주는 은혜이다. 여덟째, 자식이 장성해 먼 길을 떠났을 때, 늘 걱정하고 염려하는 은혜이다. 아홉째, 자식이 나쁜 짓을 했을 때, 자식을 위해 나쁜 일까지 감당하는 은혜이다. 열째, 당신이 이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자식을 연민히 여기고 사랑해주는 은혜이다.

이 열 가지를 시로 지은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곡이다. 우리가 이 곡을 들으면서 숙연해지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을 뼛속 깊이 느끼며 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당연하게 여겼던 어머니의 마음이 나이 들어갈수록 대단하게 느껴진다. 과연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감탄과 감사함이 절로 우러난다. 그러나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이 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자식들을 사랑하기에 바빠 위를 쳐다볼 새도 없이 무심하게 산다. 불효가 따로 없다. 우리가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되갚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하지만 노력해야 하는 이유. 은혜를 입었으면 감사할 줄 아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충(忠)과 효(孝)는 국가를 지탱하는 사상적 기둥이었다. 나라에서는 충과 효의 이념을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시키고자 시각자료를 제작 배포했다. 왕실과 사대부가에서는 왕세자와 후손 교육을 위해 이런 시각자료를 활용했다. 대표적인 시각자료로는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를 들 수 있다. 삼강(三綱)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이다. 임금과 신하, 어버이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삼강행실도는 충(忠), 효(孝), 열(烈)에 뛰어난 사람의 행적을 글과 그림으로 묶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오륜(五倫)은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이다. 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 사이에 지켜야 할 기본적인 실천윤리를 뜻한다. 이륜행실도는 오륜 중 장유(長幼)와 붕우(朋友)의 이륜에 뛰어난 행적을 남긴 사람의 기록이다. 역시 글과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륜행실도는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를 합한 후 수정 보완한 책이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오륜으로 모범이 될 만한 인물 150명의 행적을 추려서 적고 그림을 덧붙인 책이다.

▲ 작자미상, ‘문자도8폭병풍도’ 중 ‘효’, 종이에 색, 74.2×42.2cm, 삼성리움미술관.

삼강과 오륜에 담긴 뜻은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로 압축된다. 효제충신예의염치는 유교이념을 대표하는 키워드다. 이 키워드는 오륜행실도 같은 그림으로 상세하게 풀어서 설명되는 경우도 있지만 글자 자체로 표현될 때도 있다. 오늘 살펴보게 될 ‘효(孝)’라는 글자가 대표적이다. ‘효’는 문자다. 문자는 문자인데 그냥 문자가 아니다. 문자에 그림을 삽입한 문자도(文字圖)이다. 효제충신예의염치를 각각 한 글자씩 쓴 ‘문자도8폭병풍도’ 중의 한 폭이다.

그렇다면 효와 관련된 문자도에는 어떤 그림이 들어갈까? 왕상부빙(王祥剖氷), 맹종읍죽(孟宗泣竹), 순제대효(舜帝大孝), 황향선침(黃香扇枕), 육적회귤(陸績懷橘), 노래반의(老萊斑衣), 자로부미(子路負米), 당씨유고(唐氏乳姑), 민손단의(閔損單衣) 등 중국에서 효로 이름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갔다. 그 중 오늘 감상할 ‘효’에는 순제대효, 왕상부빙, 노래반의, 맹종읍죽의 고사(故事)가 선택됐다. 이 네 가지의 이야기를 차례대로 살펴보자.

가장 인기가 많았던 ‘순제대효(舜帝大孝)’는 순임금의 이야기다. ‘효’에는 ‘순(舜)임금이 역산에서 경작하다’는 뜻의 ‘대순경우역산(大舜耕于歷山)’이라는 제목을 적었다. 순임금은 중국 고대의 전설에 나오는 오제(五帝)의 한 사람이다. 오제는 황제(黃帝), 전욱(?頊), 제곡(帝?), 요(堯), 순 등 다섯 명의 제왕을 뜻한다. 특히 요순은 덕으로 백성들을 다스려 태평성대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가운데 ‘오제본기(五帝本紀)’에는 순 임금이 제위에 오르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묘사되어 있다.

순임금은 이름이 중화(重華)로 아버지는 고수(??)다. 고수는 맹인이었는데 순의 어머니가 죽자 다시 아내를 얻어 아들 상(象)을 낳았다. 고수는 후처의 아들 상을 편애하여 항상 순을 죽이려고 했다. 고수는 순이 창고 위에 올라가 일을 하고 있을 때 불을 질러 죽이려 했다. 순은 기지를 발휘하여 삿갓 둘로 불길을 막으면서 내려와 죽음을 면했다. 우물을 파게 한 후 흙으로 우물을 메워버리자 미리 파 놓은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도 순은 끝까지 부모님께 순종하며 자식 된 도리를 잃지 않았고 동생에게는 자애를 베풀었다. 순의 효성스러움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순의 이야기는 요임금의 귀에까지 들렸다. 보위를 물려줄 사람을 찾고 있었던 요임금은 소문을 듣고 그를 시험하기 위해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내 집 안에서의 행동을 살폈다. 아들 아홉을 시켜서는 함께 생활하게 하여 집 밖에서의 행동을 관찰했다. 요임금은 순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게 한 지 20년이 지나자 제위를 물려주었다. 요임금은 어리석은 아들에게 정권을 넘기지 않고 덕행이 뛰어난 순에게 선양(禪讓)을 한 것이다.

‘효’의 ‘대순경우역산’이란 제목을 따라 사선으로 뻗친 글자 획을 살펴보면 두 가지 그림이 연이어 있다. 농부가 코끼리로 쟁기질을 하는 모습과 한 남자가 버드나무가 심어진 물가에 서 있는 장면이다. 이게 순임금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오제본기’에 따르면 ‘순은 장성하여 역산(歷山)에서 농사를 짓고 뇌택(雷澤)에서 물고기를 잡았으며 황하의 물가에서 질그릇을 빚었다’고 적혀있다. 순이 제위에 오르기 전의 이야기다. 순이 역산에서 밭을 갈고 있을 때 그의 효성에 감동한 코끼리가 와서 밭을 갈아주고 새들이 날아와 김을 매주었다고 전해진다. ‘효’의 그림은 이 내용을 도해한 것이다.

순임금은 역산에서 농사를 지을 때 하늘을 향해 목 놓아 울었다고 전해진다. 부모를 원망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가 아니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자신의 허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한때 부모님께 서운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순은 제위에 올라서도 효성이 지극해 결국 간악한 아버지와 이복동생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아무런 빽도 없고 연줄도 없는 순이 제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 비결은 그가 효성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강행실도’ 효자편의 첫 장은 항상 순의 효이야기를 그린 순제대효(舜帝大孝)로 시작된다. 그렇다면 왜 순임금의 효를 대효(大孝)라고 했을까. 대효는 ‘지극한 효도’ 또는 ‘지극한 효자’를 뜻한다. 이에 대해 맹자(孟子)는 ‘맹자’ ‘이루’에서 다음과 같이 풀이해놓았다. “순이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를 극진히 하자 고수가 즐거워하였고, 고수가 즐거워하자 천하가 교화되었다. 고수가 즐거워하여 천하의 부자(父子)된 자들이 안정을 얻었으니 이를 일러 대효라 한다.”

순제대효(舜帝大孝)의 왼쪽에는 왕상부빙(王祥剖氷)의 고사가 그려져 있다. 그림 위에는 ‘왕상이 얼음을 깨뜨리자 고기가 나왔다’는 뜻의 ‘왕상구빙출어(王祥?氷出魚)’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이 그림이 그려진 내력을 살펴보자. 왕상은 진(晋)나라 때 사람으로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자랐다. 왕상은 계모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매일 외양간을 청소하는 등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순임금과 비슷하다. 어느 날 계모가 병들어 눕게 되었는데 추운 겨울에 생선이 먹고 싶다고 했다. 계모가 입덧을 한 것인지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식성이 특이했던 것 같다. 아니면 의붓아들을 괴롭히려는 심사가 컸을 것이다. 왕상은 계모를 위해 강에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 얼음을 깨고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가려는 찰나 잉어 두 마리가 뛰어 올라왔다. 이것이 왕상부빙의 스토리다. 지극한 효성에 자연도 감복했다는 것이 왕상스토리의 핵심이다. 그림 속에서 왕상이 바지를 걷어붙이고 얼음에 곡괭이질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왕상의 효성은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계모가 참새구이가 먹고 싶다고 하자 참새 수십 마리가 스스로 왕상의 집에 날아들었다. 왕상은 계모가 뜰 앞의 벚나무를 지키라고 하자 밤새 나무를 지켰는데 비바람이 치는 날이면 나무를 껴안고 울곤 했다. 항상 왕상을 괴롭히기만 한 계모였다. 그런 계모가 늙어 세상을 뜨자 왕상은 3년 동안 여묘살이를 하며 슬퍼한 나머지 병이 들어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노래자(老萊子)와 관련된 내용으로 순제대효 아래 펼쳐진다. 제목은 ‘내자롱추친측(萊子弄雛親側)’이라 적혀 있는데 ‘노래자가 병아리를 가지고 어버이 곁에서 논다’는 뜻이다. 노래자는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 사람이다. 그는 70세가 되어서도 90세 된 부모님을 위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재롱을 부렸다. 물을 들고 마루에 오를 때면 어린아이처럼 일부러 미끄러져 땅에 누워서는 거짓으로 울기도 하였다. 때로는 부모님 곁에서 병아리를 가지고 장난치며 놀았다. 모두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려는 행동이었다. 노래자의 효도 이야기는 흔히 노래반의(老萊斑衣)라는 제목으로 그려졌다. 색동옷 입은 노래자라는 뜻이다. 어린아이를 상징하는 색동옷과 나이 든 노래자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부모님을 위해서라면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마다하지 않은 노래자의 효성이 크게 부각된다. 이 그림에서는 노래반의 대신 병아리를 가지고 노는 내용을 부각시켰는데 구체적인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가장 아랫단에 적힌 이야기는 맹종읍죽(孟宗泣竹)이다. 맹종이 대나무 숲에서 운다는 뜻이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맹종은 삼국시대 오(吳)나라 사람으로 그의 효성도 위의 세 사람 못지않게 지극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그의 어머니가 늙고 병이 들어 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병든 어머니가 갑자기 죽순이 먹고 싶다고 했다. 죽순은 4월이 넘어야 채취할 수 있는 나물이다. 지금이야 냉동식품으로 저장이 되지만 그 당시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맹종은 대나무 숲에 들어가 슬피 울었다. 한참을 울다보니 땅 위에서 죽순 몇 그루가 솟아올랐다. 맹종은 죽순을 따가지고 와서 어머니에게 죽을 끓여 드렸다. 역시 지극한 효성은 하늘도 감동시킨다는 내용이다.

왜 굳이 이런 효자 이야기를 그려야만 했을까. 그만큼 효자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잘 지켜질 만큼 당연했다. 그런데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는 것은 가르쳐야 겨우 알아들을 만큼 당연하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효도는커녕 불효막심한 자식이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글과 그림을 통해서라도 효도의 중요성을 깨우쳐줘야 한다. 이것이 효자이야기가 많이 만들어진 이유다. 세종 때 삼강행실도가 발행된 계기도 1428년 진주의 김화(金禾)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송나라 유학자 정이(程?)는 이렇게 말했다. “‘논어’를 읽지 않았을 때도 이런 사람이고 읽고 난 뒤에도 그냥 이런 사람이라면, 이는 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말은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부모은중경’을 읽지 않았을 때도 이런 사람이고 읽고 난 뒤에도 그냥 이런 사람이라면, 이는 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1270호 / 2014년 11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