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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법을 구하는 창자는 어디에

금강경 강의시간에 강의를 듣고 계신 한 법사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약간 각색해서 요약하면 이렇다.

은산철벽 뚫어야 할 화두가
공양 목탁소리에 무너지기도
밥 구하는 창자의 심정으로
법 구해야 하는건 아닌지

동자스님들이 불단에 올려진 떡이 먹고 싶어졌다. 주지스님은 출타 중이었다. 허락을 받지 않고 먹으면 불벼락이 떨어진다. 한 동자스님이 꾀를 내었다. 떡고물 가루를 부처님 입에 살짝 발랐다. 그리고는 떡을 얼마간 덜어내서 동자스님들은 맛있게 먹었다. 주지스님이 돌아와 누가 떡을 먹었느냐고 물었다. 동자스님들은 우리는 먹지 않았다고 잡아떼었다. 주지스님이 씩씩거리면서 기어코 범인을 잡아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 동자스님이 주지스님께 말씀드렸다.

“주지스님, 부처님 입술에 떡고물이 묻어있는 것을 보니 부처님께서 잡수신 모양입니다.”

온갖 과일도 부처님께서 살짝 잡아당겨서 드시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부처님 입술에 떡고물을 바르고 떡을 먹은 동자스님들은 지혜로운 분들임에 틀림없다.

부안 내소사에 있는 주련을 읽어본다.

鐸鳴鐘落又竹毘 (탁명종락우죽비)
鳳飛銀山鐵壁外 (봉비은산철벽외)
若人問我喜消息 (약인문아희소식)
會僧堂裏滿鉢供 (회승당리만발공)

목탁이 울리고 종내리고 죽비를 치니 / 봉황새는 은산철벽 밖으로 날아가버리네 / 만약 누가 나에게 희소식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 회승당의 만발공양이라고 하리라.

언젠가 부안 바닷가에서 1박하고 다음날 아침 내소사로 가는 숲길에서 본 나뭇가지 끝에 맺힌 이슬 속을 투과하던 햇살 줄기는 잊혀지지 않고 이따금씩 뇌리에서 반짝거린다.

봉황새는 목숨과도 기꺼이 바꿀 수 있는 치열한 문제의식의 화두이다. 그 치열한 화두도 공양시간을 알리는 목탁소리는 이기지 못하는 모양이다. 목탁이 울리고 종소리가 잦아들 때까지만 해도 입술가에 남아있던 봉황새가 방선을 알리는 죽비가 쳐지면 그만 은산철벽을 뚫고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유마경의 제자품에서 유마거사는 가섭존자에게 다음과 같이 갈파하고 있다.

“가섭존자시여. 자비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두루보편하게 쓰지 않아서 부잣집은 버려두고 가난한 집에서만 걸식을 하시는군요. 가섭존자시여. 평등한 법에 머물러서 걸식을 해야 하며 먹지 않는 자리를 위해서 걸식을 해야합니다.”

부처님은 먹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가계시는 분이다. 허나 동자승들을 위해서 입술에 떡고물을 바르셨다. 먹지 않아도 되는 자리는 어디인가.

원효 스님은 발심수행장에서 “주린 창자가 끊어질 것 같아도 밥을 구하는 생각을 내지 말지니라[餓腸如切 無求食念]”고 했다. 수행과정에서 일주일이나 열흘간 단식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경우가 있다. 단식 전문가 분들과 단식을 결행해본 분들은 잘 아시는 일인데 사흘째 되는 날 밤에 찾아오는 밥을 향한 창자의 몸부림과 절규는 가히 감상해볼 만하다. 컴퓨터 게임을 한창 즐기다가 강제종료당한 꼬마의 동동거림은 비교대상도 되지 못한다. 한 호흡 심호흡으로 들이쉬고 냉수를 한 컵 쭈욱 들이키고 자신의 창자를 바라보노라면 나라는 존재가 음식물을 창자에 집어넣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것이 적나라하게 스크린에 펼쳐진다.

식욕을 억제해보려는 과정에서 위장을 어떻게 했다는 이야기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공복상태에서 저만치서 서서히 은은하게 다가오는 음식의 향기는 창자의 인내력을 끊임없이 테스트한다. 어느 선배님은 갓 결혼한 지인의 집에 저녁초대를 받아서 갔다가 음식은 나오지 않고 창자는 하도 소리를 내서 그때마다 신문을 구기고 구기고 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밥을 구하는 창자의 심정으로 법을 구해야 할텐데.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70호 / 2014년 11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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