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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행인(行因) 스님의 벗님

기자명 성재헌

행인, 일체가 욕망 알고 짐승 벗 삼아 정진

▲ 일러스트=이승윤

가을을 맛볼 새도 없이 덜커덕 겨울이 닥쳤다. 저녁을 먹고 어둠이 내린 마당을 조심조심 거닐며 아쉬운 가을을 느껴보았다. 제법 바람이 차가워 코끝이 싸할 무렵, 아내가 방문을 열었다. 그 손에 따끈한 커피가 들려 있었다. 이런저런 소재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내가 문득 물었다.

“당신은 친구가 몇이나 돼?”

아내 눈에 꽤나 외로워보였나 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세월이 갈수록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떠는 전화통화가 줄고, 찾아가고 찾아오는 일도 줄고, 이런저런 모임과 외출마저 뚝 끊어졌으니, 한밤에 마당이나 뱅뱅 도는 모습이 처량하게 비칠 만도 하다.

몇 년 전이었다면, 이 질문에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외톨이가 되면 어쩌나, 외톨이로 비춰지면 어쩌나, 불안과 두려움에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부처님께서 ‘숫타니파타’에서 말씀하셨다.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른다.

연정에서 우환이 생기는 것임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랑과 그리움으로 엮어진 친구는 그래도 고상하다. 가만히 돌아보면 사회생활 속에서 맺은 ‘친구’는 그 연결고리가 대부분 ‘경제적 이익’이다. 사랑과 그리움도 맘껏 채워지지 않아 그림자처럼 우환이 따르는데, 하물며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맺어진 관계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 친구사이는 물거품처럼 허약하기 짝이 없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서 관계를 맺고 유지하려 아등바등 애쓰는 것, 그것이 욕망이고 고통의 씨앗이다.

불법 안에서 도반이란 이름으로, 또 스승과 제자라는 이름으로 맺은 인연도 잘 살펴볼 일이다. 때로는 그것 역시 집단 안에서 자기의 안위를 보장받고 이익과 명예를 추구하려는 몸부림일 수 있으니 말이다.

당나라가 멸망하고 오대(五代)의 혼란기에 행인(行因)이라는 스님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유학을 공부했던 그는 매우 영특하고 논변이 뛰어났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임금이 바뀌고 친구가 적이 되던 혼란한 시절에 그가 공부했던 충의(忠義)는 책 속 이야기일 뿐이었다. 비참한 세상사에 실망한 그는 세속을 버리고 출가하였다. 그리고 참된 진리와 행복을 찾아 세상을 떠돌았다.

수많은 스승에게 갖가지 경론을 배우고 그 이치를 탐색해 보았지만 부처님의 진실한 뜻은 좀처럼 체득되지 않았다. 그러다 양주(襄州) 녹문산(鹿門山) 화엄원(華嚴院)에서 처진(處眞)선사를 만났다. 행인은 예를 갖추고 경론의 구절을 인용하며 차례차례 그 뜻을 물었다. 하지만 처진 선사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시원찮은 대답에도 행인은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곁에 있기만 해도 알 수 없는 편안함이 그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한참을 침묵하다 행인이 다시 물었다.

“무엇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처진 선사가 싱긋이 웃으며 답했다.

“우리 집에 소금은 많은데 식초는 없어.”

“도를 닦는 사람은 어떠해야 합니까?”

“입이 있어도 콧구멍이나 진배없어야지.”

온갖 이치를 두루 통달해 폭포수처럼 막힘이 없어야 한다고 늘 자신을 다그쳤던 행인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행인 스님은 감사의 절을 올리고 다시 한 마디 물었다.

“갑자기 나그네가 찾아오면 어떻게 상대하시겠습니까?”

처진 선사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저 사립문과 이 초가집이 자네에게 들러줘서 고맙다고 하는구먼.”

만 중생이 우러르는 성인이 되고 사표가 되리라던 생각 역시 한낱 욕망의 다른 형태일 뿐이었다. 이를 깨달은 행인 스님은 깊이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물러났다. 그리고 얼마 후, 여산(廬山)을 유람하다가 산 북쪽에서 기이한 바위를 발견하였다. 다섯 손가락이 분명한 손 모양이고, 그 바위 아래에 세 길 깊이의 굴이 있었다. 행인 스님은 그 굴에서 참선하며 지냈는데, 밤마다 사슴 한 마리와 꿩 한 마리가 찾아와 곁에서 쉬었다.

세월이 흐르자 사슴과 꿩은 친구처럼 항상 주위를 맴돌았고, 어쩌다 사람이 찾아와도 놀라는 기색조차 없었다. 인근 암자에 머물던 스님에 의해 소문이 퍼졌고, 곧 불수암화상(佛手巖和尚)으로 불리게 되었다. 행인 스님은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예배하고 공경해도 반기는 기색조차 없고, 학인들이 찾아와 가르침을 청해도 조용히 미소만 지을 뿐이고, 말없는 감화에 감동하여 제자가 되길 청하면 가만히 뒤돌아 앉아버렸다.

굴에서 짐승들과 친구처럼 사는 기이한 스님에 대한 소문은 후주(後周)의 원종(元宗)에게까지 전해졌다. 원종은 사신을 보내 스님을 궁으로 초청하였다. 하지만 스님은 조용히 참선만 할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원종이 세 번이나 사신을 파견하였지만 스님은 끝내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에 나와 대중을 교화해 달라는 원종의 간곡한 청을 더는 거절치 못해 결국 서현사(棲賢寺)의 주지가 되는 것을 수락하였다.

하지만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아무도 몰래 굴로 돌아왔다. 그리고 예전처럼 산속 새와 짐승들의 벗이 되었고, 바위 근처 암자의 스님이 하루 한번 공양을 올렸다. 다시 한참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갑자기 아픈 기색을 보였다. 행인 스님이 공양거리를 들고 찾아온 암자스님에게 말했다.

“나는 오늘 정오에 떠날 거야. 그 동안 고마웠네.”

암자스님은 행인 스님의 열반을 직감하였다. 긴 세월 한 마디 가르침도 듣지 못했던 그에겐 마지막 기회였다. 암자스님은 절을 올리고 여쭈었다.

“스님, 부처님은 시방세계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몸을 나투신다고 들었습니다. 무엇이 시방세계에 나툰 부처님의 몸입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행인 스님이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둘 사이에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굴속까지 훤하게 비추던 햇살이 서서히 입구로 밀려나자 행인 스님이 말했다.

“발을 걷어주게.”

암자스님이 굴 입구에 쳐놓은 발을 걷어 고리에 걸자 행인 스님이 평상에서 내려와 지팡이를 들었다. 행인 스님은 그렇게 세 걸음을 걷다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로 열반했다.

소식을 들은 후주의 군주 원종은 화공을 파견해 스님의 진영을 그리게 하고, 산 뒤쪽에 탑을 세워 스님의 유골을 모셨다.

성재헌 


[1270호 / 2014년 11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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