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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제비의 지저귐과 비취빛 대나무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는 관세음보살이 어떤 모습으로 사바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중생들에게 설법을 하는가 하는 내용이 있다.

세간의 온갖 소리 속에
관세음보살 음성 있어
자신이 듣고 못 들음은
얼마나 열려있나에 달려

사람사람에게 각각 알맞은 모습을 나타내서 설법을 하는데 부처님의 모습을 나타내서 제도해야하는 중생에게는 부처님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을 하고 소년이나 소녀의 모습을 나타내서 제도해야하는 중생에게는 소년이나 소녀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을 한다.

지하철에서 구석자리에 앉았다가 옆자리가 비면서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가 들어오시길래 한칸 옆으로 옮기면서 “여기 앉으시지요. 건강하십시오”했더니 할머니가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내신다.

“00병원에 가는데 의사선생님께서 약처방도 잘해주시고 너무 고마운 분이예요.” 그리고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말을 이으셨다.

“그놈의 영감인지 땡감인지 과테말라에 가면서 2년만 기다리면 나를 데려간다더니 그게 벌써 40년이에요. 외동딸 하나 키워서 시집보내놨더니 요새는 어떻게 지내냐는 전화도 한통 안하고…다 소용없어요. 내몸이 건강해야지.”

“과테말라에는 무슨 일로 가셨지요?”하고 질문했더니 “아 무슨 도장인가 뭔가 차려서 금방 데려간다더니 아직도 소식이 없네요”

이 할머니에게는 지금 찾아가고 계신 병원의 의사선생님이 관세음보살이고 필자에게는 이 할머니 분이 관세음보살이다. 다음역에서 내려 약속장소로 걸어가는 걸음걸음마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되살아난다. “내몸이 건강해야 제일이에요.”

妙音觀世音 (묘음관세음)
梵音海潮音 (범음해조음)
勝彼世間音 (승피세간음)
是故須常念 (시고수상념)

미묘한 음성으로 설하시는 관세음의 설법은 / 청정한 범음과 해조음이어서 / 저 세간의 소리보다 뛰어나다네 / 그러므로 모름지기 항상 알아차려야 한다네.

세간의 소리 밖에 따로 관세음보살님의 음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간의 온갖 소리 속에 관세음보살의 미묘한 음성이 들어있는데 듣고 못 듣고는 우리 자신의 귀가 얼마나 열려있고 눈이 얼마나 열려있는가에 달려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은 우리 귓속 눈속에 있는 것이지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안구를 해부하고 고막을 분해해보아도 보이지 않지만 관세음보살은 분명코 발가락 끝과 손가락 끝에도 있다.
부상을 입어서 다치거나 하면 그만 관세음안테나의 작동이 중단된다. 살아있는 동안은 건강해야 되고 건강을 잘 지켜야 한다.

틱낫한 스님의 소식에 가슴이 아프다. 지금 보여주시는 저 모습 그대로가 큰 법문이기도 하지만 속히 쾌유되시리라. 쾌차하시어 다시금 우리에게 잔잔한 그러면서 깊은 울림의 법문을 들려주실 것임에 틀림없다.

돌이켜보면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관세음보살이 들려주는 이야기인줄 모르고 지나쳐버린 말들이 너무 많다. 늘 접하는 사람이어서 그 사람의 내면세계에 회오리같은 혁명이 일어나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옛날모습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습관도 여전하다. 수많은 우주행성들 속에 떠있는 지구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 시선이 내발앞에만 머무는 시간이 긴 것도 사실이다.

조선시대의 연담유일 스님은 꾀꼬리가 지저귀고 제비가 우짖는 것이 다 진리를 설파하는 법문이라고 갈파했고, 다음과 같은 게송도 있다.

鬱鬱黃葉無非般若 (울울황엽무비반야)
靑靑翠竹總是眞如 (청청취죽총시진여)

성대하게 피어난 노란 국화꽃잎이 반야 아닌 것이 없고 / 푸르고 푸른 비취빛 대나무가 모두 진여 그 자체로구나.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71호 / 2014년 11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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