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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칭짱열차

세상서 가장 높은 지대 달려 중국·티베트 연결하는 철마

▲ 칭짱열차의 종착역 라싸역. 거얼무에서 라싸까지 이어지는 2차 공정에서 330억 위안, 우리 돈으로 5조8000억원이 투입됐다. 히말라야 고원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운행을 이어가고 있는 칭짱열차는 중국의 자부심이다.

이른 새벽 숙소를 나선다. 시커먼 하늘에 별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멀리서 차가운 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온다. 옷깃을 여미고 주변을 살핀다. 도로에 차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사람들은 부산하게 움직이며 어디론가 향한다. 간간히 경적소리도 들린다. 사그라지는 별빛, 온기가 스며든 바람 대신 쾌쾌한 매연과 오가는 사람들의 처진 어깨가 아침이 오고 있음을 알린다. 뒤로는 철근과 콘크리트가 만들어낸 회색풍경이 무미건조하게 이어진다. 오늘은 칭짱(靑藏)열차를 타고 티베트를 떠난다. 이 모습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라싸에 도착한 직후 자본에 물들어가는 도심을 바라보며 적잖이 실망했었지만, 이제는 그 또한 그리워하게 될 풍경으로 남을 것이다. 숙소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라싸를 마음에 담는다.

해발 4000m 이상 구간 960km
영구 동토지대도 550km 통과
1984년, 820km 1차 공정 완공
10만명 동원해 4년간 2차 공정
2006년 7월1일 첫 운행 시작해

하루 5000명 이상 실어 나르며
티베트에 자본주의 파고 높혀

오전 7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 버스를 타고 라싸역으로 향한다. 티베트에서의 모든 일정은 끝나고 중국 시닝(西寧) 타얼사(塔尔寺) 순례가 남았다. 숙소를 출발해 얼마 되지 않아 거대한 라싸역이 모습을 드러낸다. 라싸역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출발해 탕구라산맥을 거쳐 장장 1956km를 달리는 칭짱노선의 종착역이다. 칭하이성(靑海省)의 칭(靑)에 시짱(西藏, 티베트) 자치구의 짱(藏)을 붙여 칭짱열차라는 이름을 붙였다. 칭짱노선은 해발 4000m 이상인 구역이 960km에 달하며 1년 내내 얼음이 녹지 않는 동토구간도 550km에 이른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지대를 달리는 철도노선으로 가장 높은 구간은 5072m다. 해발 1916m인 지리산 천왕봉의 2.5배 높이다.

▲ 얼어붙은 동토의 땅을 통과하고 있는 칭짱열차.

칭짱노선 공사는 1979년 칭하이성 시닝과 거얼무를 연결하는 820km 구간 공사로 시작됐다. 공사는 수월하게 진행돼 5년만인 1984년 1기 노선이 완공됐다. 그러나 거얼무에서 라싸까지 이어지는 2기 공정은 희박한 산소, 거친 바람과 얼어붙은 땅, 영하의 기온을 극복할 기술이 부족해 차후로 미뤄졌다. 중국은 타국의 사례 등을 바탕으로 연구를 거듭했으며 2001년 6월 10만명을 동원해 2기 공정을 시작했다. 땅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구간에서는 말뚝을 이용해 선로를 세우는 공법을 이용했고 영구동토 지역에서는 선로를 직접 땅으로 부설하는 대신 땅의 온도가 높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속 방열말뚝을 박았다.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 국가적 규모의 공사였지만 고산증세와 일교차, 강풍 등으로 인부들이 쓰러지는 등 어려움을 겪으며 자주 중단되곤 했다.

4년 동안 330억 위안, 우리 돈으로 5조8000억원 가량이 투입된 칭짱노선 2기 공정은 결국 마무리됐고 2006년 7월1일 오전 11시 역사적인 첫 운행을 시작했다. 당시 국가주석이던 후진타오(胡錦濤)는 거얼무에서 열린 개통식에 참석해 칭짱노선 완공에 대해 “기적”이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고산증세로 베이징으로 돌아간 우징화(伍精華) 티베트 서기의 후임으로 1989년부터 1992년까지 티베트자치구 당 서기를 지냈다. 1989년 3월5일 라싸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이 발발하자 계엄령을 발동하고 유혈진압을 진두지휘했다. 이를 계기로 덩샤오핑(鄧小平)의 눈에 띄게 된 후진타오는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된 뒤 2003년 국가주석 자리에 오른다.

칭짱노선이 완공되고 8년이 흘렀다. 칭짱열차는 사람뿐 아니라 돈과 사상을 티베트로 실어 날랐다. 칭짱노선 완공 전, 티베트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하루 평균 500여명도 채 되지 못했다. 히말라야 고원의 척박한 환경을 감내하며 1000km가 넘는 도로를 버스로 달려야하는 고된 여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칭짱열차는 신비의 땅, 은둔의 샹그릴라였던 티베트에 하루 5000명의 사람들을 토해냈다. 한족들이 정착해 신시가지가 세워지고 자본은 고층건물을 밀어 올렸다. 관광객들이 물밀 듯 들어와 돈과 사상을 히말라야 곳곳에 뿌렸다. 라싸를 비롯해 티베트 전역에서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것은 티베트인들이 수천년 동안 쌓아온 삶의 방식을 바꿨고 소중하게 지켜온 정신적 가치를 조금씩 무너뜨렸다.

라싸역에 설치된 검문소를 통과해 거대한 칭짱열차와 만난다. 땅을 짓누르는 육중함이 느껴진다. 순례기간 동안 목격했던 이질적 풍경들이 바로 저 15량 열차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서늘해진다. 불과 1시간 전, 애써 기억에 담으려했던 라싸의 모습들은 이내 지워져버리고 금속덩어리의 날카로움과 차가움이 마음에 새겨진다. 시닝까지 앞으로 23시간 동안 저 열차 안에서 생활해야 한다. 내키지 않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열차에 오른다.

칭짱열차 내부는 히말라야의 기후를 견딜 수 있는 기술이 적용됐다. 버튼을 누르면 산소가 나오는 공급기를 설치해 승객들이 고산증세를 극복할 수 있도록 했으며 기압차를 고려, 항공기의 완전밀폐기술을 도입했다. 히말라야의 강렬한 태양빛을 차단할 목적으로 창문을 2중 코팅한 것은 물론 열차문도 공기를 2중 압축시켜 기후변화가 열차 내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했다. 순례단은 양쪽으로 3개씩 6개 침대가 놓인 객차에 배정받았다. 무거운 짐을 끌며 좁은 통로를 간신히 지나 침대칸에 도착하니 티베트인 한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그는 동방의 낯선 이방인을 힐끔 쳐다본 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사람들이 이미 1층과 2층 침대를 차지한 탓에 3층 침대를 쓰기로 했다. 발판이 설치되긴 했지만 3층 침대로 오르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약간의 등산기술을 발휘해 침대에 오른 후 겨우 몸을 눕힐 수 있었다. 그러나 얼굴과 천정 사이에는 간신히 숨을 들이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뿐이다. 옆으로 눕는 것은커녕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힘들다. 답답함을 견디기 힘들어 다시 약간의 등산기술을 발휘해 침대에서 내려온다. 1층 침대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각 칸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 좌석 칸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최대 48시간을 앉아있어야 한다.

통로를 지나 식당 칸을 통과해 좌석 칸으로 이동한다. 베이징까지 최대 48시간을 앉아서 가야한다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닐 것이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만큼 침대 칸을 이용하는 사람들보다 누추한 모습이다. 온갖 짐들이 널브러져있는 좁은 통로에는 화장실 문틈으로 흘러나온 오줌이 고였다.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과 피곤한 얼굴로 잠을 청하는 여자들. 비좁고 혼잡하고 너저분한 분위기 속에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앉아있을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다시 침대 칸으로 돌아온다. 1층 침대에 앉아 건조시킨 야크고기를 뜯고 있는 티베트인과 눈이 마주친다. 다부진 체격, 콧수염을 기른 강인한 얼굴에 꿈꾸는 듯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영어로 직업을 물어보니 티베트와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한다고 말한다. 가족들은 라싸에 있다면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여준다. 티베트 전통복장을 입은 그와 가족들이 해맑게 웃고 있다. 마침 얼마 전, 삼예사를 방문했단다. 어제 순례한 곳이 바로 삼예사이니 더없이 반갑다. 서로 짧은 영어실력에 몇 가지 단어만 주고받았을 뿐이지만 긴 시간 동안 마음을 나눴다.

그러다 현재 티베트가 처한 상황에 대해 묻고 싶었다. “달라이라마”를 이야기하자마자 얼굴빛이 변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갸우뚱하더니 시선을 외면한 채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아 거듭 “달라이라마”라고 말하니 창밖으로 거뒀던 시선을 통로 쪽으로 옮기며 나지막하게 “폴리스(경찰)”라고 속삭인다. 그러면서 짧게 합장하고 “다람살라”를 읊조린다. 무슨 말인지,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더는 물어볼 수 없다. 여기서 그와의 대화는 끝났다.

▲ 고도계가 해발 4791m 고원지대를 통과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그의 시선을 따라 열차 밖 풍경을 바라본다. 하늘이 그 어느 곳에서보다 낮게 깔려있다. 검고 짙은 구름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무겁게 흐른다. 얼어붙은 땅에서 한기가 스멀거리며 피어오르고 강줄기가 동토를 가르며 힘겹게 흐름을 이어간다. 이곳은 그의 대지, 그의 고향. 차마 가 닿을 수 없는 아련한 것들이 그의 눈망울을 잠시 흔드는 듯하다. 그러다 다시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돌아온다. 서로 아무 말이 없다. 고도계를 확인해보니 해발 4791m 고원을 통과하고 있다. 발판을 딛고 3층 침대에 올라 억지로 눈을 붙인다.

▲ 양쪽으로 3개씩 6개의 침대가 설치된 객차의 모습.

얼마나 잤을까. 칭짱열차는 어둠 속을 달리고 있다. 소등을 한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온다. 라이터에 불을 붙여 컴컴한 객차를 밝힌다. 그의 자리는 비어있다. 아마 거얼무에서 내렸을 것이다. 1층 침대 그가 앉았던 자리에서 동이 트는 풍경을 바라본다. 황량한 돌무더기 산 대신 푸른 나무로 덮여있는 산이 빠르게 지나간다. 알록달록한 단청의 티베트 전통가옥은 온데간데 없고 칙칙한 색으로 칠해진 현대식 가옥이 보인다. 누렇게 바랜 강물이 무서운 기세로 흐른다. 세상이 변했다. 중국 본토 들머리의 장면들이 낯설다. 갑자기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스피커를 울린다. 오전 7시20분, 시닝에 도착했다.

칭짱열차=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272호 / 2014년 12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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