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천리마와 백락이 상생하기
44. 천리마와 백락이 상생하기
  • 박상준 원장
  • 승인 2014.12.02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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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대학자 한퇴지 선생은 천리마에 대한 글을 썼다. 세상에 천리마는 항상 있는데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백락을 만나지 못한 천리마는 마굿간에서 그저 그럭저럭 지내다가 죽게 된다. 또 천리마는 엄청난 양의 영양분을 섭취해야 천리마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데 영양섭취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오히려 평범한 말보다도 비리비리하게 된다. 한퇴지는 “진실로 말이 없는 것인가, 말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가” 장탄식을 하면서 글을 마치고 있다.

천리마는 항상 존재하지만
백락은 항상 있는 게 아냐
모든 분야 상생할 수 없지만
중심 잡기 공부 놓아선 안돼


천리마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잠재천리마는 야생마로 일생을 보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좌충우돌 우충좌돌하다가 제풀에 지쳐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 이 시대에도 모든 분야에 천리마의 재질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스승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거나 기획사를 잘 만나지 못하거나 매니저를 제때에 만나지 못해 스러져가는 별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히딩크 감독 같은 경우가 한국축구의 백락이었다. 이름도 없이 사라질 뻔했던 천리마 여럿 살렸다. 천리마 대열에 올라있는 천리마도 잠재능력을 한껏 끌어올려 발휘하도록 했다. 말그대로 상생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고 할 것이다. 물론 히딩크라는 천리마를 알아본 한국의 백락 역할을 맡았던 사람의 공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부처님 천리마가 수달장자라는 백락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사위국기수급고독원’이라는 말이 불교 경전에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잡지사와 신문사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말하자면 백락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이 백락의 역할을 맡은 이가 자신의 배역을 잊어버리고 천리마를 부리려 들거나 천리마 위에 군림하거나 천리마를 협박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만약에 수달장자가 부처님에게 “내가 아니었으면 당신이 그렇게 잘 나갈 수 있었겠소”하고 밀실에서 말한다면 그 그림이 무슨 그림이 되겠는가. 세상물정 잘 모르고 수행만 하고 계시는 어찌보면 어수룩한 수행자를 이 시대는 어떻게 모시고 있는가.

어떤 영화감독은 제작사의 간섭이 하도 심해서 영화에서 내 색깔이 완전히 빠져버렸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제작사는 영화감독이 뭘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적인 실권은 제작사가 쥐고 있기 때문에 감독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분야의 천리마와 백락이 상생관계가 될 수는 없는 것인가. 천리마도 못되고 백락도 못되는 필자가 문득 넋두리를 늘어놔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심잡기 공부를 놓아서는 안될 일이다.
금강경의 ‘금강’에 대해서 야부 스님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火不能燒 (화불능소)
水不能溺 (수불능익)
風不能飄 (풍불능표)
刀不能劈 (도불능벽)
軟似兜羅 (연사도라)
硬如鐵壁 (경여철벽)
天上人間 (천상인간)
古今不識 (고금불식)

불이 태울 수 없고 / 물이 빠뜨릴 수 없으며 / 바람이 뒤흔들 수 없고 / 칼이 쪼갤 수 없다네 / 부드럽기는 비단과 같고 / 강하기로는 철벽과 같으니 / 천상과 인간세계에서 / 예나 지금이나 알아보지 못한다네.

금강과 같은 내공을 다져갈 일이다.

圓同太虛 (원동태허)
無欠無餘 (무흠무여)

입체적인 둥글기가 태허공과 같아서 / 모자랄 것도 없고 남을 것도 없나니.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72호 / 2014년 12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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