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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정선, ‘구룡연’

기자명 조정육

“실천하지 않는다면 배움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아난아! 시방의 모든 여래는 이 능엄주를 빌려서 무상 정변지의 깨달음을 이루며, 이 주문의 마음으로 일체의 마를 항복시키고 모든 외도를 제압한다.” 능엄경

중국에 한 스님이 있었다. 어느 날 인도에서 온 법사를 만났는데 신기한 얘기를 들었다. 인도에 특별한 경전이 있다는 얘기였다. 모든 경전 중에서도 가장 깊고 오묘하며 불가사의한 경전이라 했다. 스님은 그날부터 매일 서쪽을 향해 절을 하며 그 경전을 볼 수 있기를 발원했다. 그러기를 무려 18년. 스님은 경전과의 인연이 없었던지 끝내 경을 보지 못하고 열반에 들었다. 그 스님이 바로 천태종(天台宗)의 개조(開祖) 지의(智顗, 538~597)대사다. 지의대사는 수(隋)나라 때 승려로 천태(天台)대사, 지자(智者)대사 또는 천태지자(天台智者)대사로 불렸다. 천태지자대사가 그토록 보기를 발원했던 경전은 ‘능엄경(楞嚴經)’이었다.

‘능엄경’ 중국유통 서원 세우고
몸에 경전 숨긴 반랄밀제 스님
국경관리인 감시 피해 중국도착

정선 그림 속 금강산 폭포에는
장애물 타파해버릴 기세 가득
능엄신주의 효력이 이와 같아

‘능엄경’은 당(唐)나라 때인 신룡(神龍) 1년(705)에 이르러서야 인도스님 반랄밀제(般剌蜜帝)에 의해 중국에 들어왔다. 이렇게 늦게 중국에 들어오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인도의 국왕이 ‘능엄경’을 국보로 여겨 나라밖으로 유출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능엄경’은 심법(心法)에 대한 종지를 담고 있는 경전으로 용수(龍樹)보살이 용궁에서 가져왔다고 전해졌다.

사람의 인연이 그러하듯 경전도 시절인연이 있는 법이다. 반랄밀제 스님은 ‘능엄경’을 중국에 유통시키겠다는 특별한 서원을 세웠다. 그러나 경전유출은 불법이었다. ‘능엄경’을 들고 국경을 넘다 관리인에게 발각되어 빼앗겼다. 그렇다고 포기할 스님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던 끝에 묘안이 떠올랐다. 스님은 아주 가는 비단에 작은 글씨로 경전을 적었다. 그런 다음 양초로 비단을 봉했다. 스님은 팔의 살을 갈라 그 속에 경전을 넣었다. 상처에는 고약을 붙였다. 드디어 상처가 아물었다. 다시 중국으로 향했다. 팔에 상처가 있는 스님은 국경선을 지날 때 아무런 의심 없이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스님은 광동성에 있는 제지사(制止寺)에 거주하면서 중국어로 경전을 번역했다. 스님은 번역을 서둘렀다. 다시 인도에 돌아가 죄를 받기 위해서였다. 경전이 유출된 사실을 안 인도의 왕이 국경을 지키는 관리인을 문책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스님은 국경 관리인이 벌 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죄는 자신에게 있었다. 스님은 경전 번역을 마친 후 인도에 돌아가 죄를 달게 받을 생각이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읽을 수 있는 ‘능엄경’이 보급되기까지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주기 위해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수행자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불교가 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생각하면 가슴 뭉클한 전법(傳法)의 역사다. 구법(求法)의 의지다. 돈만 있으면 쉽게 살 수 있는 경전이라 하여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귀하고 귀한 것이 부처님 경전이다. 지금은 우리가 너무 쉽게 구할 수 있어 읽는 것조차 게을리하지만 말이다.

‘능엄경’은 직지인심(直指人心)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게 하는 경전이다. 즉 선정을 닦아 지혜를 열게 하는 경전이다. 사람의 참된 마음(眞心)은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이다. 불성은 사람의 근본 성품이다.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우리 자신 속에 있다. 능엄경은 성품을 보는 것(見性)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그런데 ‘능엄경’은 아난을 위해 설한 경전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하필이면 많고 많은 제자 중에 아난을 위해 설했다는 사실이. 왜 아난존자인가.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 다문제일(多聞第一)로 통한다. 아난은 수십년 동안 부처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부처님이 하신 법문을 모두 기억하는 재주가 탁월했다. 그러나 다문에 의지하여 문자반야(文字般若)를 배우는 데만 치중하고 실상반야(實相般若)를 닦지 않아 선정력(禪定力)에 소홀히 했다. 그 결과 어떻게 됐을까. ‘능엄경’이 설해지게 된 배경을 보면 선정력의 부족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프라세나지트왕이 그의 부친을 위해 제사일에 재식을 준비하고 부처님을 청했다. 부처님은 문수보살에게 분부하여 보살과 아라한들을 나누어서 공양에 응하게 하셨다. 오직 아난은 먼저 걸식을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아난을 제외한 모두가 궁전으로 향했다. 아난은 아직까지 사위성에서 탁발하는 중이었다. 아난은 규칙에 따라 일곱 집을 걸식하면서 기녀의 집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 기녀는 마등가(摩登伽)라는 외도(外道)의 딸이었는데 마등가는 주술(呪術)을 사용할 줄 알았다. 기녀는 아난을 보자마자 첫 눈에 반했다. 그러나 기녀로서 수행자인 아난에게 다가갈 방법이 없었다. 기녀는 어머니에게 아난을 유혹할 수 있는 주술을 부려달라고 졸랐다. 마등가는 선범천주(先梵天呪)라는 황발외도(黃髮外道)의 주술을 써서 아난이 딸의 방에 들어가게 했다. 황발외도는 사람의 혼백을 거두어들이는 일종의 사술(邪術)로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주술자의 뜻대로 따르게 되는 주문이었다. 주술에 걸려 정신이 혼미해진 아난은 기녀가 몸을 만지면서 계의 몸을 훼손하려고 해도 알지 못했다. 이것이 선정력의 부족이다.

아난이 누구인가. 부처님의 법문을 가장 많이 들은 제자가 아닌가. 아난은 이미 초과의 아라한을 증득한 성인인데 외도의 사술에 미혹된 것이다. 남의 밥그릇을 아무리 많이 센다한들 내 배가 부르지 않듯 법문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많은 경전을 읽고 외워도 선정력이 없으면 배고플 때 남의 밥그릇을 세는 것과 같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이렇게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 흐른다. 그렇다면 오직 선정력에만 치중하고 경전 공부는 무시해도 될까. 그렇지 않다.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을 강조하는 선종에서조차도 경전공부는 기본이다. 다만 문자에 멈추지 말라는 뜻을 강조해서 한 말일 뿐이다. 문자를 버려도 될 정도의 수준은 선정력이 굳건하여 어떤 외경에도 흔들림이 없는 수행자라야만 가능하다. 우리 같은 초심자들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얘기다. 우리는 그저 부지런히 갈고 닦는 수밖에 없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삿된 주술이 가해지는 것을 아시고 재를 마치고 돌아가려고 했다. 왕과 대신, 장자와 거사들은 함께 부처님을 따라 와서 중요한 법을 듣기를 원했다. 세존께서는 수백 가지 보배로운 광명을 놓으셨으며, 그 광명 가운데는 천 잎의 보배연꽃에서 화신부처님이 나와 결가부좌하여 능엄신주를 설하셨다. 왜 능엄신주인가? 능엄신주만이 황발외도의 선범천주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능엄신주는 주문 가운데서 가장 신령스런 주문이며 모든 마의 주술을 깨뜨리는 주문의 왕이다. 인도의 왕이 능엄신주가 담긴 ‘능엄경’의 국외유출을 금지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문수사리보살에게 명하여 능엄주를 가지고 마등가의 집으로 가서 아난을 구하고 악주를 소멸시키라고 했다. 문수보살은 아난을 부축하고 마등가를 격려하여 부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비로소 아난이 꿈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린 아난은 눈물을 흘렸다. 무시이래로 줄곧 다문에 치중하고 도력을 온전히 갖추지 못함을 한탄하며 부처님께 청했다. 시방의 여래께서 보리(깨달음)를 이룬 법문을 설해주실 것을 청했다. 이렇게 해서 ‘능엄경’이 설해지게 되었다.

▲ 사진설명 : 정선, ‘구룡연’, 비단에 먹, 25×19.2cm, 개인소장.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이 그린 ‘구룡연(九龍淵)’은 금강산에 있는 폭포다. 정선이 70세가 넘어 그렸다. 전국의 산하를 발로 걷고 뛰어다니며 사생한 필력이 무르익은 작품이다. 정선은 ‘구룡연’에서 먹을 제외한 일체의 채색을 쓰지 않았다. 오직 먹 하나로 장관을 그려냈다. 금강산을 그릴 때 창끝처럼 날카로운 바위를 촘촘히 그리던 습관에서도 벗어났다. 꼭 필요한 곳에만 강한 붓질을 남겼다. 정선은 구룡연이 지닌 폭포의 외연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폭포가 지닌 강한 힘과 바위의 견고함을 드러내는 데만 정신이 쏠려 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현장감이다. 자신이 구룡폭포 앞에 섰을 때의 현장감을, 그림을 감상한 사람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목적한 바를 훌륭히 달성했다. 어떻게 해서 가능했을까.

정선은 여산폭포, 박연폭포, 삼부연폭포 등 여러 점의 폭포 그림을 남겼다. 모든 폭포 그림이 전부 현장에서의 감동을 전해주려는 의도가 반영되었다. 현장감을 전해주기 위해 실경을 충실히 재현하기보다는 형태를 왜곡, 과장, 축소, 비약하는 기법이다. 박연폭포는 실제보다 폭포 길이가 훨씬 길다. 삼부연폭포는 실제보다 폭포의 넓이가 훨씬 넓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 이런 과장이 사라진다. 대신 현장에 서있는 듯한 감동만이 남는다. 순전히 정선의 붓질 때문이다. 바위를 그린 부벽준(斧劈皴)은 교과서적인 부벽준이 아니다. 정선의 붓 끝에서 농익은 부벽준이다. 나무를 그린 미점준(米點皴)은 얌전하게 점을 찍은 기법이 아니다. 풍상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킨 생명력의 표현이다. 정선은 바위를 그린 필력으로 나무를 그렸고 나무를 그린 먹빛으로 폭포를 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위는 바위다. 폭포는 폭포고 나무는 나무다. 조화롭되 자신의 독립성을 잃지 않는 물상들의 결합이다. 아니, 정선의 손놀림이다.

거침없이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폭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다면 여지없이 타파해버릴 기세다. 능엄신주의 효력도 그와 같을 것이다.

‘능엄경’에는 능엄신주의 공덕에 대해 길게 적혀 있다. 능엄신주는 부처님의 정수리 광명에 모인 대백산개의 비밀스럽고도 미묘한 게송이다. 대백산개는 크고 흰 일산의 덮개다. 대백산개(능엄신주)는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다 덮어 일체의 중생을 보호할 수 있는 게송이다. 부처님께서 멀리 떨어져있는 아난이 위험에 빠진 것을 알고 바로 구해낸 것만 봐도 효력을 짐작할 수 있다. 시방의 모든 여래는 이 능엄신주를 빌려서 무상 정변지의 깨달음을 이루었고 일체의 마를 항복시키고 모든 외도를 제압할 수 있다. ‘능엄경’은 능엄신주의 공덕에 대해 가르쳐주기 위해 설한 경전이다. 다음 글에서 능엄신주의 공덕에 대해 더 살펴보기로 하겠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1273호 / 2014년 12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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