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기도를 시작하며 [끝]
24. 기도를 시작하며 [끝]
  • 하림 스님
  • 승인 2014.12.22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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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제법 춥습니다. 더우면 그늘로 피할 길이 있다지만 추위는 어디로 피할 곳이 없습니다. 강원도 인제서 군대생활을 했습니다.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야 내무반서 근무할 수 있게 배려해줬고, 그보다 높으면 내무반에 들여보내주질 않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얼마나 추웠던지 추위를 이기기 위해 훈련했고, 열심히 작업해야 했던 장면들이 스쳐지나갑니다. 부산도 이렇게 추운데 서울 인근은 얼마나 추울까요. 더 위쪽에 사는 사람들은 또 어떻게 겨울을 보내고 있을까요. 그들을 생각하면 제게 주어진 편안한 잠자리가 미안하고 이렇게 밤을 보낸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기도는 자신 내면 살펴
고민 살피는 기회 제공
원망이 자비로 바뀌고
업 정화해 영혼 맑게 해


역량이 부족해 저보다 못한 사람을 다 챙기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이런 마음을 담아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으로 중생을 살피고자하는 관세음보살님이 출현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 원력이 커져서 관세음과 지장보살님의 원력이 내 마음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면 내내 염불하며 찾는 관세음보살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 제 자신이 그렇게 하려는 마음보다 ‘난 그렇게는 못 할거야’라는 생각이 많습니다.

내 주변에 있는 인연들도 잘 챙기지 못하는데 누굴 더 챙길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 버리고 맙니다. 제 안에서 보살의 길로 가려는 마음과 그냥 이 정도에서 머물고자 하는 마음이 서로 부딪히면서 주춤거립니다.

동지기도를 제가 하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목탁을 들고 염불을 했습니다. 직접 목탁을 들고 기도하는 스님의 자리에 서 보니 오래도록 잊었던 생각들이 스쳐갑니다. 기도하는 동안 온갖 생각들이 눈앞을 지나다닙니다. 마치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금강경을 14품까지 읽는 동안 눈에 들어오는 구절들이 많습니다. ‘보고 듣는 것에 마음을 두거나 쓰지 말라’고 합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 감정들을 내 것으로 여겨 고민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요 며칠 고민이 많았거든요. 사실 그것들은 지나가는데 말입니다. 지나가게 내버려두었다면 밤사이 잠을 설치는 일도 없었을 것인데 말입니다. 다시 관세음보살 정근을 합니다. 그래도 그때의 생각이 일어나 화가 나려합니다. 마치 드라마 속에 들어간 것처럼 그 장면이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입으로 소리 내며 자비로운 미소를 떠올리니 그 장면들이 그냥 지나갑니다. 상대에게서 보지 못했던 부분이 보이며 이해가 되고 오히려 미안함이 남습니다.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그 장면들을 내 안의 아뢰야식으로 보내주게 됩니다. 관세음보살의 자비로운 미소와 함께 제 안의 평화로움이 함께 합니다. 기도는 제게 지금의 갈등과 고민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합니다. 그것을 잘 보낼 수 있는 기회도 줍니다.

원망과 미움이 기도를 통해 아쉬움과 자비, 사랑으로 남게 됩니다. 이게 우리의 업을 정화하고 우리의 영혼을 맑혀가는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주일 중에 어제 하루 기도를 마치고 이렇게 말이 많아졌습니다.

동지기도는 전국에서 하는 사람이 많이 있고, 각자 자기 인연 있는 절들이 있을 것이니 스님과 도반들과 함께 기도하신다면 이런 좋은 느낌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회향할 즈음 관세음보살님만큼의 큰 원력이 제게도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내게 다가와도 짜증내거나 흔들리지 않는 반석 같은 존재, 바람 부는 대로 바람에 흔들려도 뽑히지 않는 갈대 같은 존재 말입니다. 모두 그런 존재들로 새해를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하림 스님 whyharim@hanmail.net

[1275호 / 2014년 12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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