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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향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

한 건의 문서가 알린 복장유물의 진실

 
2012년 1월, 광주 향림사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2010년 7월 입적한 조계종 원로의원 천운 스님이 남긴 유물 가운데 하나인 목조석가여래좌상을 뒤집었는데, 창호지가 뜯긴 채 안이 텅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17세기 초에 제작된 송광사 불상과 비슷하다는 전라남도 문화재위원의 말에 따라 정밀조사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향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은 높이 54cm로 결가부좌를 취하고 있으며 어깨는 오른쪽을 노출한 통일신라시대 양식이지만 복부의 폭 넓은 주름은 전형적인 16세기 중후반 양식을 가지고 있다.

불상 조사 중 도난사실 알아
경찰 수사·언론보도 등 관심
천운 스님 남긴 문서 발견돼
복장물 애초 없다는 것 인지

향림사는 직전에도 도난사건을 경험했기에 예사롭게 넘길 수 없었다. 천운 스님이 입적하고 해남 대흥사에서 다비식이 엄수되던 시간에 누군가가 향림사에 보관돼오던 그림을 훔쳐갔던 것이다. 범인은 스님들이 사찰을 비운 틈을 타 범행을 저지른 뒤 유유히 사라졌다. 향림사 측은 복장유물 도난을 동일범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1월11일이었다.

향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에는 과연 어떤 복장유물들이 있었을까. 다른 유사한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향림사 복장유물 도난사건에 대한 수사도 어려움을 겪었다. 불상을 함부로 열어보지 않는 까닭에 없어진 복장유물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장에서는 범인이 남기기 마련인 사소한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천운 스님의 숨결이 배어있는 목조석가여래좌상 복장유물의 행방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지만, 수사는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향림사 스님들의 한숨소리가 짙어질 무렵, 결정적인 단서가 발견됐다. A4 용지 한 장 분량의 문서였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는 천운 스님이 남긴 것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일본인이 운영하던 사찰인 무량사는 해방되고 난 뒤 철거됐고, 단기 4306년(1973년)에 천운 스님이 불상을 시주받았다.’ 그리고 복장유물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내용도 적혀있었다. ‘복장이 없어 개금을 했다.’ 복장유물은 천운 스님이 불상을 시주받기 이전에 이미 유실됐던 것이다. 그렇다면 창호지가 뜯겨진 것은 언제였을까. 향림사로 이운할 당시 복장유물을 확인하려고 뜯어낸 창호지를 그대로 방치했던 것일까. 아니면 이후 복장유물을 훔치려했지만 실패했던 누군가의 흔적일까. 개금불사를 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후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수사가 종결됐기에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자칫 소동으로만 끝날 수 있었던 이 사건은 오히려 향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의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충북대 산학협력단이 향림사를 방문해 1차 육안분석을 실시한 결과, 50년 수령의 소나무가 재료로 사용됐음을 밝혀냈다. 2차 조사에서는 불상에서 떼어낸 일부분을 대상으로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이 실시됐다. 4개월에 걸친 조사를 통해 1552~1617년 사이에 벌채한 목재로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몸체는 소나무류로, 수인은 버드나무류로 조성된 사실도 밝혀졌다. 목조석가여래좌상이 17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자 향림사는 문화재 등록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향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에 대한 기록이 순천 선암사에 남아있다는 점도 문화재 등록 추진의 배경이 됐다.

이처럼 향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세상에 가치를 드러냈다. 복장유물이 도난당했다는 신고에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가며 집중됐던 여론의 관심이 불상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을 수 있었던 향림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복장유물 도난사건은, 그렇게 천운 스님의 향훈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어 역사에 기록됐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38호 / 2016년 4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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