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석남사 지장보살도
12. 석남사 지장보살도
  • 김규보 기자
  • 승인 2016.04.18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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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친 불화 밀거래 못하자 버리고 도망

 
1999년 7월, 조계종은 ‘불교문화재 도난백서’를 발간했다. 1984년 1월부터 1999년 6월까지 도난당한 문화재 가운데 불교문화재만을 검색해 수록한 최초의 백서였다. 조계종은 불교회화, 불교조각, 탑파·석등, 불교공예, 전적·경판 등 5개 분야 총 318개 유물들의 도난일시와 세부설명, 도난경위 등을 백서에 기재했다. 이는 도난당한 불교문화재를 회수하는 데 효과를 거두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실제로 백서가 발간되면서 적지 않은 도난문화재들을 되찾을 수 있었다. 특히 훔친 문화재가 백서에 수록됨으로써 밀거래가 어렵게 되자 자진해서 돌려주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울주군 석남사 지장보살도가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경보기 선 끊고 불화 훔쳐
곧이어 ‘도난백서’ 발간되자
사진 공개돼 유통 어려워져
통도사에 지장보살도 버려


1997년 12월10일 새벽, 도량석을 하는 스님들이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승복 차림을 한 사람과 등산복 차림을 한 사람이 어둠에 잠긴 경내를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승복을 입고 있었으나 사찰 스님도 아니었고, 게다가 경내 곳곳을 기웃거리는 모습이 여간 수상해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을 서성이던 두 사람은 이내 사찰을 빠져나갔다.

그날 저녁, 석남사 대웅전에 설치된 경보기 램프의 불이 꺼져있는 것을 발견한 사찰 관계자가 곧바로 설치회사에 전화를 걸어 그 사실을 알렸다. 당일 새벽에 거동이 수상한 두 사람이 대웅전을 유심히 지켜봤던 터라 예사롭게 넘길 수 없었다. 하지만 경보기를 설치한 회사 측은 대웅전 내부가 모니터로 잘 잡히고 있다고 답했다. 사찰 측은 그 말에 안심했지만, 사실 경보기 선은 절단된 상태였다. 그리고 12월11일 새벽, 대웅전에 봉안된 영산회상도〈사진〉와 지장보살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해외반출을 막고자 공항과 해로를 차단하고 수사에 들어갔지만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는 못했다. 사건 전날 새벽, 사찰을 배회했던 유력한 용의자들의 행방 역시 오리무중이었다. 그 사이 석남사 영산회상도와 지상보살도 도난사건을 접수한 조계종은 발간을 준비하고 있던 백서에 사진과 함께 관련 내용을 포함시켰다. 2년여가 흐른 1999년 7월, 백서가 본격적으로 배포되기 시작했다. ‘불교문화재 도난백서’는 관련 수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됐다. 백서에 수록된 문화재를 함부로 팔아넘길 수 없게 된 것이다.

다시 시간이 흘러 2003년 11월20일 오전 7시10분,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 중앙통제실에 근무하는 직원이 지하 출입문 입구에 비닐로 포장된 물건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비닐을 벗겨내자 가로 2m 남짓, 세로 1.6m 가량의 불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통도사 성보박물관장이었던 범하 스님이 불화를 상세히 살핀 결과 화기(畵記)에 ‘언양 석남사 명부전’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도난범들이 칼로 도려내 크기가 다소 작아졌고, 화기 역시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지만 석남사 지장보살도가 틀림없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측은 “조계종 총무원이 발간한 ‘불교문화재 도난백서’에 사진과 함께 세부내용이 소개돼 있어 밀거래가 불가능해지고, 도난 문화재에 대한 관계기관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증거인멸 차원에서 두고 사라진 것으로 추정한다”며 “지장보살도에 대한 안전한 보존과 훼손된 부분에 대한 과학적 보존처리를 위해 최선을 다함은 물론 함께 없어진 영산회상도에 대한 회수에도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석남사 지장보살도는 ‘불교문화재 도난백서’ 발간에 압박감을 느낀 범인이 직접 돌려줌으로써 회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물급 지정문화재인 영산회상도는 아직까지도 되찾지 못했다. 아마도 누군가의 집에 걸린 채, 혹은 창고에 틀어박힌 채 발견되기만을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40호 / 2016년 4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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