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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한글법어 부처님오신날에 태어나다

기자명 김택근

▲ 1982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성철 스님이 직접 쓴 ‘자기를 바로봅시다’ 봉축 법어. 이 법어는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빛을 발하고 있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제공

“‘큰스님, 스님께서는 산중의 스님이 아니십니다. 이제 공인이십니다. 해인사 방장이 아닌 종정으로 모든 국민에게 한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한문투의 법어는 세상사람 누가 알겠습니까. 한글로 법어를 내려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원택은 이렇듯 ‘감히’ 고하고 불호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였다. 성철은 잠자코 있었다. 그러더니 제자의 의견을 선뜻 들어줬다. ‘그래? 그럼 내가 다시 써보지.’”

1981년 조계종 종정이 되고 나서 첫 부처님오신날을 맞았다. 조계종 총무원에서 법어를 내려달라는 연락이 왔다. 제자들은 이것마저 뿌리칠까봐 걱정이었다. 하지만 성철은 선선히 이를 받아들였다. 제자들은 어떤 법어를 내릴지 궁금했다. 이윽고 성철이 법어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것이 초파일 법어다.”

온통 한문 투성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제자 원택은 뭔가 아쉬웠다. 처음으로 내리는 초파일 법어였기에 불교계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관심을 가질만했다. 하지만 한문법어는 국민들이 쉽게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특별한 날에 발표되는 종정 법어는 스님과 신도를 상대로 하는 산중 법어와는 달라야 했다. 원택은 평소 종정의 한문법어에 대해서 아쉬움을 지니고 있던 참이었다.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스승에게 건의했다.

“큰스님, 스님께서는 산중의 스님이 아니십니다. 이제 공인이십니다. 해인사 방장이 아닌 종정으로 모든 국민에게 한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한문투의 법어는 세상사람 누가 알겠습니까. 한글로 법어를 내려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원택은 이렇듯 ‘감히’ 고하고 불호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였다. 성철은 잠자코 있었다. 그러더니 제자의 의견을 선뜻 들어줬다.

“그래? 그럼 내가 다시 써보지.”

성철은 다시 염화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 두 시간이 지난 후 원택을 불렀다. 하지만 이번에도 반은 한글, 반은 한문이었다. 내친김에 제자는 다시 간청을 드렸다.

“처음보다 이해가 쉽지만, 말 자체를 완전히 한글체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성철은 이번에도 야단을 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혼잣말에도 전혀 짜증이 섞여 있지 않았다.

“그놈 참, 사람 힘들게 하네. 다시 생각해보지.”

다음날 아침 마침내 종정의 첫 한글 법어가 탄생했다.

‘모든 생명을 부처님과 같이 존경합시다. 만법의 참모습은 둥근 햇빛보다 더 밝고 푸른 허공보다 더 깨끗하여 항상 때묻지 않습니다. 악하다 천하다 함은 겉보기일 뿐, 그 참모습은 거룩한 부처님과 추호의 다름이 없어서 일체가 장엄하며 일체가 숭고합니다.’           

초파일에 탄생한, 종정이 내린 최초의 한글 법어였다. 이듬해 부처님오신날에도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는 한글 법어를 발표했다. 이 법어는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빛나고, 또 앞으로도 빛날 진리의 펼침이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설사 허공이 무너지고 땅이 없어져도 자기는 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유형, 무형 할 것 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입니다. 그러므로 반짝이는 별, 춤추는 나비 등등이 모두 자기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일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한다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함과 같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영원하므로 끝이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의 끝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헤매고 있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본래 순금입니다. 욕심이 마음의 눈을 가려 순금을 잡철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나만을 위하는 생각을 버리고 힘을 다하여 남을 도웁시다. 욕심이 자취를 감추면 마음의 눈이 열려서, 순금인 자기를 보게 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아무리 헐벗고 굶주린 상대라도 그것은 겉보기일 뿐, 본모습은 숭고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불쌍히 여기면, 이는 상대를 크게 모욕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대를 존경하며 받들어 모셔야 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현대는 물질 만능에 휘말려 자기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큰 바다와 같고 물질은 거품과 같습니다. 바다를 보고 거품은 따라가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이렇듯 크나큰 진리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다 함께 길이길이 축복합시다.’

성철의 법어는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것은 한글의 힘이기도 했다. 작가 최인호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마음 상한 일이 있어 남도여행길에 나선 최인호는 가판대에서 무심코 신문을 집어 들었다. 마침 그 신문에 종정 성철의 법어가 실려 있었다. 그는 ‘부처님은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러 오셨다’는 대목에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그는 성철의 사진을 구해 책상 옆에 붙여놓고 ‘성철 스님이 누구인지’ 들여다보고 다시 들여다봤다고 한다.

한국불교는 사실 한문이란 틀에 갇혀있었다. 한자를 모르면 누구도 심오한 세계에 접근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불경은 몇 사람의 머릿속에서 맴돌 뿐 대중 속으로 내려오지 못했다. 선(禪)을 논할 때도 일반인들은 명상 수준으로 막연히 이해할 뿐이었다.

말로는 불교 대중화를 외쳤지만 불교는 대중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제대로 된 한글경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불경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어느 산사나 박물관에 처박혀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알아야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불교는 ‘알 수 없는 종교’였다. 승려들의 기행이나 이적 등만 전해졌다. 자연 불교는 아낙들이 산속에서 소원을 비는 기복신앙쯤으로 여겨졌고, 심지어 무속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일찍이 용성 스님은 3·1운동을 주도하고 옥중에 갇혀 있을 때 깨달은 바가 많았다. 기독교의 성경은 한글로 번역이 되어 감옥에서도 누구나 쉽게 읽었다. 하지만 불경은 한자로 되어있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용성은 경전이 한문이란 감옥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갇혀있는 자신보다 누구도 보지 않는 경전이, 이를 방치하는 불교 현실이 더 서글펐다. 용성은 출소하면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겠다는 원을 세웠다. 실제로 그 후 용성은 불교포교의 현대화를 주창하며 역경사업에 앞장섰다. 1921년 삼장역회를 조직하여 경전을 한글로 옮기는 대역사를 시작했다.

“조선 사람들에게는 조선의 글과 조선의 말이 있을 뿐이다.”

스님은 수십 권의 경전을 번역해서 수십만 권의 한글경전을 보급했다. 이렇게 보면 용성-동산-성철로 이어지는 범어문중은 경전 및 법문의 한글화에 각별히 노력한 셈이었다. 

이 땅의 승려들은 한문경전을 한글로 바꾸는 것에는 도무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찌 보면 어려운 한문에 자신들의 얕은 실력을 은폐시키고 있는지도 몰랐다. 중요한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파하는 것이었다. 경전이 한글이건 한문이건, 또 외래어이건 중요하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한글을 쓰면 경전도 한글로 쓰여져야 한다.

물론 경전을 한글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한문에 정통하면서도 우리글을 깊고 바르게 아는 인재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또한 막대한 자금이 뒤를 받쳐줘야 한다. 따라서 역경사업은 개인이나 어느 사찰에서 감당하기에는 벅찰 수밖에 없다. 종단 또는 국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일들이다.    

성철이 제자들에게 일본 불서를 읽게 한 것도 일본 불교계가 일찍이 경전을 알기 쉽게 일본어로 정리했기 때문이었다. 한글법어를 선뜻 수락한 것도 ‘진리의 한글화’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 땅에서 한글법어의 탄생은 한편의 드라마 같은 것이었다. 한문투의 법어가 당연시됐던 오랜 관행을 깨뜨리는 대단한 사건이었다. 성철이 한글법어를 내리자 혹시 대필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불교계의 다른 문중에서도 의심의 눈초리로 흘끔거렸다. 그러나 성철은 직접 한글법어를 작성했다. 다만 맞춤법이 다소 틀렸고 그걸 제자들이 고쳤을 뿐이었다.

사실 성철은 우리말과 글을 구사하는 능력이 출중했다. 그것은 폭넓은 독서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백일법문이나 다른 저서들을 보면 한글로 자신의 사상과 생각을 쉽고도 깊이 있게 풀어내고 있다. 이런 대필 논란은 성철의 한글법어 육필이 공개됨으로써 일거에 해소되었다. 성철은 한글로 계속 법어를 내렸고, 쉽게 풀어쓴 불교의 진수는 그때마다 빛이 났다. 성철의 한글법어는 누리를 밝히는 또 다른 등이었다.

“난타가 피운 한 잔의 기름 등은 오늘도 타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피운 과거의 등불도 오늘 밝게 빛나고 미래에도 빛날 것입니다. 허공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으며 청정무구한 우리들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등불은 삼라만상을 밝게 비추니 칠흑 같은 어둠은 사라지고 환희의 세계가 열리고 있습니다. (……) 생일을 맞은 부처님보다 뭇 중생이 더욱 즐겁습니다. 본래 부처님이 중생 위해 사바에 오셨으니 중생이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요, 부처님도 중생으로 와서 부처 되었으니 오늘은 중생들의 생일입니다. 이는 곧 중생이 부처라는 말이요, 천지일근(天地一根) 만물일체(萬物一體)로서 일체중생은 평등하고 존귀한 것입니다.” (1992년 초파일법어)

김택근 언론인·시인 wtk222@hanmail.net

 [1343호 / 2016년 5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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