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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밥값을 하다

기자명 김택근

▲ 부처님 전에 올려진 성철 스님 사상 선양 법어집들. 백련불교문화재단 제공

““책 두 권 냈으니 이제 부처님께 밥값을 했다. 이 책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면 바로 나를 아는 사람이지.”

원택이 상기병에 걸렸다. 참선에 들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상기병은 갈 길 먼 수좌들의 정신을 쪼아댔다. 선승에게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공포덩어리였다. 원택은 할 수 없이 스승의 법문을 들으며 공부해보기로 했다. 백일법문 테이프를 얻어서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들을 땐 뭔가 알겠는데 듣고 나면 그만이었다. 원택은 아예 법문을 노트에 받아쓰고 그걸 보면서 들었다. 그랬더니 이해가 빠르고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의 차이였다. 그렇게 백일법문을 옮겨 적었다.

원택은 스승 성철이 알면 불호령이 떨어질까 봐 뒷방에서 홀로 듣고 옮기며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철이 원택을 찾았다. 성철 주변을 맴돌던 제자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행자가 뒷방에 있다고 하자 성철이 쫓아가 방문을 열어젖혔다. 원택은 이어폰을 끼고 뭔가를 적다가 화들짝 놀랐다. 결국 원택은 참선이 아닌 ‘테이프 법문 공부’를 하게 된 연유를 털어놓았다.

“네깐 놈이 뭘 알겠다고….”

크게 꾸짖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관대했다. 말투는 퉁명스러웠지만 표정은 싫지 않은듯했다. 그런 후 며칠이 지나 성철이 원택을 찾았다.

“어디까지 받아 적었나?”

원택은 백일법문이 다 끝났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성철은 개당설법(開堂說法, 방장취임법문)을 정리해 오라고 일렀다. 원택은 쾌재를 부르며 그대로 옮겨서 가져갔다. 내심 칭찬을 기대했다. 하지만 원고를 보던 성철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어느 놈이 이 글을 옮겨 적었나.”

호통 소리가 커서 원택은 백련암 지붕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꼴도 보기 싫다, 어서 나가.”

원택은 다시 녹음기를 틀어 대조해봤다. 원고는 한 자도 틀리지 않았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이틀이 지나서 성철이 다시 원고를 보자고 했다. 아무리 봐도 고칠 데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대로 가져갔다. 성철은 이번에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또 이틀이 지나자 다시 원고를 가져와 보라고 했다. 원택은 또 한 자도 고치지 못했다. 똑같은 원고를 받아든 성철은 그제야 말문을 열었다.

“너라는 놈은 참으로 실력이 없는가 보다. 그만큼 일렀으면 어딘가 좀 고쳐 와야 할 것 아닌가. 문장은 간결하게 정리해야지, 이리 늘어지면 누가 읽겠나. 안되겠다, 내일 새벽예불 마치고 내 방으로 와. 내가 직접 말해 줄 테니 너는 그대로 받아 적기만 해라.”

그때서야 제자는 깨달았다. 성철은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 즉 직역이 아닌 의역을 원하고 있었다. 말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니 문장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무랐지만 말 속에 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때 원택에게는 한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

‘스님이 법문을 정리하고 싶어 하시는구나. 그런데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았구나.’

스승에게 죄송했다. 하지만 이제라도 스승의 뜻을 헤아리게 되어 다행이라고 여겼다. 자신이 상기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이 일은 꿈도 꿀 수 없었으니 어쩌면 부처님의 뜻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 날부터 원택은 하루 한 시간씩 받아쓰기를 했다. 원택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스승의 선지식을 널리 알리기 위해선 출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성철은 새벽 구술을 빠뜨리지 않았다. 내심 그 시간을 기다리는 듯했다. 간혹 구술 중에 원택이 졸고 있으면 등짝을 두들겼다. 손길이 따뜻했다.

이렇게 법문을 옮긴 ‘본지풍광(本地風光)’과 성철이 직접 논술한 ‘선문정로(禪門正路)’ 원고가 완성되었다. ‘선문정로’는 돈오돈수를 불교의 핵심개념으로 설명했고, ‘본지풍광’에는 간화선 수행을 위한 100여 칙의 공안을 모아놓았다. 초고가 만들어지자 성철은 원택에게 법정을 찾아가보라 했다. 윤문을 부탁한 것이다. 법정은 성철의 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마침내 책이 나왔다. 원택은 스승보다 더 설다. 성철은 책을 받아들면서 한 마디 했다.

“오자는 없겠지?”
“법정 스님이 활자(活字)는 살아있는 거라서 오자 없는 책 만들기가 참으로 힘이 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오자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원택은 장담하고 물러나왔다. 서너 시간이 지났을 때 성철이 원택을 찾았다. 연화실 방문을 열자마자 성철이 책을 팽개쳤다. 원택이 펼쳐드니 스승이 잡아낸 오자가 쪽마다 수두룩했다.

“다음 판부터 모두 고치겠습니다.”

원택은 식은땀을 흘렸다. 책을 들고 출판사로 달려갔다. 그렇게 세상에 빛을 본 ‘선문정로’(1981년 출간) ‘본지풍광’(1982년 출간)을 성철은 어여삐 여겼다. 특히 ‘선문정로’는 후학들에게 책 제목대로 ‘선에 바르게 이르는 길’을 제시했다. 법정이 찾아와 ‘선문정로’를 펴낸 동기를 묻자 성철은 진정한 깨달음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것은 불교 집안에 대한 경책이기도 했다.

“요즘에 와서 견성해 버리고 성불해 버린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견성성불에 그만 표준이 없어져 불교계에 큰 혼란이 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비록 능력은 없지만 불교의 장래를 위해서 표준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철은 고불고조들은 어떻게 공부해서 어떻게 성불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모아서 정리했다. 그것은 또 다른 돈오돈수의 설파였다. 성철이 원택에게 말했다.

“책 두 권 냈으니 이제 부처님께 밥값을 했다. 이 책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면 바로 나를 아는 사람이지.”

그 후에도 ‘돈오입도요문론 강설’(1986), ‘신심명 증도가 강설’(1986), ‘자기를 바로 봅시다’(1987), ‘돈황본 육조단경’(1988), ‘백일법문 상·하’(1992) 등을 펴냈다. 성철은 평소 제자들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이 부처님의 중도사상으로써 선과 교를 하나로 꿰어서 불교를 설명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철은 문자를 맹신하는 사람들에게 문자를 없애는 법을 문자를 통해 가르쳐주려 노력했다.

성철의 저서는 비매품이 아니었다. 스님의 저작물은 으레 공짜로 나눠주었고 이를 당연한 법보시로 여겼던 당시의 절집 관행을 깬 파격이었다. 성철의 책은 엄연히 정가가 붙어 유통되었다. 그것은 법정의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법정은 원택에게 ‘불서 비매품’ 관행에 대한 부작용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불교출판이 활성화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절집 안에 유행인 법보시에 있다네. 신심 있는 사람이 책을 내어 공짜로 나누어주니 받는 사람도 귀한 줄 모르고 그저 그런 책이려니 하고 읽지 않게 된다네. 그러면 책을 낸 출판사도 손해고 결국은 불서 출판을 기피하게 되지. 또 그렇게 해서 책이 절판되면 그 다음엔 정작 책을 보려 해도 볼 수가 없다네. 그러니 성철 스님 책은 정가를 붙여 서점에 내놓도록 하게. 그러면 책을 보고 싶은 사람이 손쉽게 서점에서 구해 읽을 수 있고, 또 정가를 붙여 내놓으니 그 책이 사라지지 않고 늘 독자 가까이에 있게 될 거야. 이런 장점이 있으니 큰스님께 잘 말씀드려서 정가를 붙여 서점에 내놓도록 하게.”

원택은 머리를 끄덕였다. 제자는 법정의 충언임을 내세워 성철에게 조심스레 책을 ‘팔자’는 의견을 드렸다. 그러자 성철은 의외로 선선하게 받아들였다.

“그럼 법정 스님과 좋게 의논해보지.”

이렇게 해서 성철의 책은 서점에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거의 모든 책이 수십 쇄가 넘게 팔렸다. 자연 절판된 책은 없다. 지금도 선방 수좌에서부터 일반 신도, 또 불교를 알고 싶은 직장인과 학생들이 서점에서 끊임없이 집어 들고 있다. ‘소리 없는 베스트셀러’이다.    

성철이 직접 가려 뽑은 ‘선림고경총서’ 37권 간행은 그 산고가 무척 컸다. 이 또한 제자 원택의 역할이 컸다.

‘선문정로’가 출간되자 좀 어렵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그 반향이 만만치 않았다. 마침 ‘선문정로’에 대해 발표해보겠다는 교수가 나타났다. 그 교수는 한국불교학회가 주최하는 세미나에서 ‘선문정로’에 나타난 성철 사상의 핵심을 설명하고 깨침의 바른 길을 나름대로 제시했다. 하지만 보조의 돈오점수 사상으로 무장한 학자들의 반격은 매서웠다. 성철의 돈오돈수 사상은 형편없이 구겨졌다. 세미나장에서 스승의 돈오돈수론이 깨지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한 원택은 마음이 무거웠다.

‘큰스님의 돈오돈수 사상은 해인사 일주문 밖을 한 발짝도 나서지 못했구나.’

학자들은 돈오돈수론에 일대 함포사격을 했던 것이다. 아무도 돈오돈수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 

백련암에 돌아온 원택은 성철에게 그 실상을 알려야 했다. 안마를 해 드리며 성철이 가장 기분 좋은 시간에 세미나에서 있었던 일을 고했다.

“학회에 가보니 모두 보조사상을 연구한 박사들입니다. 해인사 골짜기에서 선종 전통사상이 돈오돈수라고 외쳐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큰스님 사상을 뒷받침할 인재를 양성해야지 이러다간 나중에 큰일 나겠습니다.”

말없이 듣고 있던 성철이 갑자기 일어나 앉더니 제자의 뺨을 때렸다.

“너 지금 인재양성이라고 했나. 이놈아, 내가 평생 인재양성이 뭔지 모르고 살았는지 아나. 이놈아, 키울 인재가 없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너희들이라도 내 뜻을 알아 똑바로 살아줘야지, 다 머저리 곰 새끼들만 우글거리니 나도 별 수 없지.”

성철은 다시 제자의 뺨을 후려쳤다. 그날 원택은 인재양성이란 말로 스승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렸던 것이다. 죄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제자로서 스승의 사상을 제대로 전파하지 못하고 밥만 축내고 있으니 스승이 시퍼렇게 꾸짖은 ‘밥도둑’이 자신처럼 느껴졌다. 그때 원택은 어떻게든 스승의 사상을 세상에 전파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평생 이를 실천했다.

원택은 며칠을 고민하다 한 가지 방안을 마련했다. 스승의 사상을 알아보는 인재는 없지만 돈오돈수론의 원천인 고불고조의 선어록은 있었다. 그것들을 모아서 불을 밝히면 될 듯싶었다. 원택이 조심스레 염화실 방문을 열었다.

“스님, 사람을 키우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대신 역대 조사들의 어록 중에서 돈오돈수 사상을 주장한 것들을 모아서 널리 알리면 큰스님 사상의 울타리가 될 것 같습니다.”

스승과 제자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이내 스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겠군.”

원택은 서둘러 30권 가량의 선종 서책을 정리해 목록을 가져갔다. 성철은 여기에 대여섯 권을 보탰다. 그렇게 목록을 확정했다. 그러나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발간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제자들은 사람을 찾고 비용을 마련하러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마침내 선어록 ‘선림고경총서’ 37권이 ‘성철 스님 법어집’ 11권과 함께 빛을 봤다. ‘임제록’ ‘운문록’ ‘위앙록’ ‘법안록’ ‘조동록’ ‘임간록’ ‘나호야록’ ‘총림선사’ ‘인천보감’ ‘운와기담’ ‘고애만록’ ‘산암잡록’ ‘벽암록’ ‘종용록’ 등의 선어록을 번역했다.  

1993년 10월 완간 기념회를 가졌다. 준비에서 출간까지 10여년이 걸렸다. 원택은 출간기념회를 마치고 스승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성철이 말했다.  

“수고했다.”

스승에게 처음 듣는 칭찬이었다. 원택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성철이 열반에 들기 한 달 전이었다.

김택근 언론인·시인 wtk222@hanmail.net

 [1344호 / 2016년 5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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