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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자녀가 느끼는 가정 : 불통형

똑똑한 부모가 사유 박탈된 ‘로봇자녀’ 만들기도

태진(17)이는 올해 고교진학을 포기한 채 얼마동안을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보냈다. 소위 명문고로 알려진 고교시험에 낙방했다는 이유로 분노한 엄마가 “명문고 아닌 00학교는 다녀서 뭐 해?”라며 태진이의 학생될 권리를 박탈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생각을 부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순종하는 태진이를 보다 못한 이웃과 지인들이 나섰다. 그래서 얻어낸 것이 검정고시 준비다. 태진이는 그나마 다행이라 여긴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학교는 명문 또는 하류 중 하나의 꼬리표를 달고 있다. 부모와 사회가 붙여준 레벨이다. 그리고 그 불이익과 고통을 지금 내 자녀, 우리 이웃이 받고 있으니 인과응보가 아니겠는가?

갓난아이도 배가 불러오면
빨던 젖 혀로 힘껏 밀어내
강요하면 삐뚤어지기 십상

과거 어느 때보다도 오늘의 부모세대는 박학다문하여 매사에 빈틈이 없고 이성적이다. 열정도 많아 자녀의 학업이나 특기교육 등에 많은 도움과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란 말처럼 어떤 부모는 너무 앞만 보고 돌진한다. 좌우를 살피는 융통성이 없으니 내 생각만 옳고 남의 의견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 불통의 자기모순에 빠지고 있다. 오직 부모생각이 가장 옳고 최선이라 믿기에 자녀인생 전반을 로봇처럼 설계하고 조종하려 든다. 엄마가 결정하고 통보하면 자녀는 로봇처럼 무조건 따르도록 강요하니 자녀는 점점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인간으로 길들여진다. 이런 부모에게 자녀의 실패나 시행착오는 참기 어렵다. 쉽고 빠른 직통코스를 잘 알고 있는 부모의 시각에서 멀리 돌아가는 아이행동은 한낮 어설픈 짓이니 능력껏 밀고 이끌어 주는 게 유능한 부모 역할이라고 굳게 믿는다. 물론 인간이 아닌 로봇은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은 감정과 사유능력이 있기 때문에 로봇처럼 다루고 우둔한 소처럼 앞만 보고 돌진하도록 재촉한다면 언젠가는 폭발하지 않겠는가? 분노, 충동성, 게임중독, 흡연 등이 이를 증명한다.

갓난아이도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젖을 먹지 않겠다는 신호로 빨던 젖을 혀로 힘껏 밀어내는 자율적인 소통방식을 취한다. 모든 엄마는 아기가 보내는 신호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만 먹고 싶어? 우리 아기 배가 부르구나!” 라며 다정한 말로 반응해준다. 만일 민감하지 못한 엄마가 강제로 젖을 더 먹이려 든다면 아기는 어떤 느낌이 들까? 고통으로 인해 짜증을 낼 것이다.

부모의 도움을 절실히 원하던 아기도 자라면서 점차 도움보다는 자기 스스로 행동하기를 원하기에 때에 맞추어 엄마품안에서 내려놓아야 하는데 하물며 10대 청소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고 선택할 권리를 부여해야한다. 아기 때처럼 여전히 돌봐주거나 매사를 간섭, 통제하려 들면 아이는 인생을 무의미하게 느껴 우울해진다.

부처님은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고 내 생각만 옳다고 우기는 어리석음의 해악을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수행승들이여, 어리석음에서 만들어지고 어리석음에서 생겨나고 어리석음을 인연으로 하고 어리석음을 원인으로 하는 그 행위는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며, 죄악이고, 고통의 과보를 가져오며, 업의 발생으로 이끌어질 뿐 업의 소멸로 이끌어지지 않는다.”

부처님 말씀처럼 모든 죄악의 근원에는 어리석음이 존재한다. 부모의 어리석음으로 자녀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가능성을 꽃피우지 못했다면 큰 손실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책임이 맡겨질 때 능력도 배가 되며 더불어 행복해진다. 그런 점에서 자녀는 자기 길을 스스로 찾아가고, 부모는 힘찬 응원자 역할을 다하는 것, 이것이 불통을 벗어난 진정한 ‘소통형 가정’이 아닐까 한다. 

황옥자 동국대 명예교수 hoj@dongguk.ac.kr
 

 [1346호 / 2016년 6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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