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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열반 [끝]

기자명 김택근

▲ 성철 스님의 법체가 연화대에 안치되고 불을 붙이는 거화의식이 시작되자 다비장을 가득 채운 수십만의 사람들이 일제히 석가모니불 정근을 했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제공

“성철이 자주 눈을 감았다. 제자 원융은 스승이 혼침에 빠진 줄 알고 여쭈었다. ‘큰스님, 지금 경계가 어떠하십니까?’ 그 말에 성철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원융의 뺨을 후려쳤다. 열반에 들기 3일 전 일이었다. ‘가야산 호랑이가 죽지 않았구나.’”

성철은 출가 후 줄곧 가슴에 쇠말뚝 하나를 박고 살았다. 거기엔 패(牌) 하나가 붙어 있었다.

‘영원한 진리를 위해 일체를 희생한다.’

세속적인 명리를 버리고 영원히 사는 길을 찾아 나섰다. 그 길을 불교에서 찾았고, 부처가 열었던 길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길은 곧잘 끊기고 어둠에 잠겨있었다. 성철은 육조 혜능이 밝혔던 횃불을 들고 길 위에 섰다. 분명 옛길이었지만 구도자에게는 전혀 새로운 길이었다. 문 없는 문이었고, 길 없는 길이었으니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야 비로소 열렸다.

세상에 나와서 진리를 본 것은 축복이었다. 그 축복은 쌓아 놓으면 사라져갔다. 축복은 남을 위해 사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남을 위해 기도하고 중생을 돕는 것이 최고의 불공이었다.

성철은 일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가난이 참다운 자유임을 실증해보였다. 성불하기 위해서는 밥그릇 하나에 옷 한 벌이면 되었다.

최소의 생활이 최대의 자유였다. 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난부터 배우라 일렀다. 성철의 누더기 옷은 치열한 수행으로 대자유를 얻은 사람의 징표였다.

가을이었다. 그해 가을은 해인사 퇴설당에 맨 먼저 찾아왔다. 해인사 방장이, 조계종단 종정이, 가야산 호랑이가 ‘떠날 시간’을 부르고 있었다. 해인사 사람들이 퇴설당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한 마디씩 했다.

“벌써 가을인가.”

성철은 버릴 것은 모두 버렸다. 기력 또한 쇠잔했다. 제자들과 절 식구들은 일거수일투족을 점검했다. 성철이 자주 눈을 감았다. 제자 원융은 스승이 혼침(昏沈)에 빠진 줄 알고 여쭈었다.

“큰스님, 지금 경계가 어떠하십니까?”

그 말에 성철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원융의 뺨을 후려쳤다. 열반에 들기 3일 전 일이었다. 이 소식은 빠르게 제방선원에 알려졌다.

“가야산 호랑이가 죽지 않았구나.”

성철이 제자 원택을 찾았다. 달리듯 걸으면서도 경내에 떨어진 나뭇잎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제자는 불길했다. 퇴설당에 들어선 원택을 스승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성철이 이내 희미하게 웃었다.

“내 이제 갈란다. 너희를 너무 괴롭히는 거 같아.”

청천벽력이었다. 하지만 올 것이 왔음이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겨우 말을 꺼내 올렸다.

“시자들이 또 스님의 마음을 거슬렸나 봅니다. 부디 고정하시고 노여움을 푸시지요.”
“아니다. 이제 갈 때가 다 됐다. 내가 너무 오래 있었다.”

제자는 다시 엎드렸다.

“불교를 위해서나 해인사를 위해서나 좀 더 계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다. 인제 가야지. 내 할 일은 다 했다.”

성철은 말을 마치고 눈을 감았다. 소식을 들은 제자와 노장들이 퇴설당으로 달려왔다. 제자들은 성철의 열반송을 이미 받아놓고 있었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둥근 한 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생평기광남녀군 미천죄업과수미
(生平欺誑男女群 彌天罪業過須彌)
활함아비한만단 일륜토홍괘벽산
(活陷阿鼻恨萬端 一輪吐紅掛碧山)

일체 중생이 부처였다. 그럼에도 방편을 내세워 진리를 찾으라고 수없이 설했으니 그 죄업이 수미산만큼 컸다. ‘백일법문’ ‘선문정로’ ‘본지풍광’도 결국 달은 아니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질에 불과했다. 육조는 ‘나의 허물만 보고 세상의 허물은 보지 않는다’고 했건만 부처를 보고도 중생이라며 허튼 소리를 했다. ‘설할 수 없는 불법의 진리를 설한 죄업’으로 지옥에 빠져야 했다. 중생을 속였으니 중생과 고통을 함께 해야 했다. 중생이 아프니 성철도 아픈 것이다.

하지만 함께 지옥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해가 붉은 빛을 토하며 푸른 산에 걸려있음은 부처의 지혜광명이 만물에 생명을 나눠주고 있음이었다. 그런 만큼 성철은 남은 이들에게 수행에 전념하여 그 실상을 보라고 당부했다. 시절인연에 따라 선승의 본분사로 회향하지만 부디 ‘상구보리 하화중생하라’고 이 땅의 승려들에게 주는 유언이었다. 성철의 열반송은 절망이면서 희망이었고, 그 절망과 희망마저 떠난 중도법문이었다.

어떤 무리들은 이를 문자만으로 따져서 종정 성철이 평생 남녀 무리들을 속여 왔고, 결국 그 죄가 무거워 지옥으로 떨어졌다고 저주를 퍼붓는다. 마지막까지 말에 속지 말라는 본분종사의 가르침을 조롱했다. 그들은 말에 갇힌 채 실상과 진실을 보지 못했다. 불교에 대해서, 선에 대해서, 선승에 대해서 무지한 자들이었다. 몰라서 가여운 자들이었다.

가을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여명이 밝아오자 성철이 눈을 떴다.

“나 좀 일으켜 다오.”

성철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시간이 새벽 5시를 지나고 있었다. 성철이 다시 말했다.

“답답하구나. 나를 안아라.”

원택은 스승을 끌어안았다.

“새끼야, 편하게 좀 해봐라.”

지상에서의 마지막 꾸중이었다. 원택은 성철을 고쳐 안았다. 성철은 제자의 가슴에 몸을 기댔다. 성철의 몸은 가벼웠다. 창밖이 설핏 환했다.

1993년 11월 4일, 오전 7시 30분.

“새벽인가?”
“네.”
“그럼 나도 가야겠다. 다들 못보고 가겠구나.”

제자는 울음을 삼켰다.

“참선 잘하그래이.”

그러고는 말이 없었다. 

김택근 언론인·시인 wtk222@hanmail.net

‘성철 스님 평전’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1350호 / 2016년 7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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