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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사찰음식 또 다른 이름 향적(香積)

기자명 김유신

사찰음식을 높여 부르는 말
유마경서 법열 음식에 비유

불교의 음식을 부르는 이름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중국은 소식(素食), 일본은 정진요리(精進料理), 우리나라는 사찰음식이다. 요즈음에는 사찰음식이 꽤 익숙한 이름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발우공양, 사찰요리, 산사(山寺)음식, 절밥, 선식(禪食) 등 여러 이름으로도 불렸다. 이 이름들 외에 사찰음식을 높여 부르는 말로 ‘향적(香積)’이 있다.

향적은 ‘유마힐소설경(유마경)’의 ‘향적불품(香積佛品)’에 나오는 말로 진리를 깨닫는 법열을 음식에 비유한 것이다. 사리불이 점심시간이 다되어 마음속으로 여기 모인 수많은 보살들은 무엇을 먹어야 할까하고 고민하자 유마힐이 일찍이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음식을 드리겠노라며 신통력으로 ‘향적여래(香積如來)’가 계시는 ‘중향성(衆香城)’의 전경을 보여주며 향적여래가 베푼 ‘향반(香飯)’의 묘용을 설하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사찰음식을 높여 부르는 비유적 표현으로 향적이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

이처럼 음식을 통해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부처님의 비유는 다른 경전에도 나오는 데 ‘증일아함경’ ‘마왕품’에 보면 부처님께서 바라촌에 이르러 탁발을 하려하자 마왕 파순이 방해하여 탁발이 어려워졌다. 이에 부처님께서 4가지 세간식(世間食)과 선식(禪食), 원식(願食), 염식(念食), 해탈식(解脱食), 희식(喜食)의 5가지 출세간식(出世間食)을 거론하며 참된 수행과 진리를 깨닫는 기쁨을 설하신 바가 있다. ‘유마경’의 비유로 향적이란 말은 사찰음식을 대표하는 말이자 사찰음식을 높여 부르는 예칭이 되었다.

일례로 고운 최치원이 지은 ‘대숭복사비명병서(嵩福寺碑銘竝序)’에는 불사에 크게 기여한 김원량의 공덕을 칭송하며 “이로부터 종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지고, 발우(鉢盂)에는 향적반(香積飯)이 가득 담기게 되었다”고 하였고, 조선후기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 ‘석전잡설(釋典雜說)’에는 향적반(香積飯)은 밥[飯]을 지칭하고 향적주(香積廚)는 부엌을 이름 한다고 하였다.

또한 사찰에서 음식과 관련된 시설인 공양간이나 식당에 향적이란 명칭을 쓰기도 하였는데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 서긍이 지은 ‘선화봉사고려도경’에 보면 ‘정국안화사(靖國安和寺)’를 방문한 사실을 기록하면서 “서쪽 월랑의 대청을 ‘향적(香積)’이라 한다”고 하였다. 한편 고려 말의 대학자였던 목은 이색은 보광사 스님들이 방문하자 접대가 소홀함을 겸양하여 “거실은 유마거사 방장이 아니요(方丈非維摩), 보살(菩薩)을 먹일 향적반도 없으니(飯化無香積)”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향적여래가 계신다는 중향성을 경관이 빼어난 곳에 비유하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인 곳이 금강산이다. 고려 후기의 학자 이곡은 지금의 강원도 고성지방을 여행하며 쓴 시에 “한가한 기회에 중향을 찾게 된 기쁨(喜及身閑訪衆香)”이라며 금강산 방문의 즐거움을 노래했고, 조선 후기 척사파로 유명한 김상헌은 봉래 풍악이 곧 중향성(蓬萊楓岳衆香城)임을 읊었다.

이외에도 추사 김정희는 ‘세모승(細毛僧)’이란 시에서 “문수의 제호가 바로 이게 아니던가(文殊醍醐即此否) 향적의 반공도 보다 나을 것이 없네(香積飯供無過之)”라며 냉채의 맛있음을 향적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또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가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염원하며 중창한 용주사에는 이덕무가 지은 주련(柱聯)이 있는 데 이중 천보루에는 “연화게 패엽경은 불이문의 천둥소리요(蓮花偈貝葉經不二門中天籟), 향적반 이포찬은 무량겁 전 땅의 밑거름이네(香積飯伊蒲饌無量劫前地肥)”라는 구절이 붙어있다.

사찰음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고 매스컴의 화려한 각광을 받는 요즈음 자칫 레시피나 만드는 법에만 경도되어 희미해지는 사찰음식의 정신을 톺아보고자 향적이란 말에 담긴 본래 의미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다.

김유신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발우공양 총괄부장 yskemaro@templestay.com

[1352호 / 2016년 7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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