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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유마사 선학 승가대학원장 일장 스님

‘경 속에 깨달음의 길 있다’ 호남 유일 비구니교육도량 열어

 

▲ 유마사 주지이자 선학 승가대학원장인 일장 스님은 “경전 속에 모든 길이 있지만 그 길은 노력하는 이에게만 보인다”며 “수행자는 늘 경전을 가까이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웅전 앞마당으로 뜨거운 8월이 쏟아진다. 아무리 산중 사찰이라도 여름을 비켜갈 수는 없다. 도량 앞 계곡물도 더위에 지쳤는지 더디게 흐르는 한 낮, 꼬맹이 나무의자 하나가 땡볕 아래 덩그러니 놓여있다.

 

은사와의 약속 지키기 위해
‘위패은사’ 모시고 출가 단행
봐주는 은사 없어도 혼자 척척
“귀담아 들으면 모두 내 공부”

승가대 졸업후 릿쇼대서 박사
2000년 유마사 주지 소임맡아
전각 11채 신축해 가람 일신
2007년 유마사승가대학 개설

선학 승가대학원 전환 후에는
재가불자에도 모든 수업 개방
“예불·간경·참선 함께 해야
성불로 가는 참다운 정진”

“오전에 풀을 요만큼 밖에 못 맸어요. 해가 좀 넘어가면 마저 해야 돼요. 여기 풀 다 뽑고 돌아보면 저쪽에 풀이 이만큼 또 자라 올라와 있죠. 그러면 저쪽으로 가서 다시 풀을 매면 됩니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매일 마당에 풀을 뽑습니다.”

꼬맹이 나무의자의 주인은 전남 화순 모후산 중턱에 자리 잡은 유마사 주지 일장 스님이다.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느라 구겨져 있던 무릎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면 나무의자에 잠시 걸터앉아 짓눌려 있던 무릎을 토닥거려준다.

뻣뻣한 삼배 옷에 밀짚모자까지 걸쳐 쓴 스님은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시골 주지스님이다. 그런데 일장 스님에게는 한 가지 소임이 더 있다. 유마사 선학 승가대학원장이다. 지난 2007년 유마사에는 호남 지역 첫 비구니 교육기관인 유마사승가대학이 개설됐다. 그리고 2011년 조계종교육원 인가를 받아 유마사 선학 승가대학원으로 개편했다. 유마사를 호남 대표 교육도량으로 일신시킨 주인공이 바로 일장 스님이다. 오랜 세월 잊혀져있던 고찰 유마사의 당간지주도 다시 세웠다.

유마사는 백제 무왕 28년(627년)에 중국 당나라의 고관이었던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이 창건한 사찰이다. 8개의 부속 암자가 모두 수행처였을 만큼 모후산은 산 전체가 도량이었다. 이후에도 수차례 중수되며 명성을 이어왔지만 6·25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사찰과 암자가 모두 소각된 후 명맥만 유지하는 처지가 되고야 말았다. 그런 유마사에 시절인연이 도래한 것은 2000년이었다.

△ 처음 주지 소임을 맡을 당시 유마사의 모습은 어땠는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법당은 있었지만 그나마도 관리가 안돼서 지붕이며 단청을 모두 손 봐야할 처지였다. 산판 관리하는 이들이 거처로 쓰기 위해 낡은 우체국 건물을 뜯어다 지어 놓은 집이 몇 채 있었다. 그 집을 요사로 썼다.”

△ 신도도 많지 않았을 텐데.
“신도 카드는 분명 있는데 막상 법회날이 되어도 아무도 오는 이가 없었다. 변변한 길도 없고 법당이며 요사채 하나 쓸만한 것이 없으니 찾아오는 이가 없을 법도 했다. 더구나 나는 경상도 사람이니 타지에서 온 주지가 환대 받을리 있겠는가. 그냥 그런 곳이려니 하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역 신문에서 취재를 왔다. 얼마 후 신문에 기사가 실리고 ‘지역 유지’로 불리는 어르신들이 유마사를 찾아왔다. 대뜸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소” 물었다. 어르신들 말씀인즉 이랬다. 유마사에 ‘경상도 비구니스님’이 왔다길래 얼마간 살다 그냥 가려니 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이 예사롭지 않았다. 신문에 난 기사도 보고 스님 이력도 살펴보니 ‘스쳐가는 인연은 아니구나’ 싶어 와 봤다는 것이다.

“고맙기도 하지만 당장 뭘 도와주십사 할 것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가시는 곳마다 유마사 이야기나 좀 잘 해주십사 부탁을 했지요. 여기가 천년고찰인데 그래도 불사는 좀 해야 하지 않겠냐고요. 그랬더니 어르신들도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경상도 비구니’라 불린 유마사 주지 일장 스님의 고향은 경남 김해다. 공무원인 부친과 모친 슬하의 6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양친의 살뜰한 보살핌은 일찍이 동생들 몫이 됐지만 덕분에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 “자랑할 것은 하나도 없지만 독실한 불자집안서 태어나 책임감 강한 부친의 성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일장 스님의 자부심은 삶의 족적 속에 그대로 배어난다.

부친은 김해 수인사 신도회장이었다. 수인사에는 송광사 스님들의 왕래가 많았고 덕분에 구산, 일각 스님을 비롯해 보성 스님 등 송광사의 역대 방장 스님들을 일찍이 친견할 수 있었다. 은사인 홍인 스님과의 인연도 그렇게 어린 시절 이미 맺어졌다.
 

▲ 화순 유마사 전경.

△은사 홍인 스님과는 출가 전부터 인연이 있었나.
“어려서부터 수인사에서 홍인 스님을 뵀는데 여고시절 무렵 ‘너, 내 상좌 하자’하시면 나는 ‘네, 그러겠습니다’고 대답했다. 그 약속 한마디를 지키기 위해 이미 입적하신 홍인 스님을 위패은사로 모시고 출가하게 됐다.”

△출가를 결심한 계기가 있는가.
“어려서부터 스님들을 가까이 본 덕분인지 출가가 부러웠다. 하지만 결혼해서 사는 친구들을 보면 그것도 해보고 싶었다. 고민 때문에 몸무게가 43kg까지 줄어들 정도였다. 그런 모습을 보다 못한 모친이 기도를 권했다. 보리암에서 일주일을 기도했다. 그리고는 발심이 확고해졌다. 출가해서 훌륭한 스님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28살이었다.”

△돌아가신 스님을 은사로 모시는 경우도 흔치 않았을 텐데.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생전의 홍인 스님과 약속한 것이었으니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내린 결정, 약속한 것은 끝까지 책임지고 따라야한다는 원칙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은사스님이 안계시니 다들 관심을 갖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애를 썼다. 나도 은사스님이 안 계시니 누가하는 말이든 허투루 듣는 법이 없었고 그것이 다 내 공부가 됐다.”

붙임성 좋은 일장 스님은 누구하고나 잘 어울렸다. 그리 슬프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일찍 철이든 6남매 맏이의 기질이 출가 후에도 유감없이 발휘된 셈이다. 굳이 돌봐주고 챙겨주지 않아도 혼자 척척 해냈다. 강원도 그렇게 혼자 찾아갔다.

△김해에서 수원 화운사까지 찾아가 강원에 입학한 이유는 무엇인가.
“행자시절부터 대성암 선방에 들어가 좌선을 했다. 하지만 앉기만 하면 뭐하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스님들에게 물어봐도 무엇인가 딱 잡히는 것이 없었다. 훌륭한 스님이 되겠다고 출가했는데 길을 모르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이 선 이유다.”

만성 노스님 제삿날 스님들이 모여 나누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한 스님이 상좌를 수원 화운사강원에 보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어른 스님들 말씀 흘려듣는 법 없던’ 일장 스님은 그곳에 가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 법회 때는 늘 사부대중이 함께 수행한다.

 

△화운사 강원에서의 공부는 어땠나.
“그때는 학인들이 강원을 옮겨 다니며 공부하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공부하다 마음에 맞지 않으면 보따리를 싸는 것 같았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이리 저리 옮겨 다니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화운사 강원에 입학해 그곳에서 졸업했다.”

△중앙승가대에 다시 진학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원에 남아 강사를 맡아달라는 권유도 받았지만 수행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절실했다.”

△일본 유학도 그런 이유였나.
“그렇다. 일본어도 모른채 일본 릿쇼(立正)대학 학부 3학년으로 편입했는데 졸업할 때는 수석이었다. 대학원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장학금부터 모든 것이 학교에서 지원됐다. 공부는 무척 힘들었지만 더없이 좋은 여건이었다. 릿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

△릿쇼대학에 자리를 잡을 생각은 없었는가.
“릿쇼대학에 남으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다. 또 릿쇼대학의 추천을 받아 미국의 버클리대학 등에 연구원으로 초청받은 상태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 일본대학의 추천을 받아 간다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고 박사학위 취득까지 무려 10년을 일본에서 지낸 탓인지 한국에 가고 싶었다.”

2000년 유마사와 인연이 닿았다.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이 유마사에 승가대학 개설을 권했다. 그때까지도 전라도엔 비구니교육도량이 없었다. 변변한 전각 하나 없는 유마사에 승가대학 개설이라는 대작불사의 소임이 맡겨졌다.

‘고불이 계신 고찰에 살고 싶다’는 평소의 바람대로 고찰 주지가 되었지만 막상 부처님은 고불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치문경훈’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아홉 길의 산이 이루어진 것도 반드시 한 삼태기에서 비롯되었다.’

아무리 오래된 고불이라도 처음 조성한 누군가가 있었을 터. 오늘 모신 부처님이 후대에까지 전해져 고불이 되도록 정성을 다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마음을 돌리고 바라보니 장애는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이 불사를 도와주는 인연으로 보였다. 변변한 전각이 하나도 없으니 가람배치가 수월했다. 경내 곳곳이 바위투성이지만 그 바위들을 골라내니 축대를 쌓는데 요긴하게 쓰였다. 건축을 잘 모르니 고집 피워 대목장들과 언쟁할 일도 없었다. 어느 날 공양주가 ‘힘들어 일 못하겠다’고 가버리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공양주 소임을 살았다. 그럴 때면 행자시절 묵묵히 해내던 일솜씨가 빛을 발했다. 대학원시절의 공부도 불사에 큰 힘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모든 텍스트를 한문, 범어 등 원문으로 공부했다. 여러 언어를 서로 비교해야하니 늘 공부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오늘만 하고 내일은 죽자’는 각오가 없이는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앉아 비교하고 정리하는 습이 몸에 배인 덕에 불사를 하며 각종 관공서에 제출해야할 공문서와 연구자료, 보고서 작성 등 ‘골치 아픈 서류 작업’을 혼자 해 낼 수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으면 그날 제출해야할 공문서며 보고서 등이 뚝딱 만들어졌다. ‘이렇게 불사하라고 그런 공부 인연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였다.

△불사를 진행하며 제일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첫 불사로 육화료를 짓는데 어느 자리에 어느 정도 크기로 앉힐 것인가를 놓고 도편수부터 대목, 소목, 미장까지 죄다 내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결정해야 할 일이었다. 비로소 ‘아, 내가 주지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며칠이나 잠이 안 왔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도량에 있는 바위 하나가 눈에 딱 들어왔다. 매일 보는 바위였는데 그날따라 다르게 보였다. 바위를 기준으로 삼으면 되겠다 싶었다. 대목장을 불러 길이를 재어보니 딱 들어맞았다. 늘 보던 바위가 그날에 와서야 다르게 보인 것이다. 모든 일에는 그렇게 안목이 열리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반드시 길이 보인다. 그 과정이 없다면 눈앞에 있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 스님은 유마사 불사를 하며 이 이치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다 알면서도 보이지 않던 것이 어느 날 문득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이 오기까지 거듭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경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수행의 방법을 찾고자 시작한 공부였는데 교학에만 매달렸던 것은 아닌가.
“그럴게 보일 수도 있다. 남에게 묻지 않고 직접 찾고 싶어 시작한 공부였다. 하지만 그 모든 길이 경전 속에 다 있는 것을 나는 왜 보지 못했을까. 노력하는 자만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보이는 것이 아니다. 보고 또 보고, 찾고 또 찾으면 어느 날 마침내 그것을 발견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경전에 나와 있지만 늘 읽으면서도 가슴에 와 닿지 않던 것이다. 늘 보던 바위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르게 보이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수행자는 평생 경을 놓아서는 안 된다.”

△선과 교의 관계를 말하는 것인가.
“경전을 가까이하지 않고는 절대 수행이 나올 수 없다.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청정히 해 성불에 이르는 것이 수행이다. 부처님을 조석으로 찾아뵙고 예불하고 절하며 신심이 퇴보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부처님 앞에 서는 것이 신(身) 수행이다. 경을 수지하고 독송하며 그 가르침에 나 스스로를 반추해 다스리는 것이 구(口) 수행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마음을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의(意) 수행이다. 이 세 가지가 맞물려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정진이다. 이것이 수행이지 따로 수행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일장 스님의 확고한 신념은 유마사승가대학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40명 정원으로 2007년 문을 연 유마사승가대학에서는 매일 아침 예불 후 독경과 좌선이 이어졌다. 일장 스님은 손수 죽비를 잡고 학인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불사가 여전히 산적해 있었지만 아침 예불과 독경, 그리고 좌선으로 이어지는 신구의 수행은 하루도 빠지지 않는 일과로 정착됐다.

유마사승가대학은 2011년 선학 승가대학원으로 전환됐다. 출가자 감소로 학인이 줄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10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고 있다.

△유마사를 장차 어떤 도량으로 가꿔나갈 계획인가.
“교학도량이자 수행도량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교학도량이니 참선도량이니 하는 구분도 옳지 않다. 부처님 계신 곳은 어디든 다 수행처다. 경전을 읽든, 참선을 하든 다 수행이다. 그 수행을 위해 가람을 수호하는 것이지 불사해 놓고 우두커니 절만 지키고 있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가람수호 또한 앞으로는 재가자가 맡아야 한다.”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정기법회 때는 예불 후 모두 둘러앉아 돌아가면서 경을 읽고 다 함께 좌선에 든다. 그 자리에는 스님과 재가자의 차별이 없다. 승가대학원 수업도 재가자들에게 개방돼 있다. “부처님 가르침인데 사부대중이 같이 듣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그 길은 사부대중이 함께 가야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의 반듯한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이 스님의 역할이다. 그것이 일장 스님이 생각하는 ‘훌륭한 스님’이다.

40여 년이 지났지만 스님은 아직도 28살에 품었던 그 출가의 발심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 하나뿐인지도 모르겠다. 고집스럽고 융통성 없게도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스님 말대로 “부친께 물려받은 혈통”이 그런 것을. 한번 결심하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고 맡은 일은 끝까지 마무리한다는 책임감은 위패은사를 모시고 스스로 수행의 방법을 찾는 험난한 길로 스님을 이끌었다. 대작불사의 무거운 짐도, 강단을 떠나지 못하는 것도 스님 스스로 짊어진 약속과 책임 때문이다. 하지만 스님은 안다. 그렇게 쉬지 않고 걸어왔기에 스님은 오늘 무릎을 치며 깨달음에 한 발 더 다가간다. 그리고 더 많은 사부대중과 함께 그 길을 가기 위해 스님은 오늘도 유마사 강단에서 커다란 법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하루도 빠짐없이 간경-독경-좌선…말 보다 실천으로 모범

내가 본 일장 스님

송광사 인월암 원순 스님=요즘엔 무슨 일에서나 요령 피우는 것이 흔하고 효율만 중요시되다보니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혼란이 야기된다. 하지만 일장 스님은 원칙을 지키는 스님이다. 그러다 보니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일장 스님은 그런 장애들을 어려움이라 느끼지 않고 오히려 안타깝게 여긴다. 어려움은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느끼는 것인데 스님은 어떤 장애 앞에서라도 묵묵히 자신의 원칙을 지켜가기 때문에 어렵다고 느끼거나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 원칙을 지키며 오두막 한두 채 뿐이던 유마사를 일신시킨 것도 대단하지만 불자가 적은 호남지역에 좋은 스님, 좋은 불자들이 모여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도량으로 거듭나게 했다는 점은 더욱 큰 의미가 있다. 또한 매일 경을 읽으며 자신의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일장 스님을 볼 때면 경을 보는 안목, 경안(經眼)이 열린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경안은 마음을 다스리는 심안(心眼)에서 나오는 것이니 언제나 멈추지 않는 노력이 맺은 결실을 것이다.

막내상좌 유유 스님=잘못이 있어도 한 마디 이상 야단을 맞은 경우가 없다. 언제나 스스로 잘못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신다. 공부 또한 마찬가지다. 상좌들의 의견과 결정을 늘 존중하며 출가자의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지켜봐 주셨다. 상좌에게조차 하대하지 않는다. 수행자이자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존중해주는 은사스님의 모습을 볼 때면 수행자답게, 부끄럽지 않은 수행자가 되기 위해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위의를 갖추고 언행이나 몸가짐을 단정히 하는 데 있어서는 엄격하시다. “언행이나 몸가짐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단속하고 열심히 수행정진하며 공부하는 스님이 돼야한다”고 강조하시는데 매일 새벽 예불, 독경, 간경, 참선을 빠지지 않으며 스스로 탁마해 나가는 은사스님의 모습 자체가 큰 가르침이다. 여전히 건강하시고 대중을 위해 일하는 것을 즐거워하시지만 후원에서 김치를 담그거나 마당에 풀을 뽑는 궂은일은 이제 조금 줄이셨으면 좋겠다.

유민수 유마사청년회장=8년 전 유마사에서 처음 스님을 친견했다. 고향 가까이에 있는 사찰이라 우연히 들렸는데 스님의 명쾌한 법문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전에도 불교대학에서 경전을 배운 적이 있지만 일장 스님의 법문과 강의를 들으니 그동안 풀리지 않거나 궁금했던 점들이 봇물 터지듯 시원하게 풀렸다. 경전강의도 탁월하지만 신도들과 함께 독경을 할 때면 스님의 넘쳐나는 신심이 저절로 전해져 아무리 독경을 오래 해도 힘든 줄 모를 정도다. 신도들에게는 효도와 예절을 강조하시는데 스님 또한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볼 적이 없다. 앉고 걷는 것부터 생활하는 모든 모습 하나하나에 흠잡을 곳이 없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환희심이 나고 신심이 커진다. 그런 반듯한 모습이 반듯한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반듯하게 보일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부담스럽거나 답답하게 보일 것이다.

[1354호 / 2016년 8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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