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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흥수 스님과 봉녕사 칼국수

건강이 아닌 수행을 위해 먹어야 진정한 의미의 사찰음식

▲ 일러스트=강병호 작가

논산 바랑산 법계사는 청정한 수행과 기도로 살아가는 비구니 스님들의 정진공간이다. 법계사는 출가자들을 위한 복지시설이며 수행처로 이곳 선원에는 30년을 정진해온 흥수 스님이 입승소임을 맡고 있다. 스님은 22세가 될 때까지 고향 의정부에서 교회를 다니던 개신교신자였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와 방문한 조계사에서 선물 받은 불서 한 권에 마음을 빼앗겼고, 곧 이어 조계사청년회에 가입해 무진장 스님 밑에서 공부했다.

가난한 시절 짠지·시레기 연명
김치는 소금 절인 배추에 불과

칼국수 별식…승소의미 일깨워
콩물 밀가루 반죽이 맛 비결

고기맛 콩은 맛에 대한 탐착
청정하고 정갈해야 사찰음식

어린 시절 할머니를 따라 절에 다닐 때는 불교를 미신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막상 제대로 공부해보니 불교처럼 논리적이고 체험적인 종교가 없었다. 결국 2년 뒤 출가를 결심했다. 인연 있던 스님에게 물어보니 한국불교복지의 선구자인 서울 성라원 주지 법성 스님에게 인도해 주었다. 3년간의 행자생활을 마치고 1980년 봉녕사승가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봉녕사는 70명의 학인이 20평 남짓한 방에서 옹기종기 생활했다. 대중방에 좌복을 깔고 공양을 하고, 참선을 하고, 경전공부를 했다. 목욕방에 들어가면 몇 안 되는 대중도 서로 부딪힐 만큼 시설이 열악했다. 그러나 위의만큼은 여느 큰절 못지않았다. 특히 공양 때면 학장 묘엄 스님은 가사장삼을 수하고 전체 대중과 대중방에서 발우공양을 했다.

죽비를 치면 먼저 천숫물을 따르고 밥과 국, 반찬을 나누고 발우에 담았다. 그리고 공양을 한 후 죽비를 두 번 치면 숭늉을 받아 김치쪽으로 발우를 깨끗이 씻어 마셨다. 밥과 국, 반찬은 학장스님이나 학인이나 다르지 않았다. 봉녕사 학인들은 학비로 쌀을 내고 살았는데 공양은 언제나 잡곡밥에 짠지, 시래깃국이 전부였다. 다른 곳에선 흔한 콩나물과 두부도 쉽게 먹을 수 없는 아주 귀한 음식으로 대접을 받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봉녕사는 김치가 짜기로 유명했다. 사실 말이 김치지 소금에 절인 배추에 고춧가루를 살짝 무친 정도였다. 그래도 김장을 할 때면 학인들이 모두 동원이 됐는데, 찹쌀 풀에 삶은 호박을 넣어 걸러낸 후 고춧가루를 풀어 속을 만들어 절인 배추 속에 푹 담그면 김치 만들기는 끝이 났다. 이렇게 만든 김치에 반찬은 제피장아찌와 말린 무를 간장과 고춧가루로 버무린 무말랭이가 전부였다. 하도 같은 음식만 나오고 맛이 없으니까 어떤 스님은 심지어 울기도 했다.

“어려운 살림이지만 봉녕사에도 별식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칼국수입니다. 봉녕사 칼국수의 특징은 생콩을 갈아 만든 콩물로 밀가루를 반죽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끈기는 덜 하지만 맛이 아주 고소합니다. 여기에 마, 버섯, 무로 국물을 내고 호박, 당근, 버섯채로 고명을 만들어 얹으면 별미 중의 별미 봉녕사 칼국수가 됩니다. 국수를 한 그릇 먹은 날은 하루 종일 얼굴에 웃음이 가시지 않아, 과연 승소(僧笑)라는 별칭이 그냥 생긴 게 아니라는 것을 절로 실감하게 됩니다.”

삭발날에는 ‘골을 메운다’며 미역국과 찹쌀밥이 나왔다. 골을 메운다는 것은 수행이나 공부로 빠져나간 기를 채운다는 것으로 요즘 말로는 칼로리 보충, 영양 보충을 의미한다. 특히 찹쌀밥을 할 때는 들기름이나 잣, 밤 등을 넣기도 했는데 이렇게 귀한 찰밥에 더 귀한 김을 싸먹던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흥수 스님은 봉녕사 학인스님들만의 비밀 같은 특별식을 전해주었다. 하루 종일 참선을 하고 경전을 공부해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었던 그 때, 학인스님들은 방학 때 사찰서 가져온 미숫가루를 대야에 풀어 한 대접씩 마시곤 했다. 또 제사 때 올리는 ‘옥춘’이라는 맷돌사탕을 얻어 허기를 달래기도 했다. 차나 간식은 없었지만 커피는 즐겨 마셨다. 다만 학인들이 커피를 마시다 들키면 정학을 당했기에 봉녕사 학인스님들만의 커피마시는 법이 따로 있었다. 방법은 봉지커피를 입안에 털어 넣고 따뜻한 숭늉을 이용해 녹여 마시는 것이다. 대야 미숫가루와 옥춘, 그리고 봉지커피는 지금은 웃을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의 맛으로 기억되고 있다.

스님의 음식에 관한 신념은 ‘몸을 유지해 수행을 돕는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음식을 먹는 이유가 수행이 아닌 건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사찰음식의 정신 또한 여기에 있다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나는 절에서 만든 사찰음식이 아니면 먹지 않습니다. 요즘 스님들은 고기 맛이 나는 콩으로 만든 음식을 즐기기도 하는데 이는 결코 사찰음식이 아닙니다. 맛에 대한 탐착일 뿐 수행을 위한 도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청정하고 정갈한 음식이 아니면 몸이 탁해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수행자로서 오분법신향을 내지는 못할망정 그런 냄새를 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수행의 의미를 떠나서도 청정하고 정갈한 사찰음식이 최고의 건강식입니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흥수 스님은

1978년 서울 성라원 주지 법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봉녕사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석남사, 해인사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해왔다. 현재 논산 법계사 선원에서 입승 소임을 맡고 있다.

 

 

[1362호 / 2016년 10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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